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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식(金明植, 1892~1943) (號)松山 솔뫼] ()

(고려공산당 국내부 위원) 제주도에서 태어나 한학을 수학하고 1908년 한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16년 토오꾜오(東京)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 정치경제과에 입학하여 조선인유학생학우회 회장을 지내며 기관지 『학지광(學之光)』에 투고했다. 1919년 토오꾜오에서 2 ․ 8독립선언에 참가했다. 1920년 4월 조선노동공제회 발기인 ․ 평의원, 동아일보사 주필이 되었다. 6월 조선청년회연합회기성회 발기에 참여하고 지방부 집행위원이 되었다. 8월 조선노동공제회 기관지『공제(共濟)』에 「노동문제는 사회의 근본문제」라는 글을 기고했다. 12월 조선청년회연합회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1년 1월 서울청년회 결성에 참여했고 5월 고려공산당(상해파) 창립대회에서 기관지 주간 및 국내부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신간회 제주지회장) 1922년 1월 동아일보사를 퇴사하고 잡지사 신생활사 창립에 참가하여 이사가 되었다. 3월 조선청년회연합회 제3차 정기대회에서 ‘사기공산당 사건’ 관련자로 지목되어 퇴진을 요구받았으나 그에 응하지 않았다. 6월 서울청년회에서 제명당했다. 11월 ‘신생활사 필화사건’으로 검거되어 1923년 1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7월 고문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병에 걸려 형집행정지로 출옥했는데 이때부터 신체장애자가 되었다. 1927년 신간회 제주지회장이 되었다. 1929년 오오사까(大阪)에서 조선인 노동운동을 지도하다가 검거되어 복역했다. 1932년 이후 잡지 『비판』에「조선종교론」 「민족단체 재건계획에 대하여」 등의 글을 기고했다. 1943년 감옥생활과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제주도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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