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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군(關東軍)] ()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총칭. 만주에 일본군이 주둔하게 된 시초는 러·일전쟁의 결과이다. 일본은 러시아와 강화조약을 맺은 포츠머스 조약에서 남만주에서의 여러 가지 특수 권익을 얻었는바, 일본은 이를 지키고 또 남만주철도 본선 및 안봉선(安奉線) 등을 수비하기 위하여 군대의 주둔권을 얻은 데서 비롯된다. 처음에는 관동도독부(關東都督府)를 두어 관리하였으나 1919년 도독부를 폐지하고 일본천황 직속의 관동군사령부를 여순(旅順)에 두어 관동주 및 만철연선(満鐵沿線)을 수비하게 되었다. 이후 관동군은 일본의 대륙진출의 교두보로서 전략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더구나 사령부 참모들 중에는 대륙침략의 강경파들이 중심부를 이루었다. 장작림(張作霖)의 폭사사건, 만주사변 등은 모두 이들의 조작이었다. 만주사변이 일어나던 1931년 9월 18일에는 사령부를 봉천으로 옮겼고 또 이듬해에 신경(長春)으로 다시 옮겨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는 동안 관동주 및 만주에 주둔하는 전(全)육군을 이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그 후 관동군은 對중국뿐만 아니라 대소(對蘇)전에 대비하여 그 병력이 점차로 중강, 1941년의 관동군 특별연습 때에는 약 70만 대군에 이르렀다. 1943년 태평양전쟁이 급해지자 관동군은 남방과 일본 본토로 많이 이동하였으며 1945년 소련이 침공할 때에는 한반도 북반부인 38도선 이북까지도 그 방위지역으로 삼았는데, 이는 조선군 사령부 소속의 군대가 많이 대륙과 남방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1945년 미·소가 한국에 진주할 때 소련군이 38선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것도 38선 이북의 관동군 무장 해제를 소련이 담당하기로 결정한 얄타회담의 결과에 의해서였다.
■ 인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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