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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우회(槿友會)] ()

근우회는 신간회(新幹會)와 더불어 민족유일당의 하나로 조직되었다. 신간회 창립당시 여성대표로 김활란 · 유각경 등이 간사로 참여했으나 역사적으로 누적된 여성의 특수문제는 신간회 운동 안에서 충분히 해결될 수 없다는 데서 여성의 독자적 조직체를 따로 갖게 된 것이다. 근우회는 발기 취지에서 “조선 여성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인간적 지위에 있지 못하였고 가정에서도 세상과 벽을 쌓고 살아 왔으므로 여성지위 향상과 단결을 하자”고 했다. 근우회는 여성 해방의 궁극적 목적을 선언문에서 “조선사회 전체를 위하여, 나아가서는 세계 인류 전체를 위하여”에 있다고 함으로써 적어도 민족유일당운동의 민족주의적 입장과 깊이 연결되는 것임을 밝혔다.
1926년 국내외에서 민족유일당 운동이 일어나고 신간회 창립 기운이 무르익자 여성운동계도 〈분산을 통합으로〉라는 구호 아래 좌우파간 여성들의 연합 움직임이 일어났고, 마침내 근우회의 창립을 보게 된 것이다. 1927년 4월 16일 각국에서 공부한 여자유학생 60여명이 조선일보사 2층에 모여 전국적인 단일여성기관의 조직에 합의하고 유각경 외 12인을 준비위원으로 선출했다. 준비위원들은 41명의 각계각층의 지도급 여성들을 망라한 발기인회를 구성, 1927년 4월 26일 발기총회를 열었으며 같은 해 5월 27일에는 창립총회, 6월 17일에는 발회식을 개최했다.
근우회는 규약에서 그 목적을 “강령의 관철에 있다”고 했다. 근우회의 강령은 ① 조선여자의 확고한 단결을 도모함 ② 조선여자의 지위 향상을 도모함, 이다. 3 · 1운동 이후 사회주의 이론과 사상이 유입되면서 〈단결〉의 의미는 다른 뉘앙스를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1920년대는 모든 사회주의 단체의 강령에는 으례 〈단결〉이 제시되고 있다.
근우회 출발 초 단결의 의미는 어떤 것이었는가. 창립 취지에 의하면 “실지로 우리 자체를 위해 분투하려면 우선 조선자매 전체의 역량을 공고히 단결하여 운동을 전체적으로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여성의 단결투쟁은 〈조선사회 전체〉 더 나아가 〈세계인류 전체〉를 위한 것임을 밝혔다. 일제의 쇠사슬을 벗어나 자주독립하는 민족주의적 입장을 천명한 것이며, 일제 식민통치라는 모순과 식민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족주의적 이념과 사회주의적 운동목표가 잠재돼 있는 것이다.
근우회가 추진했던 여성지위 향상의 초점 및 그 범위가 무엇이었는가는 1927년 10월 20일에 개최된 제1회 여성문제 토론회와 1929년 제2회 전국대회에서 결정된 행동강령을 통해 논할 수 있다.
제1회 여성문제 토론회는 「조선여자해방의 첩경이 경제독립이냐, 지식향상이냐」를 주제로 했다. 여기서는 대체로 경제독립이 지식향상보다 선결된다는 논조를 부각시켰다. 1928년 근우회 경성지회는 창립초의 이념적 강령을 9개 조항의 행동강령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여성지위향상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했다. 즉 ① 남녀의 정치적 사회적 절대평등 ② 결혼 · 직업의 자유 ③ 인신매매의 철폐 ④ 여자교육의 확장 · 현 교육제도의 개선 · 문맹 퇴치 ⑤ 모성보호 ⑥ 무료탁아소 및 육아소 설치 ⑦ 여공의 보호 · 노동조건 및 공장시설의 개선 ⑧ 농촌부인을 보호하는 여러 시설 ⑨ 집회 · 결사 · 언론 · 출판의 자유를 강령에 담은 것이다.
1927년 5월 29일 창립총회 후의 첫 집행위원회에서 부서의 결정, 신임역원의 배치 등 7개항을 결정했는데, 첫 지회는 1927년 8월 전주에 설치됐고 이후 31년까지 약 60여 지회가 설립됐다. 지회 최다 설립지역은 경상남북도의 18지회, 다음이 함경남북도의 17지희, 다음은 전라남북도의 8지희다.
지회조직 분포도에는 몇가지 흥미있는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설립지가 대부분 지방 주요도시라는 점이며, 둘째, 이들 도시가 모두 철도의 통과지 또는 근접연변이며, 셋째, 전남북 · 경남 · 함남 · 함북의 경우 항구 또는 항구와의 근접지 도시가 많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보아 근우회운동이 극히 도시 중심적 운동으로, 가장 절실한 농민문제는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넷째, 지회 설립지는 거개가 1907년 국채보상운동, 3 · 1운동 · 임정지지 후원 애국부인회 운동이 있던 지역이며, 다섯째, 개화운동으로부터 여성항일민족운동이 어느 지역보다 격렬하던 황해도와 평안남북도의 지회 설립이 의외로 적다는 점이다. 이는 기독교계 여성들의 가입이 적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섯째는 충청남북도의 지회가 전무하다는 점은 이 지역이 봉건성이 짙은 보수적인 양반지역인 때문이 아닌가 한다.
1929년, 근우회는 기관지 『근우』를 창간하는 등 이론적 기반을 새롭게 제시하려고 노력했으며, 이 해 7월 대회에선 종래의 2대 강령을 실행 강령으로 수정했다. 이 해 각 지회의 활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지회조직 확대와 여성의 경제권 확대 경향이다. 여성의 직업, 인신매매 철폐, 노동부인 보호 및 교양, 사회적 법률적 차별철폐 등이 강조되고, 또 소비조합운동이나 생활개선에서 공동세탁소를 설치하자는 등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의식향상 운동보다, 실질적 여권 확보를 위한 적극적 운동이 나타났다.
1930〜1931년 사이는 당국의 탄압으로 지회 활동이 저조했으나, 도 연합회를 중심으로 지회간의 단결 및 운동의식의 통일성을 기하려는 노력은 더욱 뚜렷해졌다. 회원에 대한 자체 교양, 일반 문맹여성에 대한 야학설치와 노농부녀에 대한 교양 및 권리옹호· 강연회 · 토론회 · 독서회 · 조혼폐지 · 미신타파 등 봉건적 인습의 타파와 공창 폐지 · 여성소비조합운동 · 성차별 철폐 및 부인의 직업에 관심을 보였다. 1931년에 들어 근우회는 신간회의 해소론과 더불어 이의 해소론이 일부 지회에서 대두되고, 6개 지회 외에는 거개가 유야무야되고 말았으나 근우회가 이 나라 민족운동과 여성운동에 큰 족적을 남겼음은 분명하다.→신간회 / 朴容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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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우회(槿友會)
나도향 羅稻香 1902-1926
나석주 羅錫鷹 1889-1926
나운규 羅雲奎 1902-1937
나철 羅喆 1863(철종 14)-1916
남궁억 南宮憶 1863(철종 14)~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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