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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마르크스주의 ] (Soviet Marxism)

소련 마르크스주의는 오늘날까지 4개의 특징적인 시기로 구분된다. 즉(레닌 시대의) 자코뱅적 이데올로기 시기, (스탈린 시대의) 전체주의적인 조작의 시기, (흐루시초프의) 잃어버린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혁적 요구의 시기, 그리고(브레즈네프 시대의) 보수적이며 초상연구적인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볼세비즘은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의 수확을 얻어내는 4가지 이론적 유산을 권좌에 올려 놓았다. 첫째는 마르크스(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이해한 플레하노프 전통이었다. 사실 이것은 약간의 비판은 있겠지만 엥겔스적 입장의 수용을 뜻한다. 공개적으로 자신을 플레하노프의 제자라 불렀고, 또한 실제 그러했던 레닌은 그의 혁명전 저작에서(가장 잘 알려진 것은《유물론과 경험론 비판》이다) 플레하노프 교의에 대한 확실하고 중요한 수정을 끼워 넣었다. 레닌은 엥겔스의 '절대적' 유물론에 대한 플레하노프의 거부에 순순히 동의했다. 그런데 그것은 철학적으로 순박하고 무비판적인 입장에서 물질성을 전체 우주의 속성으로 돌리는 것을 의미했다. 유물론에 대한 레닌의 공개적 태도는 다음 주장에서 요약되는, 소위 물질에 대한 '인식론적' 정의에 기초하고 있다. 즉 물질의 개념은 감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객관적 실제를 표현할 뿐이다. 이 인식론적 입장에서는 다만 현상학적 정식화가 허용될 수 있을 뿐이었다. 즉 현상이 우리의 인식으로 나타날 때 현상의 특징적 모습을 단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레닌은 자신에 의해 제공식화된 변증법 중 최고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법칙―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을 실체 그 자체의 본질적 모습으로 취급하는 데서 권위주의적이고 본질적인 변형을 가하였다.
레닌에 의해 플레하노프의 개념과 마르크스철학 일반에 삽입된 그 밖의 두 가지 수정은 무신론에 대한 그의 전형과 철학에서의 범세계적인 두 가지 경향('커다란 두 진영')에 대한 교의였다. 이 둘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선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에게 소외와 같이 종교적 믿음은 소외의 일반적 문제의 중요한 사회―존재론적 측면이었던 반면에 레닌에게는 배타적이지는 않을지라도 그것은 주로 사회―정치적 이슈였다. 철학에서의 2가지 범세계적인 경향, 즉 유물론과 관념론에 대한 교의는 이들을 개인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태도로서 간주한 엥겔스에 의해 고안되었다. 그러나 레닌으로 인해 이들은 후에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세력에 의해 지탱되는 유물론적 형태와 반동적 세력에 의해 유지되는 관념론적 형태라는 철학의 분열을 본래부터 내포하고 있던, 사회학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두 경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둘째 요소는 사회학적·경제학적 차원에서였다. 레닌 자신은 러시아 자본주의 발달에 관해서와 제국주의와 혁명의 유형 이론에 대한 자신의 혁명 이전의 저작에서는 유수한 사회학자였다. 그러나 비록 부하린(1921)이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을 '사회학의 체계'로 설명하고 서구 사회학의 주요 저작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하더라도, 주로 그 정권의 자코뱅 이데올로기적 자기기만 때문에 볼셰비키 유산의 사회학적 측면은 권력장악 이후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경제이론은 만발하였다. 모든 볼셰비키와 좌파 멘셰비키 지도자들은 여러 학파의 경제결정론을 배웠었고, 그들 중 몇몇(부하린, 보그다노브, 그리고 특히 프레오브라첸스키)은 원래 경제문제 전문가였다. 권력장악 이후 그들 모두는 완전히 예측하지 못했던 차원의 이론적인 경제문제를 다루어야 했다. 내란과 외국간섭의 결과로 생겨난 전시 공산주의는 신 경제 정책이 혼합경제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동안, 생산과 분배의 완전한 사회주의 모델의 실현이라는 문제를 던져 주었다. 이것은 사회주의와 계획경제가 시장과 양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의미했다. 65년의 소련 역사에서 경제적인 그리고 어느 정도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이론적 토론에서 그렇게 활발하고 창조적인 시기는 결코 없었다. 소련 마르크스주의 경제이론의 살아있는 이 정신을 근절시키는 데 '좌파'와 '우파'의 반대에 대항하여 스탈린의 개혁운동이 필요했던 것이다.
첫 시기의 소련 마르크스주의의 또 하나의 요소는 국가권력, 폭력, '혁명법'(파슈카니스, 스투츠카, 클리렌코 등에 의해)과 관련된 문제에 관한 토론이었다. 대화는 성실하게 진행되었지만 제한된 범위의 것이었다. 왜냐하면 노동반대파에 의해 비판이 시도되었지만 하나의 주요 전제,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원칙은 볼세비키 지도자에 의해 주어졌다는 의미에서 급진적으로, 혹은 또 전적으로 비판받을 수는 없었다. 이 시기의 소련 마르크스주의의 마지막 차원은 주요 대표자로 루나차스키가 제창했던 문화이론이었다.
다음 시기에 소련 마르크스주의는 급격하게 다른 기능을 떠맡았다.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전일적으로 정당하고 과학적인 세계관'을 통해 사회를 균질화하는 카리스마적 합법화와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대한 봉사 속에서 전개되었으며, 순전히 도구화되어 갔다. 첫 단계는 레닌주의라는 개념의 도입이었는데, 저자인 스탈린이 1924년 모스크바의 스베르들로브스크 대학에서 레닌주의의 문제에 대한 강의와 그의 책《레닌주의의 문제》(1926)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새 국면'이라는 틀을 확립하였다. 그 강의와 책에서 레닌주의의 주요 교의를 새 시기의 마르크스주의로 열거하였다. 즉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 제국주의 이론, 당과 그 지지조직,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 소련의 정치이론이 오늘날까지 의무적으로 다루어야만 할 문제들을 열거하였다.
두 번째 국면은 두 개의 반목하는 그룹, 기계주의자와 데보린주의자의 붕괴에 의해 구성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이론 논쟁은 다음 문제에 집중되었다. 기계주의자(부하린 역시 간접적으로 관계가 되는)들은 하나의 독립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존재, 혹은 관련성을 부정하고 자연과학을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의 구현체로 생각하였다. 반면에 플레하노프의 정통적 추종자인 데보린과 그의 그룹은 모든 과학적 연구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의한 이론적 계도를 들고 나왔다. 수년간에 걸쳐 진행된 이 토론은 이론적 문제(→Kolakowski 1978, 3권 2장 ; Wetter 1958, 6∼8장)에서 당의 집단적 권위와 스탈린의 개인적 권위를 확립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1917년이래 처음으로 중앙위원회 회기(1931년 1월 25일)에서 순수히 이론적인 문제에 관한 결정을 통과시켰는데, 여기서 양 그룹을 비난하고 학자들은 그들의 일터에서 추방하였으며, 지식인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행정적 감독을 도입하였다.
세 번째 중요한 사건은 '변증법적 사적 유물론'에 관한 장(章)을 포함하고 있는 《소련 공산당사》의 출판이었다. 반(半)공식적인 한담이 그렇듯이 그 책 전체의 실제의 저자는 확실히 스탈린이 아니었고 그는 기껏해야 최고의 중재인 역할을 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마르크스 철학에 관한 장(章)의 저자라고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그 책은 철학적 유물론에 대해 세 가지 기초적이고 본체론적-인식론적 모습을 싣고 있다. '세계의 본체는 물질이다', '물질은 인식 주체 밖에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제이다', '철학적 유물론은 세계에서 알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여기에는 다시 변증법의 4가지 특성이 첨가되었다. 즉 양의 질로의 전화, 대립물의 통일, 보편적 연관의 법칙, 보편적 변동 가능성의 법칙, 이들 중 마지막 2개는 엥겔스, 플레하노프, 레닌에 비교하면 혁신적인 것이었다. 여기서부터 그 책은 토대와 상부구조, 생산양식과 생산력을 간단하게 분석하면서, 계속하여 사적 유물론을 사회문제에 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적용'으로 취급하였다. 스탈린은 그렇게 묘사된 변증법적 사적 유물론은 공산당의 세계관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레닌, 스탈린 그리고 스탈린 이후 현재의 소련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중요한 연구에서 마르쿠제(1958)는 그것은 '단지 크렘믈린의 정책을 합리화하고 정당화시키기 위해 크렘믈린에 의해 공표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소련 발전의 실체를 여러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련에서 실제적으로 운용되는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적인 이론 교의를 상세하게 분석하였다.
대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스탈린의 죽음까지 소련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는 추방, 공개적인 비난, 그리고 스탈린의 2개의 주요 저서 출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1947년《서유럽 철학사》에 대한 집단적인 해석이 중앙위원회에서 토의되었다. 소위 말하는 '알렉산드로프 토론'(소련 과학 아카데미 철학관이며 편집인이기도 한 G. F. 알렉산드로프의 이름을 본땀)이 이러한 주요 목적에 기여했다. 그것은 당과 스탈린 자신이 전쟁 후 일종의 희망찬 해방의 분위기 속에서 이데올로기적인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는 공개적인 증명이었다. 이에 따라서 즈다노프에게 소련의 문화생활에서 함부로 주장되거나 실제적인 시도에 대한 어떠한 표시에도 전력으로 대항할 기회를 주었다. 그 후 리젠코가 의장으로 있었던 1948년에 벌어진 대토론장에서의 미추린 논쟁은 유전학을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한 부르주아 과학으로 거부하였다. 자연과학조차도 이데올로기적 검열로부터 면제받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스탈린의 다음 두 책, 즉《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 문제》와《소련 사회주의의 경제적 문제》는 극도로 혼란스러워 이론적 관점에서 논의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더욱이 그 시기에 하필이면 이 특별한 주제를 선택한 의도나 그 사회학적 관련성도 쉽게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그럴 듯한 해석은 스탈린이 두 개의 '편향'으로부터 그의 원칙을 방어하고자 하였다는 점이다 우선 그는 '혁명적 도약' 그리고 이와 함께 '위로부터의 혁명'이라는 필수적인 원리에 종말을 고하고, 대신 '비적대적' 소련사회에서 '점진적 도약'이라는 혼란한 원칙을 도입하였다. 또한 시장의 자취마저 제거시켜버린 생산물의 직접적 교환 요구와 '생산을 위한 생산'이라는 경제적 원리들을 거부하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적 세계시장'의 필요성과 가능성, 그리고 이와 함께 자본주의 세계로부터 소련과 동유럽의 밀폐적 분리를 주장했다.
사실상 '위로부터의 혁명'에 종말을 고하고 따라서 소련 마르크스주의뿐만 아니라 소련역사에 새 시대를 연 것은 스탈린이 아니라 흐루시초프였다. 이 시기의 소련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목적은 단순한 선전에서 매력적인 이데올로기의 기능으로 되돌아갈 길을 찾는 것이었다. 이것은 흐루시초프의 특징적인 불연속성과 함께 일어났으며 4가지 주요 모습으로 구성되어졌다. 첫째, 제20차, 22차 소련 공산당대회에서 스탈린에 대한 정치적·이론적 격하를 포함하고 있다. 둘째, '레닌주의'의 재생이라는 부수적인 목적과 함께 레닌에 대한 숭배가 시작되었다. 셋째, 주로 역사와 법리학과 같은 스탈린에 대한 흐루시초프의 비판에 영향을 받았던 분야로부터 상당수의 중요한 학문적 연구의 출판의 결과로 당연하게 당 정신(partijnost)과 연결되어 있지만 연구에서 어느 정도의 객관성이 요구되었다. 사회학도 이 시기에 학문적 분야로 재확립되었고 수많은 경험적 연구가 일정한 영역에서 행해졌다. 이 연구의 많은 것들이 방법과 접근법에 있어 서구사회의 그것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계도 체계적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그 변화의 주요 수혜자는 소련 사회의 군사 역할의 증가로 과학연구에서 완전한 자유를 획득한 자연과학자였다. 마지막으로, 개량주의에 대한 레닌주의라는 재료로 흐루시초프와 그의 측근자들은 레닌의 종교적 불관용을 부활시켰다.
소련 마르크스주의의 네 번째 시기인 보수적 초상 연구 시대는 두 가지 주요 모습으로 특징지워진다. 한편으로 이제는 규범적 개혁이 포기된다. 다른 한편으로 강의나 출판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이제는 거의 큰 의미가 없고, 또한 그 교의의 존재와 정당성에 대한 존경의 표명도 요구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초상화(化)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작품이 수백만 권으로 복사되어 출판되는 동안에 그 사회, 특히 그 지배기구는 놀랍게도 그 전망에 있어 실용적이 되어 있었다. 비록 동유럽에서처럼 소련에서도 약간의 비판자들(예를 들면 로이와 죠레스, 메드베데브)은 공식적인 주석과 달리 마르크스 이론의 형태를 취하면서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긴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다소 공인된 요소를 띠었던 많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반대자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등을 돌렸다. 따라서 지배자들에 의해 공허한 공식으로 취급되고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무시되며―서양에서의 기독교와도 같이―또한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반대자들에 의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면서 거부감을 일으키는 소련 마르크스주의는, 그야말로 부정 변증법의 전순환과정을 거쳤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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