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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마르크스주의 ] (Western Marxism)

1920년대에 중부 유럽과 서부 유럽에서 발생한 철학적 내지 정치적인 마르크스주의는 러시아 혁명의 소득을 명문화했던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에 도전하였다. 그 후 '서구 마르크스주의'라고 분류된 이 사조는 마르크스주의의 강조점을 정치경제학과 국가로부터 문화, 철학 그리고 예술로 옮겨 놓았다. 1930년부터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이러한 유형의 사상을 지속시키는 근본적인 역할을 담당해온 데 비하여, 개인이나 일정한 경향의 집결체 이상의 것이 아닌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이탈리아의 그람시, 중부 유럽의 루카치와 코르쉬 등을 포용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후, 골드만과《현대》(Les Temps Modernes)지(誌)를 중심으로 한 모임(싸르트르, 메를로 뽕띠), 그리고《논쟁》(Argument)지(誌)의 르페브르[Lefebvre] 등은 프랑스의 서구 마르크스주의를 구성하였다. 루카치, 그람시 및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영향으로 특히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에서 새로운 세대의 서구 마르크스주의가 출현했다. 넓은 의미에서는 물론 소비에트적인 마르크스의 이론을 배척하는 서구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또 다른 많은 형식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는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와 '네덜란드'마르크스주의(판네쾨크)가 포함된다.
러시아 혁명은 레닌주의와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에 지대한 기득권을 안겨주었는데 그 이유는 초기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그들이 레닌주의의 틀 안에서 활동하였다고 주장했고 또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다. 루카치와 코르쉬가 그들의 기본적인 저서《역사와 계급의식》과《마르크스주의와 철학》을 1923년에 출판하였을 때, 그들은 이미 공산당의 충실한 이론가들이었다. 그러나 제 3 인터내셔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의 저서에 악의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루카치는 자신의 초기 견해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자기 비판'을 행하였는가 하면, 독일 공산당은 코르쉬를 제명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서구 마르크스주의와 상투적인 레닌주의와의 관계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으로 남아 있었다. 복합적으로 뒤얽힌 과정은 그람시, 루카치 그리고 싸르트르를 포함한 많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공산당과의 관계를 표출시켜준다.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철학적 외형을 지닌 듯하지만, 그러나 오히려 그것은 철학적 사유를 자아내는 정치학이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가 태동시켰던 대립은 단지 형이상학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입장은 레닌주의와 갈등을 빚었던 정치적 조직 원리들을 함축하였으며 또한 때로는 그와 같이 주장되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평의회와 그밖에 다른 자기관리 형태 이외의 어떤 진보적인 정당에도 거의 비중을 두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이론과 원리는 특정한 역사적 사실의 결과, 즉 20세기 서유럽 혁명의 한결같은 실패를 반영하였으며, 또한 더 나아가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실패에 대한 철학적 명상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문화, 계급의식 그리고 주체성의 범주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마르크스를 재음미하였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의 법칙을 형식화한 유물론적 이론으로 파악한 카우츠키로부터 부하린 및 스탈린에 이르는 상투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과의 관계를 전적으로 단절하였다. 그들은 마르크스 자신의 저작 속에서 '주관적'구조―상품의 물신숭배, 소외 혹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분석한 만큼의 '객관적'구조―제국주의론 혹은 축적―에 대한 분석은 거의 하지 않았다.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위상은 언제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을 괴롭혔다. 제2 인터내셔널과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텍스트는 역사와 자연의 보편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였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이러한 정의는 사회이론의 자연과학으로의 환원, 즉 실증주의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하면 실증주의적 접근은 주체성과 계급의식의 비판적 범주를 위한 토대를 손상시켰다. 루카치(1925)와 그람시(1929∼35)는 이와 유사한 이유에서 부하린의《사적 유물론》을 비판하였다. 즉 그것은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 사회학으로 환원시킨다는 이론을 필요로 한다는 데에 모든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의견을 같이 하였으며, 이러한 영역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사회적 내지 역사적인 현실에 국한시켰다. 그들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는 보편적인 과학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이론이었다.
마르크스주의를 실증주의와 속류(俗流) 유물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서,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의 개선된 이론을 조금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원초적으로 하나의 비판이었다. 루카치는 그의 가정 두드러진 유토피아적 정형(定型)을 통하여―물론 그밖에 많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도 이러한 유토피아적 충동을 공유하였지만―마르크스주의는 정치경제학의 지양이나 혹은 경제의 지배법칙으로부터의 해방을 떠맡아야 할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정치경제학의 여러 범주 자체가 마르크스주의가 타파하려고 했던 경제적 지배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코르쉬는 마르크스가 그의 모든 주요 저작들에 '비판'이라고 부제를 붙였음을 상기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발전의 새로운 법칙의 발견만으로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은 아니고, 따라서 비판은 부르주아 의식과 문화에 대한 지적 연대성을 필요로 하였다. 속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철학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인하였으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는, 철학의 진리는 바로 그 진리가 현실으로의 혁명적 변형을 이루기까지 보존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선호하는 텍스트인《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에서 마르크스는 철학의 기본적 역할에 대한 윤곽을 제시했는데, 여기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는 해방의 심장이며 철학은 그 머리라고 주장하였다. 이 두 가지는 모두가 기본적인 것으로서, '철학은 프롤레타리아의 극복이 없이 스스로 현실화될 수 없으며, 또한 프롤레타리아는 철학의 실현 없이 스스로 극복할 수 가 없다'고 하였다.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들―즉 헤겔, 청년 헤겔주의자, 그리고 포이에르바하와의 만남―은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정수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이것은 후기 저작들에서는 좀더 억제되었던 유토피아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정신을 발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초기 마르크스로의 복귀와 거의 같은 맥락을 이룬다.
청년 마르크스의 저작들은 반철학적 유물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의 폭넓은 견해로 수정되었다. 마르크스주의가 유물론적임에는 틀림없으나, 바로 이 점에서 획을 긋다시피 한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그가 단순하고도 수동적인 유물론을 옹호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해졌다. 포이에르바하는 독일 관념론의 철학적 진리를 그의 견해 속에 반영시키지 못했으며, 또한 사상과 철학의 비판적 기능을 개념화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적주의(靜寂主義, quietism)가 그의 유물론을 감싸고 말았다. 마르크스는 철학을 위한 변명이라고는 거의 한 적이 없다. 목적은 세계를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하는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거듭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철학적 작업을 정당화하였다. 그 후 일세기가 지나서 아도르노는 그의《부정의 변증법》첫 구절에서, 일단 폐물이 된 듯이 보였던 철학은 일실(一失)했던 것을 실현하려는 계기에 의해서 아직도 살아있다고 하면서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 비판이 곧 철학의 정당화임을 암시하였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어휘와 개념들은 헤겔을 연상시키곤 했는데, 실제로 그들 모든 사상가는 거의 예외 없이 독일 관념론을 師事하였다. 마르크스주의의 헤겔적 근원으로의 복귀는 루카치의《청년 헤겔》, 꼬제브의《헤겔 독해 입문》, 그리고 마르쿠제의《이성과 혁명》과 같은 저작들을 통하여 전반적인 전통을 형성하였다. 실제로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헤겔적 전통이 생생하게 남아있거나 확고히 성립되어 있는 곳에서만 나타났다. 중부 유럽에서는 딜타이[Wilhelm Dilthey]가 헤겔적 연구를 부활시켰고,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스파벤타[Betrando Spaventa], 젠틸레[G. Gentile] 그리고 크로체[B. Croce] 등의 헤겔주의가 그람시[Gramsci]를 복돋워주었으며, 프랑스의 서구 마르크스주의 출현 이전에는 꼬제브, 쟝 이뽈리뜨[Jean Hyppolite], 그리고 쟝 발[Jean Wahl] 등이 프랑스 독자에게 헤겔을 소개하였다. 그 독특한 헤겔적 색채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이 글에서 논하고 있는 그런 의미에서의)를 다른 형식의 서부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신칸드 학파를 끌어들였던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헤겔적 개념의 마르크스주의를 일소하려고 했던 알뛰세의 구조적 마르크스주의―와 단절시켰다.
마르크스주의의 헤겔적 근원으로의 복귀가 긍정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과 함께 이것은 곧 엥겔스와 자연 변증법의 평가를 둘러싼 좀더 논쟁적인 영역으로 번져나갔다. 정통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사적 유물론을 기초하였으므로 그들의 명백한 공헌을 분리한다는 것은 헛된 것이다. 마르크스 사망 이후에, 엥겔스는 마르크스주의의 공식적 견해의 하나로서 대중성을 획득했던 일련의 저작들을 출판하였다. 여기서 엥겔스는 변증법은 자연과 사회 모두에게 타당한, 단지 '운동의 일반법칙의 과학'(《반듀링론》13장)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원리는 보편적이며, 과학적인 법칙으로서의 변증법을 확증해주는 까닭에 정통적인 마르크스주의에 적합한 것으로 입증되었지만,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의견을 달리하였으며 루카치는《역사와 계급의식》에서 마르크스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엥겔스를 비판하였다. 즉 변증법을 자연에까지 확장함으로써 역사의 고유한 영역들―주관성과 의식―이 상실되었다고 보았다. '변증법의 중요한 결정 요소들―주관과 대상의 상호작용, 이론과 실천의 통일, 역사적 변화 등……은 자연에 관한 우리의 지식에는 결여된다'고 본 것이다. 루카치는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비난한 최초의 비판자는 아니었지만―몇몇의 이탈리아 헤겔주의자들(크로체와 젠틸레)과 프랑스 사회학자들(아들러와 쏘렐)이 루카치보다 이 점에서 앞서 있었다―가장 뛰어난 비판자였다. 비록 경박한 문제거리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문제는 엥겔스 자신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가 정당화한 자연의 변증법에 관한 것이었다.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가 자연 변증법에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데 반해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물질은 변증법적일 수가 없으며, 게다가 자연의 변증법은 사회의 역사적·문화적인 구조와 관련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 것이 된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적 전통에서 추출할 수 있는 모든 개념들을 사회의식의 형성이나 그 기형화에 대하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실제로 부르주아적 문화의 지적 내지 물질적 힘과의 연대성이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목표를 규정해 놓았다. 그들은 부르주아적 문화가 단순한 신비화로써 제거될 수 없는 삶과 현실성을 소유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물질적 구조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에 대한 관례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의도로서는 진리나 혹은 지배적인 문화의 냉혹한 성질, 그 어느 것의 진가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까닭에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러한 의도나 목표가 포기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부르주아 문화를 설명하고 이를 원상태로 돌리기 위해 그들은 그들 저작의 제목으로 규칙적으로 나타나다시피 하는(루카치의《역사와 계급의식》1923, 구테르만과 르페브르의《허위 의식》1936, 그리고 가벨의《허위 의식 : 물화(物化)에 관하여》1975) 허위 의식, 물화 그리고 문화적 헤게모니 등의 개념을 재발견하면서 또 새로이 고안하였다. 이와 같은 방향에서 몇 가지 결과가 발생하였다. 첫째, 그람시로부터 마르쿠제에 이르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지식인에게 중추적 역할을 떠맡게 하였다. 지식인은 이제 지배계급의 아첨꾼 이상의 존재가 되었으며, 마르크스주의 자체는 지적 신뢰성과 지식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였고 그럼으로써 부르주아 문화와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문학, 음악 그리고 예술 등을 망라한 문화 연구 등 폭넓고 다양하게 손을 대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노동 구조만큼이나―아마도 그것 이상으로―대중 문화는 부르주아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요인인 까닭에, 그들은 대중 문화와 상업 문화를 감시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 중의 몇몇, 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유사한 이유에서 정신분석론에 손을 대었다. 그것은 부르주아 문화의 예리한 칼날일 뿐만 아니라, 개인이 어떻게 문화를 받아들이는가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내지 이론적 형식은 점차 레닌주의에 도전하는 정치적 형식으로 바뀌었다. 주관성, 의식 그리고 자기행위 등의 철학적 개념은 노동자 평의회, 혹은 공장 평의회 같은 정치적 조직으로 변형될 수 있는 것으로서, 이것은 진보적인 정당이 그러했던 것보다도 더욱 신뢰할 만한 서구 마르크스주의적 실천의 정치적 표현인 듯이 보였다. 정치적 형식은 지속적인 관심과 적절한 방어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는 유고슬라비아의 철학자 및 사회학자를 중심으로 한《실천》(Praxis)그룹이 이끄는 마르크스주의와 유사성을 지녔다. 이렇듯 더욱더 정치적인 영역에서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1920년대를 휩쓸던 '좌익' 공산주의라고 하는 위대한 이단과 엇갈리는 상황을 빚게 됐다. 레닌주의의 비판자들은 그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좌익주의'라고 비난하였는데, 물론 '좌익' 공산주의자들도 철학성이 희박한 방식에서이긴 하지만 유사한 정치적 원리를 더욱 강력하게 표현한 것이 사실이다. 그들도 부르주아 문화의 충격에 관하여 동일한 관심을 가졌으며, 레닌주의는, 문화적 우월성에서 오는 현실과의 대결에서 실패하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허약함은 부르주아와 부르주아 문화가 정치적으로 강력하지 못했던 러시아에 그 기원이 있다고 보아야만 한다. 따라서 정치적 형식으로서의 레닌주의는, 광범위한 그리고 준(準)민주적인 문화적 지배에 대하여 논쟁하기 위하여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원리를 기반으로 하여 '좌익'공산주의자들은 해방을 위한 적절한 프롤레타리아적 수단으로서 노동자 평의회와 공장 평의회를 옹호하였다. 자발적인 노동계급에서 해방의 주체적이며 객관적인 계기들이 수렴되는 한, 계층적인 조직은 이미 프롤레타리아를 무력하게 만든 문화적 의존성을 모사(模寫)하는 까닭에 문화적 해방은 위로부터 획득될 수는 없었다. 덧취 학파(Dutch School ; 판네쾨크, 고터)와 혹은 룩셈부르크[Luxemburg]를 포함한 '좌익' 공산주의자들은 이 문제에 관하여 루카치, 코르쉬 그리고 다른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의견을 같이하였다.
비판가들은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정치경제학의 부정 및 유물론과의 결별을 통하여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게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텍스트에서 그들이 관념론과, 그리고 정당 생활의 평범한 현실성에서 이탈했음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실은 마르크스도 역시 때로는 일상적인 정치와 멀어져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또 노동계급 운동의 스탈린주의와(Stalinization)와 많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에게 망명을 강요했던 파시즘은 독단적이 아닌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한 실제적인 정치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하튼간에,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비록 어떤 경우에는 후자에 의해 무시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강한 흥미를 유발하는 문헌들을 저술하였는데, 다만 그것은 때때로 그들이 신념 따위를 버렸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던 고정적 전통의 허약함으로 인해 도전을 받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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