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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력과 생산관계 ] (force and relations of production)

성숙한 마르크스의 경제적 저작을 통해서 보면, 여기에는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동학(動學)의 배후에 놓여져 있다는 생각이 깃들여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모순은 역사를 생산양식의 연속으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생산양식의 붕괴와 다른 생산양식에 의한 그것의 대체를 필연적인 것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산력/생산관계의 조합이 어떠한 생산양식에도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과정 전체의 배후에 놓여져 있다. 그것들과 사회구조 간의 관계는 마르크스의 가장 간결한 문장들로 표현되어 있다.

인간은 그들의 생활을 사회적으로 생산함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불가피하게 일정한 관계, 즉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단계에 조응하는 제 생산관계에 들어선다. 이러한 제 생산관계의 총체가 토대를 구성하며, 그 위에 법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용립(聳立)하게 된다….
(《정치경제학 비판》서문)

동일한 곳에서 역사의 동력으로서 작용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이 갖는 힘에 관한 서술도 찾을 수 있다. 즉 '일정한 발전단계에서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그것이 지금까지 작용하여 왔던 현존하는 제 생산관계와 모순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생산력 발전의 제 형태로부터 이러한 제 관계는 그들을 속박하게 된다'. 거기에서 사회혁명이 시작된다.
마르크스는 생산력에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생산력의 발전은, 가령 기계의 발전, 노동과정에 있어서의 변화, 새로운 에너지원의 도입, 프롤레타리아트의 교육 등과 같은 역사적 현상들을 이룩해낸다. 그렇지만,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몇 가지 요소들이 남아있다. 어떤 저자들은 과학 자체도 생산력에 포함시켰으며(그 결과로 인한 생산수단의 변화뿐만 아니라), 코헨[Cohen](1978, ch.Ⅱ)은 지리적 공간도 생산력에 포함시켰다.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경제적인 소유관계에 의하여 구성된다. 자본주의 하에서 이러한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력만을 소유하는 반면, 부르주아는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데에 있다. 경제적 소유는 법적 소유와 구별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생산력의 통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법적인 의미에 있어서 연금기금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노동자들은 연금기금이 투자되는 한도 내에서 회사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간접적으로는 생산수단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비록 법적 지위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주식 소유가 생산수단보다는 수입에 대한 법적 명칭일 뿐이라는 근거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분명히 생산수단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며 따라서 경제적 소유가 아닌 것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발전이 일어나는 방식과 이러한 발전의 제 효과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있어서 주요한 논쟁거리이다. 서문의 구절로부터 행하여지는 가장 직접적인 해석은 이렇다 ; 생산양식 내에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조응이 존재하며, 그 결과 제 생산관계와 법적, 이데올로기적 및 다른 사회적 제 관계간에 조응이 존재한다(두번째의 조응은 토대와 상부구조간의 조응이다). 조응은 생산력이 일차적이며 생산관계는 생산력에 의해 결정되고, 그것들이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인과관계의 연쇄 속에서 이러한 세 가지 요소들이 차지하는 각각의 지위는 그것들이 역사발전에 관해 내포하는 바에 의해 중요성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생산력의 발전은 그것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으로 이끌어지며(즉 '속박으로 전화하며'), 이러한 모순의 심화는 현존 생산양식과 그 상부구조의 붕괴로 이끌어진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중심적인 역사적 역할에 관한 이러한 해석은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생산력을 주요한 동력으로 간주하는 것은 타당한가? 금세기의 3/4분기에 있어서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부활에서 마르크스의 명제에 대한 이러한 특수한 해석에 상당한 비판이 행하여졌다. 중요한 고려 중의 하나는 그 명제가 이미 기각된 정치적 함의(含意)를 전달하기 위하여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즉 생산력의 우위성(트로츠키도 이 견해를 공유하였다)에 기인한 강제적 집산화와 정치적 억압과 더불어 스탈린의 급속한 공업화정책, 따라서 만약 소련의 생산력이 근대공업의 그것으로 될 수 있다면 사회주의적 생산관계가 본래적인 기초를 가지게 될 것이라 주장되었다. 더구나 마르크스 자신의 저작도 생산력의 우위성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마치 생산관계가 생산력을 지배하고 생성하는 것처럼 쓰고 있다. 예를 들면《자본론》Ⅰ권에서, 특히 노동의 자본에 대해 실질적 포섭의 발전을 논의하는 부분에서(1933년에 최초로 인쇄된 원고 '직접적 생산과정의 제 결과'에서), 마르크스는 마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생산수단과 노동과정을 변혁시키는 것처럼 쓰고 있다. 그러한 규정은 만약 마르크스주의가 상호작용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간의 조합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려는 것이라면, 생산력의 우위성에 대한 문제로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생산력이 결정인자로서, 어떤 의미에서는, 두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관계와 방식 양자가 모두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자신의 텍스트는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며, 어떤 저자들은 두 가지 구별되는 요소들 간에 그러한 상호작용의 가능성은 배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생산력이 생산관계의 형태로 됨에 따라 그것들은 붕괴하거나,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함께 '융합'시켜버리기 때문이다(Cutler et al 1977, ch. 5. Balibar 1970, p.235).
생산력의 우위성에 관한 사고는, 그것이 갖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코헨에 의해 강력하게 재확인되었다. 코헨은 그 명제의 일관성을 그 자신의 용어로 제시하고, 그 명제가 마르크스의 저작에 있어서 타당한 논리적 중요성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어려움은, 양자가 하나의 생산양식 내에서 반드시 양립 가능한 반면에, 그것들 중의 하나는 모순이나 양립 불가능성이 성숙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의 진보는 비대칭성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도 우연적이라기 보다는 체계적인 비대칭성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립 가능성'이란 상호간의 균등한 결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초래하면서 발전하고, 그것은 다시 생산력에 대한 생산관계의 효과가 가중되는 방식으로 생산관계에 반작용을 미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생산관계가 우위에 있게되며, 생산력의 성숙은 모순을 특징지우는 '속박'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코헨은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생산력의 어떤 의미에서 외생적인 요소로부터 결과되는 것이므로, 생산력의 발전이 우위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외부에 존재하면서 전자(前者)에 작용을 미치는 동인(動因)이 존재한다. 코헨에게 있어서 이러한 동인은 인간의 합리성, 즉 생산력을 발전시킴으로써 그들의 상황을 개선하고 희소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합리적이고 항구적인 충동이다.
코헨이 물질적인 결핍의 극복에 있어서의 인간들의 합리적인 이익추구를 강조하는 것은, 그가 마르크스의 생산력 우위라는 견해를 옹호하는 데에 있어 하나의 약한 고리이며 결정적인 문제이다.
레빈[Levine]과 라이트[Wright](1980)가 주장하듯이, 비록 인간의 이익 작용이 계급이익의 맥락에서 보여지며, 그렇게 함으로써 비마르크스주의적인 개인주의를 회피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계급의 '역량'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계급이익은 역사를 형성함에 있어서 그 효율성을 보장하여 주지 않는다. 레빈과 라이트는 계급역량을 '계급투쟁에 있어서 제 계급은 이용 가능한 조직적, 이데올로기적 및 물질적 자원'이라 정의하였다. 그리고 '이익의 실천으로의 전환이 어떠한 적절한 역사이론에 있어서도 중심적인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이론이 자본주이적 생산양식의 붕괴와 사회주의의 설치로 이끌어지는 모순의 유형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 특별히 민감한 이슈가 된다. 그러한 전환을 수행함에 있어서 계급이익은 물론, 계급역량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저자들은 어떤 기본적인 인간의 이익에 대응하여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적인 발전이 움직일 수 없이 작용한다는 경제적 결정론과는 대조적으로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가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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