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 의견바로가기

[자연과학] (natural science)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자연과학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관념론과 유토피아적 이념의 선택을 제시한다. 수십년 동안 엥겔스의 《반듀링론》의 인용구가 팜플렛 형태의 《사회주의》로 출판되었다. 공상적 및 과학적이라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9세기 사상을 특징짓는 진보라는 의미에서 과학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해석들-베른슈타인, 카우츠키, 플레하노프-은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특징을 확인하는 자연과학적 모델들, 특히 다윈의 진화론에 의거해서 그들의 이론을 정립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과학의 방법과 가정을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개념으로 연결시키는 이론으로서 다윈주의를 받아들였으며, 다윈주의에 대한 미묘한 의견을 표명했다. 마르크스는 다윈주의를 그들의 역사관을 입증하는 자연사의 실례로 간주했으며(엥겔스에게 보낸 편지, 1860년 12월),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묘비 앞에서 행한 연설에서, 인간의 역사법칙에 대한 마르크스의 발견은 유기체의 진화법칙에 대한 다윈의 발견과 유사하다고 하였다. 두 사람 모두 다윈주의가 유도했던 살아있는 자연의 형상-맬더스의 투쟁의 법칙과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법칙-에 크게 감동 받았다.(마르크스가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 1862년 6월 18일) 자연과학을 가장 높이 평가하는 저서들에서조차도 엥겔스는 노동 개념의 근거를 원숭이와 인간 사이에 두려 하였다.(《자연 변증법》9장)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 중에서도 특히 엥겔스는 수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에 있어서의 과학적 발전 연구 학도에 가까웠다. 엥겔스는 마르크스보다 한발 더 나아가 변증법을 자연법칙에 포함시켰다.(→자연 변증법) 마르크스는 과학을 노동력의 통제수단과 생산력으로 간주했다. 그는 자연과학이 산업을 통하여 실천적으로 인간 생활에 침투한다고 지적했다. 즉 과학은 직접 인간의 비인간화라는 효과를 야기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인간 생활을 변형시켜 인간 해방을 준비해 왔으며, 이러한 작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자연과학은 추상적 유물론과 추상적 관념론을 포기하게 하고, 실제적인 인간적 삶의 토대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소외된 형식으로나마 인간과학의 토대가 될 것이다. 삶에 대한 토대와 과학에 대한 토대는 연역적으로 하나의 허위일 뿐이다.'(《경제학 및 철학 수고》3부) 《요강》에서 마르크스는 산업과 과학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했고, 이러한 관계가 점점 더 확대될 것이라고 예견했다.('자본에 대한 장', pp. 704∼5) 《자본론》Ⅰ권에서, 노동자를 지배하기 위해 고안된 기술적 혁신을 비판하면서 그는 'Ure'를 인용했다. '이 발견은 이미 말했듯이 위대한 이론임이 분명하다. 자본이 과학을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뒷받침할 때, 다루기 힘든 노동자의 손은 언제나 유순해질 것이다.'(13장 5절)
마르크스주의의 많은 지류들이 그들의 특징을 과학으로 강조했지만, 그러나 '과학'이라는 개념을 해석해 보면 그것은 때로는 합법성에 대한 탐구로서, 자연과학과는 전혀 다른 것을 언급한 것이 된다.(→과학과 기술 혁명) 자연과학이라고 할 때 이것은 대개가 생산의 필요에 따른 과학적 탐구의 원천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뉴튼의 "원리"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근원'이라는 보리스 헤젠의 논문(부하린 1931)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이것은 과학적 혁명의 가장 유명한 기록과 17세기의 경제적 문제를 연결하는 것이다. 같은 책에 나오는 다른 논문들은 과학적 이론이 다른 수단에 의한 실천의 연속임을 강조하고 있다. 부하린에 의하면 과학의 자기 충족적 특징에 대한 관념은 잘못된 의식으로서, 오히려 그것은 전문 과학자들의 주관적 열정과 과학의 객관적인 사회적 역할과의 혼동이다. 즉 생산과정에 있어서의 과학의 사회적 역할은 여전하다는 것이다.(1931, pp. 19∼21)
그람시는 모든 과학적 가정들은 상부구조이며 모든 지식은 역사적으로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다.(《옥중수고》pp. 446, 468)

그러므로 그러한 물질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그러한 물질이 사회적 내지 역사적으로 생산을 위해서 어떻게 조직되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학은 근본적으로 역사적 범주로서, 인간관계와 상응하여 연구되어야 한다. … 자연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힘의 - 즉 존재하고 있는 물질의 질의 - 발견과 안출이 아니라, 사회의 이익과 생산력의 발전, 더 나아가서는 생산력 발전의 필연성과 밀접하게 관련된 '창조'라는 것을 어떤 의미에서 이야기하고, 어떤 관점에서 부인할 수 있겠는가?(앞의 책, pp. 456∼6)

자연과학의 역할과 생산력으로서의 과학의 발전은 과학과 기술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재건, 즉 초정밀전자공학, 생체기술학, 더욱더 민감해진 보측수단, 감독과 통제 등등은 정치학을 과학, 기술학, 의학의 내부로 끌어들일 필요를 인식하게 하였다. 대부분 '변증법적 유물론' 전통에 속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변증법적 유물론) 과학적 실천을 가치 중립적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급투쟁으로 다루었다.(→버날) 반면에 '비판적 이론가들'(→프랑크푸르트 학파)은 자연과학의 범주, 가정, 그리고 그의 합법적 역할이 혁명적 변화의 중심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1권 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의 과학 즉, 역사과학만을 알고 있다.'

■ 인접어

자본주의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
자본주의의 단계 구분
자연
자연 변증법
자연과학
자연과학自然科學
자연법
자연법칙
자연주의 문학
자유

뒤로
■ 의견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모바일버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