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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미학(19 세기)] ()


근세 미학 초기에 주역을 담당했던 영국도 그 후에는 독일에 주도권을 넘겨주었지만,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몇 가지 미학적 이론을 낳았다. 특히 코울리지(Samuel T. Coleridge 1772~1834)는 낭만파 시인으로서 체험에 입각하면서, 칸트, 셸링 미학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는 지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념의 살아있는 힘으로서 창조적 상상력이 예술 체험에서 지니는 역할을 강조하고,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1770~1850)의 신비적 범신론을 보다 이론적으로 발전시켰다. 후에 카알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이 역사에서 위대한 개인의 의의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시인을 실재 비젼에 따라 행위하는 영웅으로서 찬미하였다. 또한 에머슨(Ralph. W. Emerson, 1803~82)도 마찬가지로 낭만주의 입장을 가졌지만, 예술 활동의 도덕성 및 일상성을 중시하는 점에서 미국적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영국에는 외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의 영향, 내적으로는 산업 혁명 후 근대문명의 발달에 의해서 새로운 정신적 풍토가 조성되었는데, 미학사상에도 그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은『근대 화가론』(Morden Painters,1884~60)에서 성장 . 쇠퇴 . 저항이라는 개성적인 모습을 띠고 변화하며 운동하는 자연에서 무한정 . 통일 . 영원 . 정의라고 일컬어졌던 신의 속성을 상징하는 ‘전형미’(Typical beauty)와 ‘생명체에서 기능이 적절하게 수행되는’ 속에 나타나는 ‘생동미’(vital beauty)를 인정하고 이러한 미를 보편적으로 ‘관철하는 상상력’(penetrative imagination)의 개념을 정립함으로써 새로운 미의 영역을 개척했다. 여기에는 본능이나 감정과 ‘도덕적 지각’을 융합시킨 미의식에 대한 독특한 고찰이 엿보인다. 더욱이 그는『베니스의 돌』(The stones of Venice, 1851~53)에 예술을 전 민중의 창조적 표현을 통해 노동자의 생활이나 사회적 정의와 결합시켰다. 이와 같은 해석은 모리스(William Morris, 1824~96)에 계승되어 예술을 “인간이 조동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근대 사회 노동과 노동의 즐거움과의 분리 . 대립은 기능을 예술로부터, 소예술(lesser art)을 대예술(greater art)로부터 분리시켰는데, 이러한 대립을 화해로 이끌기 위해 그는 예술의 재료와 효용에 대한 고찰을 진척시켜 공예를 재평가했다. 그리하여 그는 예술이 생활과 융합되고 예술적 제작자가 사회적 연대성을 갖고 있던 중세를 예찬했다.
근대 산업의 발달과 함께 사회적 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엄청난 핍박 가운데에서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하는 유미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이 사조는 이미 19세기 전반에 미국 포우(Edgar Allan Poe, 1809~49)가 그 조짐을 드러냈지만, 페이터나 와일드에 이르러서는 보다 그 기치를 선명하게 한다. 페이터(Walter Pater, 1834~94)는 예술작품이나 자연미가 “쾌감같은 류의 인상으로 감동을 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라고 한다. 이처럼 그는 인상주의 입장에서 미적 체험의 진실을 끊임없이 유동하는 순간적 인상의 미에서 구했다. 또 와일드(Oscar Willde, 1856~1900)는 사회에서 완전한 고독 가운데에서 예술의 이상을 찾아내면서 ‘자율적 예술’(autonomous art)을 주장했다.『미학사』(History of aesthetics, 1892)의 저자로 알려진 보상케(Bernard Bosanquet, 1848~1923)는 헤겔주의에 기초하여 18세기까지는 미학상 가장 중요했던 형식원리를, 낭만주의운동 이래 주제로 부각되었던 검정표현의 원리와 결합하려는 절충주의적 미학사상을 보여주었다. 또한『미학3강』(Three lectu
res on aesthetics,1915) 에서는 감정이 객체에 담겨져 그 물질적 형식에 의해 형태화되고 영속적 . 보편적으로 되는 미적 체험의 특질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특히 감정정착제로서의 매개재(媒介材)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크로체와 대립했다.
브레들리(Andrew C. Bradley,1851~1935)는『옥스포드 시론(詩論)』(1905)에서 예술작품의 형식 . 내용에 대한 일뤈론을 제창했다. 거기에 따르면 내용은 ‘서로 관계하는 요소’, 형식은 ‘요소간의 관계’이고, 예술작품은 이것들을 전체로서 융합시킨 ‘서로 관계하는 요소의 유기적 통일’이어야 한다. 따라서 내용은 형식과 밀착하여 고유의 미적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그것 자체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다. 이러한 브래들리 사상은 현대의 신비평(New Criticism)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그 당시 옥스퍼드대학에서는 크로체 미학의 영향도 상당히 강하여, 캐리트(Edgar Frederick Carritt)는 미를 감정의 표현이며 순수하게 정신적 . 주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The theory of beauty, 1928), 콜링우드(Robin G. Collingwood,1889~1943)도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창조적 감정의 표현이라고 보았으며, 예술활동의 본질을 논리적 판단에 앞선 상상에서 찾았다.(Outline of a philosoph y of art, 1925; The principles of art. 1938).
그러나 19세기 영국미학에서는 경험론적 경향도 두드러졌다. 이것은 페히너 이후 미학 전체의 일대 조류로 되어 여러 가지 문제를 전개시켰는데, 영국에서는 특히 다윈의 생물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생리학적 . 심리학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스펜서는 미적 활동을 본질적으로는 일종의 유희로 보았다. 모든 신체적 . 정신적인 노동은 개체유지와 종족보존을 위해서 이루어지지만, 예술은 이러한 생물적 필연성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희와 함께 예외적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은 ‘과잉에너지’에 의한 생활의 한가로운 여가활동이며, 사람은 그 속에서 생존의 절박감으로부터 벗어나 강력한 자극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알렌(Grant Allen, 1848~99)은 스펜서의 유희설을 계승하여 각종의 실험적 연구를 통해 그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생리학적 미학』(Phrsiological aesthetics, 1877)에서 쾌락을 신체기관의 건전한 활동에 따르는 뇌척수신경의 흥분과정이라고 하는 생리학적 이론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 ‘경제적 원리’에 의하면, 미라는 것은 “생명기능과는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지 않은 과정”을 통해서 신경에 최대 자극과 최소의 신비를 주는 것이며, 그때 수반되는 미적 쾌락의 양은 이 신경조직에 포함되어 있는 신경섬유의 수에 비례하고, 흥분 빈도에 역비례하는 것이다. 마샬 (Henry R, Marshall.1852~1927)이 『미학의 원리』(1895)에서 세웠던 가설도 본질적으로는 생리학적인 것이다. 자극 에너지가 그것에 대한 반응 에너지에 비해 작거나, 동등하거나, 큼에 따라 각각 쾌 . 무관심 . 불쾌 들을 낳는다. 예술이 가져다주는 쾌락은 ‘영속적 쾌락’이며, 저급한 감각이 가져다주는 쾌락처럼 연속적 자극에 의해 쇠약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는 영속되는 진실한 쾌락이다.” 그 외에 셜리(James Sully, 1842~1933)나 베인(Alexander Bain, 1818~1903)도 쾌락의 감각적 요소나 연상적 관계에 대해서 각각 세밀한 심리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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