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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프랑스 미학] ()



19 세기 프랑스 미학은 세 개의 시기로 나뉜다. (1) 미의 상대성 또는 실용성을 주장한 1818 년까지, (2) 독일 관념론의 영향 하에서 쿠쟁이 군림하던 독단론의 시대, (3) 1860 년대 이후 뗀느를 중심으로 하는 과학적 미학의 시대이다. 그러나 각 시기를 특징짓는 이 세기의 요소는 관점을 바꿔보면, 모두 19 세기를 끝까지 관철하는 프랑스 미학의 주요성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1) 제 1 기
대혁명 이후 귀족들의 국외 망명에 의해 살롱이 붕괴되고, 18세기부터 이미 동요하고 있던 고전주의는 이때에 이르러 결정적 타격을 받아 대신에 낭만주의가 대두한다. 문예사조의 이러한 현저한 변동은 그대로 미학이론에도 파급되어, 19세기 초 미학은 낭만파 이론가에 의해서 대표된다.
스탈부인(Anne Louise Germaine, Baronne de Staél-holstein.1766~1817)은『문장론』(De la littérature considérée dans ses rapports aver les institutions sociales, 1800)에서 역사적· 풍토적 · 사회적 관점에서 문예작품의 여러 구성요소들을 규정하고, 종래와 같은 자국존중의 입장을 벗어나 코스모폴리탄의 입장에서 미의 상대성을 추구하려고 한다. 이것은 이미 뒤보스가 품고 있던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풍부한 실례를 들어 이것을 보여주려고 했으며, 진화론에서 시사를 받은 인류의 ‘완성가능성’(Perfectibilité)으로부터 각 장르의 발전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독일론』(De I’Allemagne, 1810) 제2부「문예와 미술」에서는 앞의 책에서도 보여주었던 북방과 남방의 대립문제에 대해 “북방은 낭만적이고 남방은 고전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의 이론은 샤토브리앙(Francois René Vicomte Cha -teaubriand, 1768~1849)의 이론과 함께 낭만주의 지도 이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카트르메르(Quatremére de Quincy, 본명 Antoine Chysostome Quatremére. 1755~ 1849)는 예술의 목적을 쾌락을 산출하는데 있다고 보고, 이것을 음미하는 능력을 상상력에서 구했다. 주저서 『미술에 있어서 모방의 본질, 목적 및 수단』(Essai sur la nature. le but et les moyens de límitation dans les beaux-arts, 1823)에서는 예술의 사명을 모방에 두고, 예술가의 과제를 “현실을 자신의 표상과 교환하는 것......물 그 자체를 심상(心像)과 교환하는 것”으로 보아 허구의 기능을 강조하고, 예술현상은 작품의 허구와 관조자의 심적 기능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성립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자연미는 관조자의 심상에 존재하는 쾌락이고, 허구로 만들어낸 예술미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이 시기는 어떤 의미에서 볼 때 18세기의 연속으로서, 예술의 도덕적 · 사회적 실용성을 주안점으로 한 저서가 많아 일종의 과도기로 볼 수 있다.

(2) 제 2 기
1818년 쿠쟁은『진, 선, 미에 대하여』(Cours de Philosophie sur le fondement des idées absolues du vrai, du beau et du bien, 1836)라는 미학 강의를 필두로 자신의 활동을 전개했는데, 그 절대적인 영향은 19세기 중엽의 미학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론적 풍조 가운데에도 아직은 약간의 심리학적 . 사회학적 경향이 보이고 미의 상대성 주장도 간간이 발견된다.
쿠쟁(Victor Cousin, 1792~1867)은 미에는 현실미와 이상미가 있다고 한다. 현실미는 보편적 . 절대적 판단 및 개별적 . 상대적 감정으로 이루어지는 주관과, 일반적 요소와 개별적 요소로 이루어지는 대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상미에 이르기 위해서는 대상 가운데서 개별의 파편으로부터 점차 일반적 요소를 끄집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미는 이성에 대응하기 때문에 감정에 대응하는 쾌락과 구별된다. 또한 미적 감정은 무관심성을 특색으로 하는 고유한 만족을 찾아내기 때문에 욕구나 정열과도 관계없으며 실용성과도 완전히 다를 것이다. 모든 미는 물적 . 지적 . 도덕적인 미로 구분되고 이러한 것들이 현실미를 형성하고 있다. 이상미가 그 위에 서고 그 극한은 신(神)이다. 신이야말로 쿠쟁에게는 신 . 선 . 미가 하나로 되는 유일지고한 존재이며, 이 세 가지는 그 절대존재의 속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미의 재생산이고 이것을 행하는 능력을 가진 자를 천재라고 부른다. 예술에서는 인간의 상상력이 자연의 도움을 받아 이상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물적인 미는 이상미의 상징이기 때문에 예술의 목적은 그 상징관계를 밝히면서 이상미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이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미적 감정을 타인의 내부에 환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하여 예술은 상징적임과 동시에 공감적이다. 쿠쟁도 사실을 중시하는 과학적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독일철학의 공허한 측면을 많이 받아들인 관념론으로 일관했는데, 그의 영향이 컸던 것은 프랑스 미학의 입장에서 볼 때 오히려 불행한 일이었다.
라무네 (Félicité Robert de Lamennais (la Mennais), 1782~1854)는 예술이 어떻게 하여 물질적 혹은 감각적 조건들 하에서 신적인 것을 재생산하는가를 보여주려 한다. 예술은 절대로 자연이나 심지어는 고대예술조차 모방해서는 안 되며 신과 같이 부동의 이상적 원형을 재생산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승천(昇天)의 끊임없는 운동처럼 예술도 결코 성취할 수 없는 신과의 결합, 무한의 미를 열망한다. 영원한 것은 예술의 감각적 요소를 배제하기 때문에 완전한 결합이 이루어지는 순간 예술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라무네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술은 각 시대에 군림하는 종교적 교리의 현현(顯現)인 사회적 원리의 표현이며, 예술가의 사명은 사회의 진보의 예언자이다. 라무네도 또한 예술의 발전을 믿고 그 역사적 상대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웃음을 자존심의 은근한 만족이라고 규정했는데, 이것은 19세기에서의 웃음에 관한 설명의 효시이다.
주프로아(théodore Jouffroy, 1796~1842)는 주저서『미학강의』(Cours d'esthétique, 1843)로 유명하다. 이것에 의하면 모든 존재의 근저에는 힘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표현하는 것이 상징이다. 예술가는 물적 상징에 지나지 않는 세계에서 자연과의 유사, 즉 공감에 의해서 이 힘을 파악하고, 나아가 장애임과 동시에 수단인 물질의 상징에 공감하면서 이 힘을 표현한다. 미적 사상(事象)은 항상 대상과 주관의 극한관계 속에서 성립하기 때문에, 대상은 표현에 의해 관조자의 주관으로 작용하고, 주관은 공감에 의해 대상의 활동을 이해한다. 결국 어떤 영혼의 상태를 대상에서 현현(顯現)시키는 것이 미적 능력이며, 그 상태의 주관 속에서의 재생산 또는 공감이 미적 감정이고, 이 양자가 바로 쾌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주프로아는 스승 쿠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그 심리학적 방법은 당시로서는 참신한 것이었다.
레베끄(Jean-Charles Lévêque, 1818~1900)는 미를 눈으로 볼 수 없는 위대한 질서를 가진 힘이라고 정의하고, 미의 존재는 신처럼 영원하고 절대적이며, 미적 인식은 개성에 의존하지 않고 완전히 이러한 절대적 존재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념론적 미학에 의하면, 예술가는 자연을 모방할 때 미의 입장에서 모델을 선택하기 때문에 예술은 아름다운 영혼 또는 아름다운 힘의 모방이다. 따라서 모방은 예술의 수단에 지나지 않고 예술의 목적은 미적 효과를 낳는 데 있다.(La Science du beau,1861).

(제 3 기)
19세기 자연과학의 급격한 진보가 미학이론을 크게 동요시키자 1860년 이후의 저작에는 많든 적든 과학적 방법을 책용하려 하는 의도가 나타난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까지의 형이상학이나 관념론의 견고한 뿌리를 없애기는 어려웠고, 상당 부분은 다시 독단론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예전에 없던 미학의 활발한 저작 활동이 이루어져, 프랑스 미학도 점차 그 특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독자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을 촉진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이 예술비평(특히 문예비평)이었다.
빌르맹(Abel Francois Villemain 1790~1870(67?))은 일찍부터 객관적 태도를 갖고 문예작품에 접하여 자국 및 외국문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구사하면서 공평한(impartial)비평을 꾀하고 문예작품과 풍속, 사회의 상호영향을 명시하려 했다. 따라서 그는 비교문학의 창시자로 불리고 있다.
생뜨 뵈브 (charles Augustin de sainte-Beuve, 1804~69)는 비평을 다른 문예장르와 비견하도록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는 실증적 . 과학적 비평을 목표로 삼았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은 문예의 박물지(誌 )(I'histoire naturelle littéraire)이다”라고 했다. 그는 그것이 관찰과 수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보고, 이러한 문예연구가 언젠가는 정신의 분류에 도움이 될 것을 바라고 있다. 또한 문예작품의 상대성에 대한 많은 복잡한 문제를 파악하고 문예의 사회적 기능을 밝히기 위해서는 충분하게 준비를 갖추어 신중하게 문예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영혼의 비평가였던 그의 이러한 과학적인 일면이 당시 사람들에게 미쳤던 영향은 무시하기 어렵다.
콩트(Isidore Auguste Marie Frncois Xavier Comte, 1798~1857)는 예술의 발전을 세 가지의 종교적 시기, 즉 물신숭배시대, 다신교시대, 일신교시대에 대응시키고 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실증적 사회는 예술이 보다 발전하기 위한 사회의 이상화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창조자와 관조자의 친밀한 조화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그의 실증철학은 이러한 예술관 이상으로 미학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푸르동(Pierre Joseph Proudhon, 1809~65)은 사회주의자이지만『예술의 원리와 그 사회적 사명』(Du principe de l'art et de sa destination sociale, 1865)에서 예술을 인류의 물적 . 도덕적 완전성이라는 관점에서의 자연과 우리 자신의 이상적 표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더욱이 예술은 사회에 대한 봉사이고 집단적 생산이어야 하며, 따라서 그 개인성은 집단성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예술사 속에서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이 이색적인 저서도 그의 다른 관념론적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텐느(Hippolyte Adolphe Taine,1828~93)는 콩트류의 실증주의적 방법을 예술에 적용하고, 박물학으로 유추되는 ‘과학’의 입장에서 인간의 작품을 사실로서 확인하고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예술작품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에 의존하고 있고 이것을 탄생시키는 조건을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되는데, 텐느는 거기서 세 가지의 요인을 들고 있다. (1) 종족(race) -선천적, 유전적으로 갖추고 있는 인간의 기질과 신체의 구조, 소질. (2) 환경(milieu) -이러한 종족을 둘러싼 자연적 . 사회적 환경. (3)시대 (moment)- 지나간 시대의 작가 또는 사조가 어떤 작가 또는 예술사조의 요인이 되는 것. 예술작품은 자신을 둘러싼 이러한 일반상태의 영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텐느는 이것을 실제로 고대 그리이스, 중세, 18 세기, 19 세기의 네 가지 시기에 적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예술의 목젓을 이념의 현현(顯現)에 있다고 보고, 예술가가 자연 그대로 있는 대상의 대부분의 관계를 변용하면서 그 본질적 성격을 보다 명료하게, 보다 완전하게 묘사할 때 사물은 현실로부터 이념으로 이행한다고 한다. 이리하여 작품은 가능한 한 감각적 특수성을 띠고 있는 보편적 이념이다. 작품의 상대적 가치를 측정하는 규준을 텐느는 세 가지로 들고 있다. (1) 작품 특성의 중요한 정도 - 그 작품이 어떤 장르에 속하고 또한 거기에서는 어느 정도이 표현력이나 해석력이 나타나고 있는가. (2) 작품성격의 유익성 - 그 작품이 지식이나 활력, 애정을 증진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인가, 유익한가, 해로운가. (3) 작품효과의 집중정도 - 그 작품 안에서 효과를 낳지 않는 요소나 관조자에게 통일된 인상을 주지 않는 요소는 없는가. 텐느는 풍부한 실례를 구사하여 이러한 규준을 개개의 작품이나 인물의 평가에 적용하고 있다.
텐느의 미학에 관한 주저서『예술철학』(Philosophie de l'art, 2vols.,1881)에서는 결정론과 관념론이 불행하게도 혼합되어 있지만, 뒤보스에서 비롯되어 스탈부인으로 계승된 상대주의가 그에 의해서 그 내용이 보다 풍부하게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다음 시대를 위해 새로운 훌륭한 토양을 마련해준 셈이다.
베롱(Eugéne Véron, 1825~89)은 텐느의 객관주의와 결정론을 이어받았지만, 그의 관념론을 배격하고 예술의 목적을 단적으로 미적 감동의 획득과 표현에 두고 있다. 그리고 특히 작품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것을 만든 예술가의 개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브륀티에르(Ferdinand Brunetiére, 1849~1906)도 객관적 기초 위에서 비평의 과학을 정립하려 했다. 그는 문예작품이 그 본질을 나타내는 것은 장르를 통해서이고, 각 장르는 법칙에 따라서 진화하며, 모든 작품은 그 장르의 한 계기 내지 단계라고 보았다. 그리고 생물진화론과 비교하여 문예장르의 발전을 더듬어, 그 역사적 경과로부터 장르의 존재, 분화, 정착, 변용 및 전이변형(轉移變形)의 상태를 밝히려고 했다. 그도 또한 텐느의 이론을 이어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독단론을 신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예의 정신적 소산으로서의 특질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엔느깽(Emile Hennequin, 1858~88)의 『과학적 비평』(La critiquescientifique,1888)은 그 이름에 뒤떨어지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어, 그에게 이르러서 과학적 방법은 점차 자기방식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텐느의 ‘환경(milieu)설’을 역전시켜 작가가 환경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모든 예술작품은 한편으로는 그것을 창조한 인간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의 작품이 애호받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 진리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작품이 많은 사람의 주관적 진리를 실재화 하고 그들의 생각을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엔느깽은 한편으로 위대한 작품의 완전한 인식을, 다른 한편으로 상(賞)과 찬사와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집단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미적 감동을 비행위적인 것으로 보면서 현실적 감동과 엄격히 구별하고 그것을 예술의 유희성, 허구성 탓으로 귀착시켰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적 감동이 진실로 정신적 힘이 샘솟는 생을 창조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쉴리 프뤼돔(Rene Framand Armand Sully-Prudhomme,1839~1907)은 심리주의를 취한 주프로아의 후계자이다. 그에 의하면, 미적 사상(事象)은 표현적 형식의 측면에서 나타난다. 인간이 그 내적인 것을 그의 외부형식에서 발견하고 이것에 공감할 때 객관적 표현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또한 외적 대응물을 갖지 않는 내적 공감을 형식이 결정할 때 주관적 표현이 성립한다. 이때 공감은 주프로아가 말하듯이, 사람과 사물에 공통되는 본질에 대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사람 고유의 본질, 즉 기질이 사물의 형식에 공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쉴리 프뤼돔은 독단론에서 한 걸음 멀어졌다고 할 수 있다.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67)는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을 이론적으로도 계속 주장했다. 그는 주장하기를, 예술은 미의 실현 이상의 목적을 결코 갖지 않고, 또한 미는 심정의 도취인 정열과 이성의 사료인 진실로써 완전한 미지(未知)의 열광과 영혼의 고양을 우리가 경험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비평은 과학이 아니라 공감을 갖고 작품을 이해한다는 의미에서의 예술적 협력이라고 하였는데, 그 자신의 비평은 오히려 엄격한 자기성찰이고 공감적 협력으로서는 극히 고차적인 것이었다.
귀요(Jean Marie Guyau,1854~88)는 “인생을 위한 예술”(L'art pour la vie)을 주장하고 유희설에 반대하여 생(生 )이 엄숙한 것처럼 예술은 특히 엄숙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적 감정은 생 그 자체에서 일어나는 쾌락의 감정에서 나와 인간의 존재 전체를 동요시키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자아의 진동은 공감에 의해 사회로 확대된다. 여기에서 귀요의 제 2의 주제인 사회적 관점이 나오게 된다. 이리하여 그가 말하는 예술은 감정에 의해 사회의 모든 존재로 확장되는 바, 예술의 최고 목적은 사회적 성격을 갖는 미적 감정의 생산에 있는 것이다. 천재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사회적 존재와 공감할 수 있는 극히 강렬한 능력을 가지 사람, 바꿔 말하면 사랑의 능력으로 생의 풍부함을 창조하는 사람이며, 이러한 사람은 가장 강렬하게 확산되는 감정을, 극히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생의 직접적인 감정을 사람들에게 전달해준다고 한다. 귀요는 자신의 이론을 예증하기 위해 여러 편의 시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예술현상의 복잡함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세이유(Gabriel Séailles,1852~1922)이론의 핵심은 천재와 심상(心象)이다. 그에 따르면, 천재라는 것은 정신의 자연이자 건전한 상태인 바, 갖가지 감각의 감수성을 통일하는 무의실적인 활동을 내포하고 있다. 정신의 위대한 특성은 질서와 조화에의 욕구이며, 이 욕구가 삼수성을 조직하면서 세계를 창조한다. 심상은 한편으로는 이러한 정신의 욕구를 계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 속에서 스스로 변형하고 자신을 실현하려 한다. 심상의 이러한 제1의 계기가 예술작품의 착상에, 제2의 계기가 창작에 대응한다. 이리하여 천재는 심상 안에서 나타나고, 그 창조적 상상의 밑바탕에는 생 그 자체가 존재한다. 세이유에 이르러 예술은 점차 모방의 계기를 벗어나게 되면서 완전한 정신적 창조의 계기로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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