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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초기의 미학] ()



명실상부한 근세미학은 18세기에 이르러 성립하였다. 그러나 이에 앞서 17세기에는, 르네상스의 시학과 예술론으로부터 시사를 받고 또한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철학의 합리주의에서 영향을 받아 소위 고전주의 이론이 나타났다. 저 유명한 『시론』(L′art Poetique, 1674)의 저자인 브왈로(Nicolas Boileau-Despréaux, 1636~1711)는『서간시』(Epitres)에서 “진리의 외부에는 아름다움이란 없다.”고 하여 미가 명석 ․ 간결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했다. 또한 극작가 꼬르네이유(Pierre Corneille, 1606~84)는 극작 규칙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주의적 이론이 유행한 반면에, 부우르 (le pére Dominique Bouhours,1682~1720)와 같이 파스칼(Blaise Pascal, 1623~62)류의 나약성(délicatesse) 개념을 가지고 브왈로류의 합리주의적 예술관을 수정하려고 하는 경향도 이미 존재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후 18 세기 후반은 초기 미학사상의 황금시대이다. 즉, 많은 사상가 · 문인 · 예술가가 각기 다종다양한 관점에서 미와 예술의 이론적 문제를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전반적으로 보면, 고전주의적 이론이 아직도 지난 세기부터 계속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점차 이를 수정하고 거기에 적극적인 비판을 가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되었다.

1) 영국

당시 영국에서는 선과 유용성의 개념을 연관지어 미의 개념을 고찰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미적 가치의 자율성과 연관된 자각도 점차 깊어지고 있었다. 다음에 설명할 샤프베리는 형이상학적 의미에서의 미의 내면적 감각을 강조하는 한편, 로크(John Locke, 1632~1704)와 흄(David hume,1711~76)의 경험론적 철학이 심리학적 분석을 촉구한 결과, 감각 · 상상력 · 감정 등의 요소들이 담당하는 미의식*으로서의 의식이 상세히 연구되었다. 이렇게 미적 관조*의 측면에서 이론의 심화가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예술창작의 분야에서도 법칙의 준수를 역설하는 고전주의적 이론에 대항하여 천재*의 창조성이 높이 평가되고, 또한 이와 더불어 내면 형식과 같은 개념도 나타났다. 그러나 미학적 관심은 결국 주로 취미*의 규준을 탐색하는 정도에 그쳤다고 할 수 있겠다.
샤프츠베리(Lord Anthony Ashley Cooper, 3rd Earl of Shaftesbury, 1671~ 1713)의 독자적 사상은 고전주의이론 및 경험으로부터 구별되며, 그것은 『인물 ․ 풍습 ․ 의견 및 시대의 특징들』(Characteristics of men, manners, opinions, tim
-es, 1711)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요컨대 세계를 부분과 전체의 유기적 연관 속에서 파악하고, 그 통일성이 보편적 조화에 있다고 보는 것이 그의 사상이다. 미와 예술의 문제는 이러한 조화적 세계관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오히려 이러한 세계관 전체를 그 기본부터 다듬어, 이것을 범미주의(汎美主義)적 색채가 매우 농후한 세계관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에 의하면 미는 세계의 조화를 내면적으로 직관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미를 파악하는 감각은 통상 이해되는 바와 같은 협의의 것이 아니라, 모든 정신적 가치를 동시에 포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능을 지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논리적 ․ 윤리적 ․ 미적이라고 하는 가치영역의 분화가 보이지 않는다. 선은 이기적 감정과 공감적 감정의 조화에 있고, 이것이 또한 곧 미이기 도 하고 선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서, 진도 선도 미도 우주의 내면적 ․ 예지적 구조를 의미하고 있는 것인 바, 이 자연의 비밀을 계시하는 내면적 질서(interior numbers)가 미의 다양한 단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낮은 단계는 인간과 자연에 의해 만들어져 그 자체로는 어떠한 형성력도 없이 죽어 있는 형식(dead forms)의 미이다. 제2의 단계는 형성력을 갖는 형식(forms which form),즉 정신과 창의력의 미이다. 최고 단계의 미는 이상의 두 가지 형식 모두를 만들어내는 미의 원리 ․ 근원이라고 생각된다. 즉, 이것은 신과 같은 의미에서의 미이다. 실재하는 미는 모드 이러한 제1의적 ․ 근원적 미의 반영이라고 간주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도 또한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고, 거꾸로 예술가는 제2의 조물주라는 자격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예술은 단지 외계의 존재를 모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필연 또는 법칙으로서의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술가는 여기서 자신의 독자적인 내면형식*(inward form)을 사용하여 내면적 법칙을 표출하는 것이다. 이렇듯 샤프츠베리는 예술창작에서의 창조적 주관이 갖는 의의를 깊이 통찰하였고, 예지적 직관에 의한 미의 파악과 열광적 감동을 중요시하는 등, 그의 사상에는 고대미학 ―특히 플로티누스*의 미학 ―과 연결되는 점이 많다. 그는 그의 영향 하에서 후속된 세대 및 이후의 낭만주의 예술관(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자연 자체가 전개하는 형성활동을 예전에 신이 행했던 세계창조의 모방으로 간주하는 사상 ― 즉, 조형적 자연(plastic nature)의 개념 ― 이 17세기에 존재했는데, 해리스(James Harris, 1709 ~80)는 예술창작을 위와 같은 의미에서의 자연의 조형적 활동과 대비하여 파악하고, 더 나아가 예술가는 자기의 창작목적을 명료하게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연을 능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샤프츠베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 예술작품 속에서 내면 형식을 인정하고 있다.
제라드(Alexander Gerard, 1728~95)와 영(Edward Young, 1683~1765), 그리고 앞에서 말한 샤프츠베리의 사상은 필연적으로 천재의 문제를 미학의 중심영역에 도입하게 되었다. 함리주의적 ․ 고전주의적 예술사조 속에서는, 천재도 요컨대 탁월한 이성(la raison sublime)이라고 생각될 뿐이었다. 그러나 샤프츠베리에 이르러 예술창작의 주체로서의 천재개념은 적극적으로 해석되어 상상력을 핵심으로 하는 창의 ․ 구상의 능력이라고 간주되었다. 그러나 상상력과 열광적인 감정에서 창조성을 인정하려고 하는 경향의 이면에는 일종의 신비주의적 사상이 잠재하고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즉, 영은 『독창적 작시론』(Conjectures on original composition,1759)에서, 독창적 창작에는 일종의 마력이 존재하며 자연으로부터 직접적 영감을 받은 천재만이 이 힘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허치슨(Francis Hutcheson, 1694~1746)은 『미와 덕에 대한 관념의 기원』9An inquiry into the origion of our ideas of beauty and virtue, 1725)에서, 미의 판정에 관여하는 특수한 내면적 감각(interal senses)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내면적 감각이란 개념에는 지적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눈이 색(色)을, 귀가 음(音)을 받아들이는 감관이듯이, 미를 받아들이는 내면적 감관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절대미(obsolute beauty)와 상대미(relative b.)를 구별하여, 전자를 다양성 속에서의 통일이라는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미로, 후자를 모방에서 생겨나는 미로 간주했다. 그의 주장은 샤프츠베리의 학설을 확충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 보면 샤프츠베리가 지니고 있던 플라톤주의적 색채는 별로 없고 오히려 디슨(Joseph Addison,1672~1719)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하여튼 허치슨의 학설은 동시대 및 후대의 미학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또한 허치슨의 후계자인 라이드(Thomas Reid, 1710~96)는 미의 내면적 감각을 인간의 의식에 공통된 것, 즉 상식(common sense)이라고 생각한다.
호가드(William Hogarth, 1697~1764)는 풍자화가로서 유명한데, 『미의 분석』(The analysis of beauty, 1753)에서 화가의 경험을 살려 미의 형식을 분석하고, 취미의 관념을 구체화하려고 시도했다. 르네상스 말기의 로마쪼*의 미술론에서 시사를 받은 호가드는 미적 효과를 오직 균제*(symmetry)에 귀착시켰던 종래의 고전주의적 전통에 강력히 반대하며, 로코코미술의 형식감정 또는 취미를 반영하는 새로운 원리를 제시했다. 즉, 형식의 다양성과 복잡성이라는 원리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생명은 항상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데, 때로 장애가 생겨 중단되면 이것이 오히려 마음에 탄력을 주어 쾌감을 강화시켜 준다. 시선이 굴곡있는 선을 좇아갈 때 이러한 종류의 쾌감이 느껴진다. 우미(優美)*와 미의 관념의 원인은 사실상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직선으로 된 도형이나 여기에 원형이 더해진 것 보다는 파상선(waving line)쪽이 훨씬 아름답다. 이 파상선을 그는 미의 선(the line of beauty)이라고 부른다. 2차원의 파상선에 회전이 가해져 생겨난 3차원의 사행선(蛇行線, serpentine line)은 우미의 선(the line of grace)이라고 불리워진다. 그런데 역시 초상화가로 유명한 레이놀즈(Sir Joshua Reynolds, 1723~92)는 호가드와는 반대로 ‘보편적 자연의 정확한 재현’이라는 의미에서 이상미*(理想美 )의 모방이라는 전통적 이론에 충실하였다. 영국의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그는 규칙이 결코 천재를 구속하는 것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버크(Edmund Burke, 1729~97)는 『숭고와 미의 관념의 기원에 관한 철학적 탐구』(A Philosophical enquiry into the origin of our ideas of the sublime and beautiful, 17560를 저술하여 근세 미적 범주론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쾌락(pleasure)의 감소가 반드시 고통(pain)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은아니며, 또한 고통의 제거가 쾌락의 발생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미는 적극적인 쾌락에 근거하지만, 숭고*는 오히려 고통이 결여된 상태인 소극적 쾌락, 즉 유적(悠適delight)에 근거하고 있다. 거의 모든 쾌락과 고통의 관념은 자기보존(self-preser -vation)이나 사회성(society)의 어느 한쪽으로 귀착되게끔 된다. 우선 자기보존에 대해서 보면 여기에 속하는 감정은 고통과 위험의 감정으로 변하기 쉽고, 이러한 종류의 감정을 야기 시키는 것은 모두 숭고의 원천으로 될 수 있다. 즉, 고통과 위험의 원인이 직접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때에는 고통이 느껴지지만, 우리가 단지 그 관념만을 가지고 있을 때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고통이 결여된 유적(delight)의 감정이 일어난다. 이러한 종류의 감정을 야기하는 것을 숭고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회성에 관한 감정에는 생식을 위한 성적 결합의 감정과, 일반적인 사회성에 관한 감정이 구별된다. 한편,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생식에 관한 감정에도 사회적 성질들을 갖는 관념이 결합되어 있고 사랑의 감정의 대상은 성의 미(beauty of sex)를 형성한다. 다른 한편 일반 사회성에 관한 감정을 보면, 이것은 복잡하게 분화되어 있고 위에서 말한 사랑의 감정과 유사하지만, 관증적 쾌락(lust)이 혼합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대상이 미이다. 미는 우리에게 애착(affection)과 다정함(tenderness)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버크는 미가 오성(悟性)과 의지에 관계되지 않으며, 정신과 덕의 성질을 규정하는 것도 아니고, 비례 ․ 적합성 ․ 완전성 등도 미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한다. 그는 미를, 감각을 매개로하여 마음에 기계적으로 (mechanically)작용하는 성질이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영국 경험론에 나타나는 미학의 감각주의적 방향의 가장 명료한 실례(實例)를 발견한다.
홈(Lord Kames, Henry Home, 1696~1782)은 주저인『비평의 요소들』(Elem-
ents of criticism,1762)에서 고전문예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 ~1616)로부터 풍부한 실례를 인용하면서, 인간본성에 뿌리박고 있는 약간의 기초원리를 제시함으로써 비평의 일반원칙을 해명하려고 했다. 그는 이 책 속에서 흄의 반(反)주지주의적 경향을 한층 심리학적 방향으로 이끌어 미와 예술의 문제에 적용하고 있는데, 이와 더불어 목적론적 고찰도 행하고 있다. 흄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감각적 감정 중에서 시각과 청각으로부터 생겨난 것만이 정말로 감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미와 예술에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개 예술은 시각과 청각에 쾌락을 주는 것이고, 미는 본래 시각대상의 쾌적한 표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홈은 감정 자체를 객관적으로 반성하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버어크보다도 한층 정밀한 감정분석에 성공하였고, 미와 예술에 대한 향수심리를 해명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 즉, 감정은 현실적 감정(actual feeling)과 반성의 대상으로 된 감정으로 구별되고, 다른 한편 쾌감 자체도 대상적 성질로서의 쾌적(ag- reeable)과 그 대상이 유발하는 감정의 성질로서의 쾌락(pleasant)으로 구별된다. 그리고 그는 이 두 개의 상대개념을 조합시켜 잡다한 쾌감정을 척결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대상이 실제로 현존하고 있는 경우에 못지않게, 관념으로 현존할 때(ideal presence)에도 강렬한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을 지적하여 허구(fiction)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미를 내재미(intrinsic beauty)와 상대미(relative beauty)로 구별했는데, 이것은 나중에 칸트에서 나타나는 자유미 ․ 부용미(附庸美) 분류의 선구자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는 숭고 ․ 우미 ․ 골계 등의 미적 범주를 고찰하여, 이 분야에서도 크게 공헌했다. 홈에 따르면 취미규준의 보편성은 우리의 공통본성(common nature)의 감각 또는 확신(conviction)에 근거하고 있다. 이 공통본성은 일정한 종(種)에 속하는 각 객체에 대한 전형 또는 규준이 되며 불변적이고 완전하다. 각 개체는 여기에 합치될 것을 요구받는다. 각 개인은 직관적으로 이 규준에 맞추어 자신의 취미의 좋고 나쁨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흄 이래의 취미규준론이 여기에 와서 일단 결론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흄의 심리학적 미학에 동조했던 웹(Daniel Webb)은 허치슨류의 형식주의에 반대하여 음악을 감동과 격정의 표출이라 보고, 또한 문예의 본질이 심정의 유발에 있다고 하였다.
2) 프랑스

영국의 초가 미학사상이 윤리학적 색채가 농후한 미론과 취미론을 그 특색으로 하고 있었던 데 비하여, 프랑스에서 미학의 중심은 오히려 인식의 문제와 결부된 예술론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근간을 이루는 것은 고전주의 이론에서 끌어온 자연 모방의 개념이지만, 여기서도 또한 바로크 ․ 로코코의 예술사조가 발전함에 따라 점차 그 내용이 변화되어 갔다.
크루자(Jean-pierre de Crousaz, 1663~1748).루이 14세가 사망한 해에 비로소 프랑스어로 미학 책이 저술되었다. 스위스인 크루자의『미론』(Traité 여 beau, où l’on montre en quoi consiste ce quoi l'on nomme ainsi, 2vols.,1715)이 그것이다. 그는 데카르트류의 명증적 윤리에 근거하여 미에 대한 객관적 연구를 시도하였고, 이와 함께 또한 미의 주관적 측면에도 유의하여 심적 사실의 해명에 힘썼다. 그에 의하면 미의 원리는 다양성 · 통일성 · 규칙바름 · 질서 · 비례인데, 미는 또한 목적에 관계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는 유용성과 굳게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미적 판단은 쾌적한 감정 또는 그와 같은 의미의 관념을 가지고 대상에 관계하는 것이다. 이성을 충분히 음미한 후에야 시인될 수 있는 그러한 대상을 감정에 의해 즉각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좋은 취미이고, 나쁜 취미란 이성이 시인하지 않는 대상에 대하여 쾌락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크루자는 감정의 역할을 인정하여 이것이 이성과 조화를 유지한다고도 생각하지만, 결국 감정은 이성에 비하여 경시되었다.
뒤보스(Jean-Baptiste Dubos, L'abbé, 1670~1742). 위의 크루자와는 반대로, 감정적 측면을 강조하고 근세 미학사상 가장 극단적인 주정주의(主情主義)적 미학을 전개한 것이 뒤보스이다. 그의 저서『시와 회화에 관한 비판적 고찰』(Réflex -ions critiques sur la poésie et sur la peinture, 3vols.,1719)은 경험적 입증을 중시하고 예술을 내용 및 감정적 효과의 측면에서 파악했기 때문에, 사실 당시로서는 영향력이 크기도 했지만, 유난히 이색적인 책이었다. 일반적으로 쾌락은 모든 욕구의 만족에서 유래하고, 욕구의 절실함에 비례하여 만족에 수반되는 쾌락도 증대한다. 그런데 정념(passion)을 만족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정념을 갖는 것 자체가 이미 커다란 쾌락이다. 마치 나방이 불을 그리워하여 스스로 불 속에서 자기의 날개를 태우듯이 인간 역시 항상 무위(無爲)의 권태로부터 도피하고자 종종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정념을 추구한다. 정념이 초래할 실제적인 피해를 피하면서도, 또한 마음을 끄는 소위 정념의 환영(phantôme)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다름아닌 예술이다. 죽, 예술은 어느 정도 약화된 인위적 정념(passions artificielles)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의 인위성을 강조한 것은 바로 뒤보스가 그 효시이다. 이리하여 브알로 이래의 그럴듯함(vraisemblance)의 원리는 뒤보스에 의해서 더 한층 강조되었다.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살펴볼 때, 예술 표현의 내용은 우리의 관심(intérêt)을 강하게 끄는 것이어야만 한다. 때문에 뒤보스는 서정적인 것을 경시하고 극적인 것을 중시했다. 그런데 예술 창작에 있어서 규칙은 외면적 기교에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며, 예술가는 자신의 독창성을 발휘해야 한다. 즉, 천재가 필요하다. 물론 천재는 타고난 재능이므로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 천재는 마치 자생하는 식물과 같아서, 이것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에 의존하는 것이다. 뒤보스는 이 요인을 정치적 · 경제적 요소를 포함하는 정신적 원인과, 풍토나 동물정기(esprits animaux)등의 물질적 원인으로 나누어 고찰하여, 프랑스의 사회학적 미학* ―특히 ‘환경*설’의 전통을 마련하였다.
또한 그는 나중에 레싱 등에서 한층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화한계론(詩畵限界論)의 선구자이다. 즉, 문예와 회화는 형상을 만들어 내고, 여기에 근거하여 강렬한 감정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회화가 직접적으로 현실적인 것을 눈앞에 보여주고 한 순간의 행동을 공간 중에 묘사하는 것임에 비하여, 문예는 시간적 계기(繼起)를 이용하여 행동의 여러 가지 모습을 묘사하고, 또한 단순한 기호로서의 언어를 매체로 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뚜렷이 구별된다. 또한 예술 작품을 판정하는 기능을 정조(情操, sentiment)에 귀착시키고, 또한 이것을 제6감(le sixième sens)이라고 불렀다는 점에서, 영국 미학으로부터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 때 그의 사상이, 프랑스 아카데미의 고전주의에 포함되는 바로크 ·로코코 예술의 도약기에서, 후자의 강력한 이론적 지주가 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바퇴(Charles Batteux, L'abbé, 1713~80)는 모든 예술의 세부적 규칙들도 그 원천으로 소급하면 유일의 원리, 즉 모방에 귀착한다고 생각하여,『하나의 원리로 통일된 여러 예술들의 특징』(Traité des beaux-arts, réduits á un même principe, 1746)에서 이 사상을 천명했다. 바퇴에 의하면, 예술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방”(im
-itation de la belle nature)이다. 자연 속에는 가장 아름다운 모방이 구성될 수 있는 특징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예술가는 관찰을 통해서 이것을 추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부분적 선택을 경과하여 새롭게 전체로서 구성된 형상은 자연적이기를 멈추지 않으며, 자연보다도 더욱 완전하게 된다. 정신과 자연의 이러한 상호작용에 의해서 생겨난 일종의 이상적인 존재가 아름다운 자연인 것이다. 따라서 “아름다운 자연의 모방”은 이상화*의 작용을 포함하는 것이고 단순한 외적 자연의 모사와는 다른 것으로 이해된다. 대상에 적합한 특징을 모두 구비하고 있다면, 아름다운 자연의 모방이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방의 개념이 한편으로, 르 브륀(Carles le Brun, 1619~90)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아카데미즘에 접근하여 있고, 동시에 다른 한편,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론과 극히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명백하다. 바퇴는 예술의 체계적 통일이라는 과제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의 모방개념을 통하여 완성했다고도 보는데, 예를 들면 무용과 음악도 감정의 모방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시각과 청각에 호소하는 문예를 모든 예술 중 가장 우월한 자리에 놓고, 뒤이어 회화 · 음악 · 무용을 자리매기고 있다. 특히 문예의 장르*에 대해서는 3분법을 제시하며, 시를 양식(style)으로서의 시(poésie)와, 사상(事象,chose)으로서의 시를 구별하는 등 새로운 시도도 엿보인다. 전체적으로 그의 논리는 잘 정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인의 칭송을 받았고, 특히 독일의 미학계에 영향을 미친 바가 매우 컸다.
디드로(Denis Diderot, 1713~84). 바퇴와 동시대인인 디드로의『미의 기원과 본질에 관한 철학적 연구』(Recherches Philosophiques sur l'origigine et la natur -e du beau, 1751)는 원래 프랑스 『백과전서』(Encyclopédie ∏)의 항목으로서 집필된 것인데, 영국의 허치슨과 프랑스의 예수회 수사인 앙드레(Yves Marie André, le Père, 1675~1764)로부터 영향받은 바가 크다. 이 저서에서 디드로는 미의 기원을 “관계의 지각”(perception des rapports)에서 찾았다. 즉, 그는 “나의 오성 속에 관계의 관념을 환기시킬 무엇인가를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나의 외계에 있는 미라고 부른다.”고 쓰고 있다. 이 개념은 성아우구스티누스*의 형식미학과 허치슨 등의 미의 내면적 감각이라는 개념에서 시사받은 것이지만, 극히 다의(多義)적이며 불명료하다. 그러나 여기서 디드로의 미학의 토대에 생물학적 · 자연주의적인 목적론적 세계관이 깔려 있음을 간취할 수 있다. 그는 『살롱』․ 『회화론』(Ess
-ai sur la peinture,1765 (96간)) 및 『예술 단상』(Pensées détachées sur la sculpture, l'architecture et la poésie,1782)에서 미술론을, 『희곡론』과 『희극배우론 역설』(Paradox sur le comédien,1770) 등에서 문예론 · 연극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아직 고전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자연모방설 위에 서있다.
디드로는 처음에 “자연에는 부적확한 것이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la nature ne fait rien d'incorrect)라는 확신에 입각하여 외적 자연에 대한 엄밀한 모사를 제창했다. 그러나 나중에 실제적인 회화기술에 대해서 식견이 깊어지자, 주관족 시가(vision)이 갖는 특수한 현실성을 인정하고 기계적 모방을 대단히 경계하는 동시에 주관의 창조성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즉, 모방은 내면적 · 이상적 모델의 모방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상적 모델은 결코 초월적 규범이 아니라 개별적 대상을 그의 종(種)과 비교 · 고찰함으로써 얻어진 생물학적 법칙에 합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디드로는 모방에서 필요한 것은 냉정한 통찰력이라고 지적하여, 관찰을 저해할 감성(sensibillité)을 배척하고 무감각(insensibilité)을 중시했다. 극작가로서의 디드로는 일찍이 가정극과 시민극 등 소위 장르 시리즈(genre sé갸뎥)이론을 발표했다. 이것은 다름아닌 자연의 연속성이라는 라이프니쯔의 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순수한 비극과 희극이라는 양극 사이에 덕과 의무, 가정의 불행 등 윤리적 측면에서 중용적인 것을 모방대상으로 하는 연극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 데 불과하다. 만년의 디드로는 일상적이고 비근한 현실을 모방한 소설(roman0의 예술적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때마침 근대소설의 요람기와 마주한 그는 허구 속에서 자연의 특징을 새겨 넣음으로써 문예와 역사 사이에 가로 놓인 근본적 모순을 조정하고, 양자를 소설 속에서 적극적으로 결합시키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디드로는 이후의 사실주의* 문예사조와 일정한 연관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밖에 프랑스 계몽사상 속에는 합리주의적 경향을 보여주는 사상가 ․ 문인들이 적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몽테스큐(Charles Louis de Secondat, Baron de Bréde et de Montesquieu, 1689~1755)는 백과전서의 항목「취미」(Gouût,1757)에서 미를 유용성과 선의 개념에서 분리시킴으로써 미의 무관심성*설의 선구임을 보여준다. 또한 계몽사상의 대표이자 합리주의의 주창자였던 볼테르(Voltaire, Francois Marie Arouet, 1694~1778)는 『철학사전』(Dictionaire Philosophique Portatif, 1764)속에서 미의 상대성을 강조하고, 또한 예술의 목적을 쾌락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이들 중에서 특히 자연의 의의를 강조하여, 천박과 사치로 흐르는 취미와 미적 문화에 대해 격렬한 비난을 퍼붓고, 소박한 감정의 표출에 내포되어 있는 미적 의의를 중시했다. 그의 자연주의적 사상은 칸트 미학에도 다소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쉴러*의 미학에는 한층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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