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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평의회 꼬뮤니즘 (61 KB)
2 - 노동자 평의회 (47 KB)
3 - 평의회에 관한 편지 (25 KB)
4 - 평의회 꼬뮤니즘과 볼세비즘 비판 (33 KB)
5 - 노동조합주의 (46 KB)
6 - 혁명에 대항하는 노동조합 (49 KB)
7 - 혁명은 당의 과업이 아니다 (34 KB)
8 - 새로운 운동 (50 KB)
9 - 조직문제에 대한 일반적 언급 (29 KB)
10 - 조직화에 관한 몇몇 생각들 (65 KB)
11 - 혁명적 좌파의 재구조화 (31 KB)
12 - 부록 : 레닌의 철학 (103 KB)
반기억의 생성, 평의회 꼬뮤니즘
폴 마틱, 판네퀴크 외 4명 지음 , <노동자의 책 번역팀>옮김
출판사 - 노동자의 책
초판일 - 2005-06-04
도서소장처 - 노동자의 책
조회수 : 12323

책 소개


1917년 2월 페테로그라드의 광장에 “빵을 달라”는 여성 시위대를 선두로 한 노동자시위대의 행렬이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군인들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그녀들 앞에서 군인들은 짜르의 부대이기를 거부하고 시위대로 합류하면서, 짜르를 지키던 최종적인 공권력의 마지노선도 무너졌다. 2월 혁명의 ‘노동자, 병사소비에트’라는 프롤레타리아트민주주의의 질서는 ‘이중권력’이라는 잠정적 힘의 균형상태도 종식시킬 프롤레타리아트 역량의 원동력이 되었다. 10월 혁명의 도래로 ‘노동자권력’이 지구상에 등장했음을 알렸을 때, 서구사회는 ‘가장 단순한 직접민주주의 기관이 혁명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 대하여 의아해 했으며, 서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의문점은 쉽게 풀릴 수 있었다. 이 소비에트는 꼬뮌commune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계급의 직접민주주의의 기관이며, 노동자 자기해방을 향한 역량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 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혁명의 성공 이후 소비에트는 노동자의 ‘자기결정력’과 ‘직접행동’의 역량을 증대시켰다. 그러나 이 성공 이후 다가온 시련은 뼈아픈 것이었다. 그것은 러시아혁명일반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었다. 1921년 크론슈타트에서 형성된 소비에트는 공산주의로의 직접이행을 주장하며 부르주아혁명으로 러시아 혁명을 규정하려는 볼세비키와 당에 대해서 도전하게 된다. 이 크론슈타트에 대해 진압을 명령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혁명가 레닌이었다. 그리고 크론슈타트의 문제제기는 멘세비키의 준동이었다고 말하면서 소비에트의 자기결정력과 노동자자기해방의 성장하던 힘을 최종적으로 좌절시켰다. 크론슈타트 반란이 효과적으로 진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레닌은 곧바로 신경제정책NEP을 실행시키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자 러시아의 자본가들은 안도감의 한숨을 내쉬면서 공산당으로 입당하여 적색자본가가 되었으며, 소비에트는 당의 통제 아래로 복속되어야 했다. 노동자의 생산통제권과 자기결정력이 불가능해진 거세된 소비에트는 당의 정책에 대한 거수기 역할을 해야 했다.
자본의 대리자로서 역할을 하게 된 당-국가 앞에서 숨죽여야 했던 소비에트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곧이어 등장한 스탈린은 맑스-레닌주의라는 교리를 만들면서 동시에 이 유명무실화된 소비에트를 역사적 전통으로 화석화시키기 시작했다. 당-소비에트라는 기관 이외에는 모두 혁명의 전통에서 이단시 하였던 스탈린은 혁명을 기반으로 하여 생성되었던 다른 공동체와 조직과 집단, 그리고 좌익 공산주의자들을 ‘반혁명적 무정부주의자’로 규정하면서 수용소로 보내 철저히 외부와 통제된 상태에서 비밀스럽게 처단한다. 당시 처형당한 사람의 숫자는 아직도 역사학자들의 숙제이다. 스탈린주의가 바라 본 소비에트는 노동자계급의 자기결정력과 해방의 힘이 형성한 민주적 기관이라기보다는 혁명의 공식이라는 법칙적 교리의 자기-완결적 형식이었다. 그 나마 스탈린주의는 그 화석화된 소비에트에 대한 연구마저도 금지하고 볼세비키 당의 신화로 재구성해 냈다. 그리고 그 신화가 사라지기까지는 한 세기가 걸렸다.


1970-71년 이탈리아를 뒤흔들었던 ‘뜨거운 가을’의 총파업은 ‘노동자자기해방’의 의제를 다시 지상의 차원으로 끌어내렸다. 당시 평의회운동가들이었던 노동자주의자operaismo는 노동자민주주의의를 단번에 복원시켜낸 평의회집단 중에 일부였다. 당시 현장노동자의 힘은 이탈리아 생산라인을 작동되거나 멈출 수 있었다. 노동자자주관리와 생산통제라는 자기결정권의 복원은 노동자 자기해방을 향한 충만한 잠재력을 성장시켰다. 노동자계급의 힘이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당시의 시간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혁명 이후 다가온 반동의 시련의 아픔은 비극적인 것이었다. 자본은 노동자계급의 강력한 힘을 분쇄하기 위해 생산현장을 게토getto화하는 재구조화에 착수하였다. 많은 자본이 일국의 현장을 떠나 세계시장의 다른 영역들로 유출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네 마리 용으로 불리는 신흥공업국의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실업과 퇴출, 고용불안과 전반적인 빈곤에 시달려야 했던 당시의 시기를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잃어버린 5년’이라 부른다. 현장노동자의 힘은 급속히 약화되었고, 다름 아닌 투쟁하던 현장노동자들이 작업복을 벗고 이탈리아사회의 빈곤층을 형성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고용을 통해 보장되었던 여성,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의 ‘사회적 소수자’의 삶의 질도 급속히 악화되어 사회적 게토집단을 형성하였다.
이렇게 이탈리아 사회에서 노동현장의 제적대의 문제는 사회 현장의 제적대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즉, 사회 모든 영역이 현장이 되었다. 이 시기를 넘긴 노동자주의자operaismo들의 선택은 자율주의자autonomist로의 이행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해방을 사회적 영역에서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노동자주의자 활동가들은 자신을 탄생시켰던 현장에 노동자평의회 형태인 ‘현장기초위원회’를 건설하고, 상당한 역량을 사회 현장투쟁으로 돌리게 된다. 당시의 자율주의자의 이론가였던 안토니오 네그리는 이를 사회-공장에 맞선 사회적 노동자 투쟁의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노동자투쟁의 자본의 재구조화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내면에는 사회현장과 노동현장의 분리, 그리고 정치현장과 사회현장의 분리를 극복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율성autonomy의 문제가 달려 있었다. 자율주의는 국가 내에서의 좌우익의 힘의 역학관계와 노동자-자본가의 힘의 역학관계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를 계급투쟁을 통해 획득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율성으로 간주하였다. 이 자율성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기존의 ‘당-노동조합’이라는 기관의 문제보다는 노동자계급의 역량을 형성할 수 있는 투쟁과 협력의 차원이 중시되었다. 즉, 프롤레타리아트는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민주주의를 형성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자신의 ‘자율성’이라는 역량의 차원이 문제되는 것이다.


또 이탈리아 ‘노동자주의’라는 평의회 집단이 ‘자율주의’로 전화되어 사회-현장 투쟁을 시도하면서 중심적으로 검토되었던 점은 1968년 혁명에 대한 문제였다. 68년 혁명은 당시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에 대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 전면개방과 성해방, 보수적인 교육 권력의 해체를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기성사회에 도전하는 대중의 ‘욕망’의 문제였다. 한국의 한 현장 활동가의 회고에 따르면 87년 총파업을 앞둔 폭풍전야의 울산에서 10만의 노동자들이 태화강둔치에 모여서 집단적 협의를 거쳐 작성한 ‘우리의 요구’는 ‘기성사회에 도전한 욕망’이었다고 말한다. 울산의 10만의 노동자들이 작성한 요구의 첫 번째 요구는 ‘머리를 길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요구는 ‘복장을 자유롭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임금인상에 대한 요구는 8번째에 해당하였다. 이 욕망은 결핍된 욕구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려는 욕망, 기존 질서로는 충족될 수 없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욕망이었다.
68년 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대중의 욕망’을 ‘임금의 욕구’로 바꾸어내고 그것을 ‘계급이익’의 문제로 환원적으로 사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학생들의 요구는 계급이익으로 환원될 수 없었으므로 ‘그들은 무정부주의자일 뿐이다’라고 규정하였다. 그렇게 욕망의 문제가, 혁명적 금욕주의로 무장한 당이 임금에 대한 욕구로 가득 찬 자생적 계급대중을 지도한다는 맑스-레닌주의의 교리에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문제가 사방에서 제기되었다. 그래서 프랑스공산당은 비교적 민첩하게 움직였던 보수주의자 드골보다 사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대중의 욕망은 자본주의의 기존 질서에 의문을 던지고, 그것을 잠식하면서, 사회변혁의 문제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당시 현장노동자들은 이 학생들에 요구에 공감하고 행동을 같이 했다. 68년 혁명 시기 유럽자본주의는 케인주의-포디즘이라는 질서 속에 있었다. 노동자들은 무미건조한 일괄 생산라인에서 자신의 삶을 의미 없이 보내고 있었으며 자동기계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인간적 가치를 느껴야 했다. 그리고 노동자가장의 파트너인 여성 또한 가족이라는 공간에 고립되어 재생산 노동을 해야 했다. 그리고 소수자들은 전반적으로 국가에 의해서 수용-관리되고 있었다. 이러한 비인간적 질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했던 젊은 층들이 선택한 곳이 대학이라는 공간이었다. 즉, 대학생은 쁘띠부르주아라기보다는 비인간적 노동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늦추기 위한 옷을 바꾸어 입은 프롤레타리아트였을 뿐이었다.
케인즈주의를 찬동한 지배계급은 ‘먹고 살 수 있는데 무엇이 문제냐’며 반문했지만, 문제는 무의미한 삶보다는 삶의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는 강력한 욕망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욕망의 문제를 계급이익의 차원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였다. 즉, 기존의 질서 내에서 해결될 수 없는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68년 혁명의 노학연대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잠재력은 바로 자신이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 부족한 게 뭐야’라고 일상적으로 겪어 봤다는 식으로 협상기술을 구사하려던 협상전문가들도 이 해방의 욕망만은 기존 질서 내에서 충족할 수 없었다. 자율주의자들은 이 분자적 ‘욕망에 기반 한 운동’, ‘해방과 생성의 욕망에 기반 한 운동’이 좌우익의 공리계를 허물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회-현장 투쟁 속에서 재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율주의자는 이미 이 공리계의 질서를 초과하고 있는 다중multitude이 출현하고 있다고 사고한다.

러시아혁명에 등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 기관인 평의회가 서구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것은 그것이 가장 단순한 노동자 직접민주주의의 형태였다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기존 공리계에는 없었던 새로운 사회적 관계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후 스탈린은 그것의 전통과 형태만을 강조하였지만, 그 형태가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프롤레타리아트의 잠재력의 문제이다. 평의회운동과 자율주의운동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해방을 이루기 위한 자기-결정력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문제에서 공통성을 갖는다. 자율주의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잠재력의 차원을 자율성autonomy이라고 사고하면서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등장을 준비하고 있다면, 평의회는 그것이 이미 역사-현실적으로 가능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 상 전례 없는 세계자본의 재편과 합종연횡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불복종의 힘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기존의 질서에 대해 도전적이다. 우리는 투쟁과 연합과 협력의 새로운 힘이 혁명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근본적인 변혁의 힘을 구성할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주의의 새로운 형태를 등장시키게 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견하게 된다. 사바타의 농민혁명가의 정신을 계승하였다는 사파티스타는 평의회의 형태도 자율주의의 형태도 아니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이 운동은 우리의 기억에 없는 새로운 운동이다. 그들의 운동을 보면서 평의회도 자율주의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국제적 차원의 프롤레타리아트운동이 지금 꿈틀거리며 생성되고 있다고, 그리고 그 역사의 재 반전의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제 불가능한 것을 꿈꾸자’ 그래서 ‘기억에 없던 것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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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평의회 꼬뮤니즘/ 폴 마틱

노동자평의회/안톤 판네퀴크

노동자평의회에 관한 편지/안톤 판네퀴크

평의회꼬뮤니즘과 볼세비즘 비판/ 까요 브렌델

노동조합주의/안톤 판네퀴크

혁명에 대항하는 노동조합/ 무니스

혁명은 당의 과업이 아니다/ 오토륄레

새로운 운동 /시몬

조직문제에 대한 일반적 언급/판네퀴크

조직화에 관한 몇몇 생각들/시몬

혁명적 좌파의 재구조화/까요 브렌델

부록 : 레닌의 철학/코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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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노동자 평의회 (47 KB)
3 - 평의회에 관한 편지 (25 KB)
4 - 평의회 꼬뮤니즘과 볼세비즘 비판 (33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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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혁명에 대항하는 노동조합 (49 KB)
7 - 혁명은 당의 과업이 아니다 (34 KB)
8 - 새로운 운동 (50 KB)
9 - 조직문제에 대한 일반적 언급 (29 KB)
10 - 조직화에 관한 몇몇 생각들 (65 KB)
11 - 혁명적 좌파의 재구조화 (31 KB)
12 - 부록 : 레닌의 철학 (103 KB)


● 이 도서에 대한 의견들 맨위로맨위로

박영기 :
번역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훌륭한 공부꺼리를 주셨군요..
2005-06-07

이상훈 :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노동자의책 화이팅!!!
2005-06-13

서진태 :
번역수고에 감사드립니다
2005-07-13

한경식 :
수고하셨습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2005-07-17

무직인꿈틀이 :
번역 축하드리고,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2005-12-04

anarchy97 :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2015-10-14

jongmink :
감사합니다.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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