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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 1999년 2월호
편집부 지음
출판사 - 민음사
초판일 - 1999-02-01
도서소장처 - 노동자의 책
조회수 : 348

책 소개

참 오랜만에 학우라는 말을 써봅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학우란 배움터에서 함께 공부한 글동무를 지칭합니다만 솔직히 학창 시절에 주변 친구를 학우라고 불러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어두운 주점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술잔을 부딪치며 〈학우여, 먹고 죽자!〉라고 합창했을 따름이지요. 아무래도〈학우〉는〈학형〉과 마찬가지로 의례적이고 선동적인 표현법에 속했지요. 왜 있쟎습니까, 학생 대표가 연단에서 〈학우여, 우리 학우여!〉를 힘주어 외쳤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올해 5월은 광주민중항쟁 20주년입니다. 〈80년 5월〉의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셈이지요. 그해, 시민군 아버지의 영정을 앞세운 한 아이의 사진을 기억하십니까. 다섯 살의 어린 상주였지요. 영정 너머로 뭔가를 응시하던 사진의 주인공이 어느덧 24세의 청년이라고 하니, 세월의 흐름을 거듭 느끼게 됩니다, 망월동 묘역에서 일한다는 그 청년에게 광주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갈수록 〈이제는 그만 용서하고 화해하자〉는 해법 아닌 해법이 세를 얻고 있습니다. 정녕 진실은 언제까지나 지하에 유폐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러는 동안 학우들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저마다 사회 속에서 자리를 잡으며 생활의 터전을 일구었으며, 언제부턴가 시민 사회의 어엿한 주역으로 부상했답니다. 최근 정부의 개혁 노선과 관련해서 부쩍 각광을 받는 〈젊은 피〉의 386세대도 그 소산이지요. 그와 더불어 일부 학우는 줄곧 학교에 적을 둔 채 공부의 세계를 맴돌았는데, 이들은 세칭 유학파든 국내파든, 또 어느 분야를 전공하든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역사적 상흔을 기억하고 있기에, 학문과 현 실의 상관관계에 대해 비교적 선명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한편, 다가오는 21세기를 주도할 신진 학자군으로서의 자부심과 사회적 책무도 느끼고 있는 편이지요.
2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신진 세대의 학우들이 21세기의 길목에 서 퍽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간 갈고 닦 은 공부의 결실을 하나둘 맺을 시기를 맞이했는데〈그게 별 쓸모가 없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있지요. 이런 분위기 탓에 특히 기초 학문 분야에 종사하는 학우들의 처지는 영 말이 아닙니 다. 이들은 전쟁과 빈곤으로 얼룩진 선배 세대의 교육 환경에 비하 면 그나마 양질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으며 또 학문 후속 세대답게 기성 학계의 시행착오를 그대로 반복하기보다는 나름대로 수정, 보완하는 동시에 급변하는 우리 시대의 새 패러다임을 찾고자 적지 않 은 애를 애썼는데도〈너희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는 판결이 떨어지니,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입니까.
날벼락이라고 했지만 기실 원인은 있겠지요. 우선 우리 학우 자신 에게서 찾아봅시다. 한국 현대사의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공부가 과연 얼마나 시대와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구체적 연관을 맺었는지 반성할 필요 는 있다고 봅니다. 시대 상황에 대한 인식 수준이 전세대의 그것에 비해 분명 일보 진전했지만 정작 삶의 구체에 대한 감수성은 여전히 미흡했지 않았나 해서 묻는 말입니다. 이는 인문학 종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물음만은 아니지요. 이른바 객관 세계를 연구한다는 자연 과학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 학문의 수준이 낮다〉는 비판은 차라리 애교로 봐줍시다. 그 문제는 학우 개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으며 그보다는 우리 학문사 의 전통이라는 좀더 거시적인 견지에서 접근해야 될 테니까요. 그렇 다고 해서〈우리는 기지촌 지식인이다〉,〈앎과 삶이 서로 겉돌고 있 다〉는 고언마저 그냥 허투루 넘길 수는 없죠. 문제의 핵심은 자기 삶 에 터한 사유의 확장에 있습니다. 삶이 한낱 시장판으로 되어버렸을 때의 그 속물적인 난장에 맞서는 사유의 힘이 모이고 정련되어 넘쳐 날 때 비로소 우리 학문의 창의적 지평도 한껏 열리지 않겠습니까.
날이 갈수록 인문학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 다 신문에서도〈인문학은 인간과 문화의 가치를 분별하는 학문이 다, 인문 정신은 사회의 부패를 막는 항체이기도 하다, 인문학이 망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인문 학 위기론이 세간에 널리 회자될수록〈정말 인문학은 망했다〉는 망 측한 생각만 더해지거든요. 이런 와중에 이번 호를 펴냅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그래도 인문학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 은 것이지요.
3
지난 호에 예고한 대로 지면 구성에 상당한 변화가 있습니다.〈인 디 포럼〉이 눈에 띨 것입니다. 이는 본지가 지향하는〈현실과 소통 하는 지식 사회의 열린 공간〉을 좀더 구체화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지요. 또 기획 연재물 두 꼭지가 새로 선보입니다. 철학연구자 강유원 학우와 문화인류학자 김찬호 학우가 집필하는 이 연재물의 공통 주제는〈우리 시대의 바람직한 공부법〉이며, 그 핵심 메시지는 결국〈아는 만큼 살고, 사는 만큼 알자〉로 요약될 것입니다. 이 밖 에도〈조선 시대의 지성과 문화〉를 주제로 한 연재물이 다음 호에 시작될 예정입니다.
본지는 1년에 네 차례 출간되며, 출간 시기는 1월, 4월, 7월, 10월 입니다, 이번 호는 1999년 2호로서 지난 4월에 출간되어야 했지만 조 금 늦어졌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다음의 통 권 9호는 7월 말에 예정대로 출간될 것입니다. 또 본지는 작년부터 특별호 체제를 병행하고 있습니다.〈한국 지식인의 현주소〉를 묘파 했던〈지식인 리포트〉3부작이 그것이지요. 이 자리를 빌어 특별호 〈지식인 리포트〉에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리며, 올해는 3권의 대담 집을 기획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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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편집자가 독자에게
학우여, 난감한 우리학우여!/11

■ 권두 에세이
김명인 • 다시 비평을 시작하며/15

■ 특별 논문
알랭 소칼, 장 브리크몽 • 지적 사기 (이희재 옮김)/76

■ 연재 기획

강유원의 철학 강의 1
철학의 근본 문제들一헤겔 『정신현상학」 서문 읽기/ 104

김찬호의 시민문화론 1
우리 교육의 터전에 대하여 130

■ 쟁점과 비평
박근서 • 글쓰기를 정당화하는 두 기준 一 실재와 공동체 46
고부응 • 초민족 시대의 민족 정체성
— 한민족 공동체를 위하여 172
로익 봐캉 • 미국 지성의 빈곤(김태수옮김) 193

■ 오늘의 지성을 찾아서 • 문부식 편
대담 •
불온한 시대를 향한 외침, 그리고 희망의 언어를 찾아서 207

■ 피드백 279 /원고 모집 안내 102 / 정기구독 안내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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