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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세계를 뒤흔든 10일 (1 MB)
세계를 뒤흔든 10일
존 리드 지음 , 장영덕옮김
출판사 - 두레
초판일 - 1986-01-20
ISBN -
조회수 : 7135

● 목 차

저자 서문 / 15
주와 해설 / 21

제1장 10월혁명의 배경 ------ 31
제2장 다가오는 폭풍 ------ 45
제3장 혁명전야 ------ 65
제4장 임시정부의 붕괴 ------ 91
제5장 볼셰비키의 돌진 ------ 109
제6장 조국과 혁명의 구제위원회 ------ 137
제7장 혁명전선 ------ 153
제8장 반혁명 ------ 173
제9장 명령 제1호 ------ 189
제10장 모스크바 ------ 203
제11장 권력의 획득 ------ 217

부록 주(註) / 241
역자 주(註) / 253
역자 후기 /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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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세계를 뒤흔든 10일』의 저자 존 리드는 1887년 미국 포틀랜드주의 오레곤에서 태어나 1920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하바드대학을 졸업한 후 <아메리카 매거진>과 <매스>지의 편집자로 일했으며 1913∼1914년에는 멕시코혁명에 참가하여 판초빌라 혁명군과 4개월동안 행동을 같이하면서 이 혁명 현장을 기록한『반란하는 멕시코』를 내놓았다.
『세계를 뒤흔든 10일』기자인 존 리드의 '눈'을 통해 기록된 현장 보고서이자 '르뽀문학' 이다. 그는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의 현장에서 이 혁명을 직접 눈으로 보고 기록함으로써 볼셰비키혁명에 대한 거의 유일무이한 역사적인 현장보고서를 남겨놓은 것이다. 그는 이 혁명이 어떻게 계획되고 전개되었으며 또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상세히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민중이 그들 스스로 권력을 획득하고 강화해 가는 과정, 그리고 혁명의 주역이었던 볼셰비키가 역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사실적으로 기술했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의 혁명적 분위기와 혁명현장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재현해 내는데 성공했다. 눈으로 직접 보는 러시아 10월 혁명의 재현, 그것이 존 리드의 저서『세계를 뒤흔든 10일』이다.


[서평] 세계를 뒤흔든 열흘

from lmagit.jinbo.net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소비에트를 보라! 1905년 이미 혁명의 주역이었던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1917년 2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다시 무대에 등장한다. 그리고 2월 혁명 뒤 8개월 동안 러시아 민중은 노동자권력소비에트와 임시정부라는 이중권력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특수하면서도 매우 긴박한 정세였는데, 소비에트가 임시정부를 타도하지 않으면 역으로 타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이러한 이중권력 상태에서 볼셰비키가 노동자와 병사들을 이끌고 러시아 국가 권력을 장악해 소비에트로 넘긴 과정을, 즉 1917년 10월 혁명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며 쓴 글이다.
1917년 10월, 다수의 기업인과 지식인들은 혁명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제 구체제 파괴와 새로운 체제의 창조라는 2막에서 1막은 충분히 진행되었다. 혁명은 그만할 때가 되었다!
반면에 다수의 노동자 병사 농민들은 제 1막을 더 진행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8개월이 지나도록 혁명이 보여준 것은 무엇인가? 여전히 빵과 평화와 토지라는 민중의 가장 절박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약속된 토지를 기다리다 지쳐 반란을 일으키고, 식량을 줄어들고, 공장은 문을 닫고, 병사들은 열정 없이 굶어죽고 있었다.
“러시아는 강대국이니 러시아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싸워야 하는가? 제국주의 전쟁, 자본주의가 휘두른 폭력으로 난자당한 민중들은 더 이상 애국심 따위에 속지 않았다. 진실은 발가벗겨졌다. 2월 혁명 뒤 변화, 그것은 대지를 파고들어 혁명을 더욱 빨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억눌렸던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정치, 경제, 역사에 관한 책을 뜨거운 모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지칠 줄 모르고 읽었다. 4만 명이 푸틸로프 공장에서 연설하는 것을 듣기 위해 몰려들어 모든 사람들의 주장을 경청하는 놀라운 모습이 보여 졌다. 혁명의 열기가 무르익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중을 끌고 갈 전위는 누가 될 것인가?
1차 소비에트 대회까지는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아직은 권력을 잡을 때가 아니다”는 것이다. 임시정부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민중의 요구에 대해 “12월 제헌의회까지 기다려라!”는 얘기뿐이었다. 전쟁에 관해서도 “임시정부가 전쟁을 중지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와의 타협전술은 그들을 어디로 끌고 갔는가! 5월1일 메이데이에 발생한 밀류코프 사건은 그들이 혁명을 배반하고 반동의 편에 섰단 사실을 대대적으로 폭로하게 된다. 임시정부 외무장관 밀류코프는 ‘모든 러시아 국민은 최후의 승리를 얻기까지 전쟁을 계속하기 원하며, 러시아 정부는 연합국에 대한 모든 책임을 준수 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연합국에 발표했다. 대중들의 분노가 크게 올라오자, 위기를 느낀 임시정부가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와 연립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당시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가 중심이던 소비에트 집행위원회는 부르주아 정부에 들어가 수렁에 빠진 부르주아 정부를 구원해 주는 배신행위를 저질렀다. 그들은 비록 정부에 들어갔지만, 이것으로 대중들로부터 신뢰는 완전히 잃어버리게 됐다.
한편 볼셰비키에 대해 말하자면 길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그들이 어떻게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이다. 제 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이 노동자계급을 배신하고 제국주의 전쟁에 참가할 때도 볼셰비키만이 끝까지 전쟁에 반대하며(독일 간첩으로 몰리면서까지 말이다), 이중권력 상태에 놓이자 볼셰비키가 내놓은 조치는 “임시정부에 대한 어떠한 협력도 하지 말 것! 그리고 소비에트만이 유일한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을 끊임없이 설득하는 것!”이었다. 볼셰비키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노동자 병사 농민의 소박하고 단순한 요구를 강령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잠시 철회했던 슬로건을 다시 걸었을 때 그것은 이미 민중의 구호가 되었다. 민중은 평화, 토지, 노동자들의 산업통제를 위한 노동계급의 정부를 주장하는 볼셰비키를 지지하며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한다.
10월 10일 밤 볼셰비키당 중앙위원회는 무장봉기에 대해 고민했다. 당의 많은 지식인들과 지도자들, 페트로그라드 노동자와 수비대 대표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밤샘회의가 있었다. 레닌과 트로츠키를 제외하고 대다수가 봉기를 반대하였다. 결국 봉기주장은 투표에서 일단 기각됐다. 그때 한 노동자가 분노로 일어섰다.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를 대표해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우리는 봉기에 찬성합니다. 여러분은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소비에트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만 있겠다면, 우리와의 관계는 끝날 것입니다.” 몇몇 병사들이 여기에 가담했고 다시 투표가 이루어졌다. 무장봉기를 감행하자는 주장은 그렇게 통과되었다. 제헌의회를 반대하던 부르주아지들은 볼셰비키가 강력해지자 그제야 임시의회를 열어 토지를 토지위원회에 넘기고 즉각적 평화교섭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했지만 너무 늦었다! 사람들은 “평화로운 해결책은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승리뿐이다!”라고 외쳤다.
이처럼 볼셰비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본가 계급이나 다른 정당 지도자들과 타협해서 된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 민중이 봉기를 각오하지 않았다면 볼셰비키는 틀림없이 실패했을 것이다. 가장 단호하게 투쟁을 수행해야 할 시기,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적들을 몰아붙여야할 무장봉기는 바로 민중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볼셰비키는 민중의 거대하고도 단순한 욕구를 현실화 시켰던 것 뿐이다. 그리고 민중의 무자비하고 헌신적으로 투쟁하려는 혁명의 열의와 정열이 폭발하도록 하였다. 대중의 자발적 조직 소비에트! 소비에트를 통해 민중은 스스로 빵과 평화 토지의 요구를 쟁취하게 될 것이다!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무장 봉기의 실행 기관으로 만들어진 군사혁명위원회는 잠도 자지 않고 일했다. 식량도, 대포도, 작전도 없는 오합지졸의 군대, 규율 없던 적위대와 장교 없는 병사들이 어느새 자신들이 지휘관을 직접 선출하고 자진해서 복종하는 군대로 탈바꿈해서 기병대를 물리쳤다. 민중은 적당한 타협과 양보를 원하지 않았다. 부르주아정부를 겁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비에트는 우리들의 정부” 이기 때문이다. 봉기함으로써 임시정부 아래 부르주아정부의 부속품이었던 소비에트는 이제 스스로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레닌은 당면한 1917년 혁명을 앞두고 저술한 <국가와 혁명>에서 “부르주아 국가는 ‘사멸’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 의해서 ‘폐지’되고 프롤레타리아의 국가는 ‘사멸’한다”고 했다. 부르주아 국가는 지배계급의 이해만을 대변하며, 자연스럽게 사멸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무장봉기로 폐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국가’를 옹호하는 기회주의자들을 배격하고, 고통 받는 노동자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만이 과제임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달 뒤 이것은 현실이 되었다.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의 주인공들은 노동자 계급의 독재는 노동자 계급 스스로의 창조물임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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