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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력사개관
사회과학출판사 엮음 지음
출판사 - 중심
초판일 - 2001-03-05
ISBN - 9788989524045
조회수 : 907

● 목 차

'북한의 우리 역사 알기' 시리즈 간행에 부쳐 = 5
머리말 = 9

단군조선(전조선)의 성립과 발전

1 단군조선의 성립
1. 원시사회 말기 사회적 생산의 증대와 계급의 발생 = 17
2. 건국시조 단군 = 21
3. 첫 국가의 형성, 단군조선의 성립 = 28

2 중앙 관료체제와 지방통치체계의 확립
1. 중앙관료체제 = 39
2. 지방통치체제 = 45

3 생산의 발전, 경제제도와 계급신분관계
1. 생산의 발전 = 56
2. 경제제도 = 62
3. 계급신분관계 = 65

4 령토의 확장
1. 초기의 령역 = 68
2. 강성기의 령역 = 71

5 부여, 구려, 진국의 분립
1. 부여국의 분립 = 78
2. 구려국의 분립 = 85
3. 조선반도 중남부지역 소국들의 분립과 진국의 성립 = 90

후조선의 성립과 발전

1 단군조선의 종말과 후조선의 성립 = 97

2 생산의 발전과 노예제도의 변천 = 118
1. 생산의 발전 = 111
2. (범급8조)의 제정, 노예제도의 변천 = 118

3. 령역의 변천, 이웃나라들과의 관계
1. 령역의 변천 = 125
2. 이웃나라들과의 관계 = 131

만조선의 성립과 멸망

1 만의 정변과 만왕조의 성립 = 139
1. 만은 고조선 사람 = 140
2. 후조선의 멸망과 만조선의 성립 = 143

2 만조선사회의 발전 = 146

3 만조선의 대외관계, 한 나라 침략을 반대한 인민들의 투쟁
1. 만조선의 대외관계 = 155
2. 한 나라의 침략과 왕검성에서의 방어전, 만조선의 종말 = 161

고조선의 문화

1 사상과 신앙 = 171

2 말과 글
1. 말 = 180
2. 글 = 184

3 과학과 기술 = 188

4 문학과 예술
1. 문학 = 206
2. 공예미술 = 211
3. 음악, 무용, 교예 = 217

5 풍습 = 220
1. 식생활풍습 = 221
2. 옷차림 풍습 = 223
3. 주택과 가정생활풍습 = 226
4. 상무기풍과 정신도덕 생활풍습 = 231

부록 락랑국과 락랑군

1 락랑국에 대하여
1. 락랑국의 성립 = 233
2. 락랑국의 사회제도 = 235
3. 락랑국의 변천 = 238
4. 락랑국의 쇠퇴와 멸망 = 245

2 락랑군의 위치 = 248
1. (한4군) 설치 당시 락랑군의 위치 = 250
2. 료동군 동천 이후의 락랑군의 위치 =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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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분단이후 남북한 당국의 정식 승인을 거쳐 최초로 발행되는 북한의 역사 연구서이다. 이 책은 도서출판 중심이 북한의 유일한 출판물수출입기관인 조선출판물수출입사와 판권계약을 맺고 통일부, 국정원, 법무부, 문광부 등 관계 당국의 심의를 거쳐 한국내에서 합법적으로 발간된 것이다.

2)현재 남북한의 역사인식과 서술은 반만년 동안 역사를 함께 해온 단일민족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 내용이 극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체제의 차이가 민족공동의 유산인 역사 서술마저 크게 다르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정치 이데올로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근현대사에 이르러서는 더욱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발간은 남북한의 역사학계가 서로의 연구성과물을 공유함으로써 역사인식과 서술의 차이를 극복하는 작은 계기가 될 것이다.

3)이 책이 남북한 당국의 승인 아래 발간되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남북간의 정상적인 출판물 유통과 저작권 보호에 하나의 전기가 될 것이다. 현재 한국내에서는 북한의 저작물을 이른바 '영인본'이라는 이름 아래 직업적으로 해적출판하는 업체가 몇 곳 있어 북한 당국으로부터 지적재산권을 '도둑질'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한국의 관계당국도 북한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골치를 썩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의 발간을 계기로 이러한 해적출판물들이 사라지게 되고 남북간에 저작권이 상호 보호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2.고조선력사개관의 서술 방식
1) 이 책은 1999년 북한의 사회과학출판사에서 처음 발행한 것이다.
책의 내용 가운데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의 역사 교과서를 바꿔 써야 될 정도로 우리가 기존에 배워왔던 것과는 다른 내용들이 엄청나게 많이 담겨 있다. 고조선 역사의 큰 줄거리에 대해서는 남북한 역사학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세부적인 부분에 들어가면 현격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학계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북한 학계가 논거로 제시하고 있는 중국 및 우리 고대 역사서의 해석과 그러한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는 증거로 제시되고 있는 유물 유적에 대한 공동 고증작업일 것으로 판단된다.

2)이 책의 집필에는 북한의 고대사 연구 학자 12명이 참가해 삼국유사, 고기, 고려사, 제왕운기, 규원사화, 응제시주, 세종실록 지리지 등 국내 역사서와 중국의 사기,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지 한(韓)전, 위략 등 방대한 고대사서를 인용하고, 한반도와 중국의 요동지방에 산재해 있는 고조선의 유물 유적들을 그 내용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3)이 책을 내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인용한 고대 역사서들의 책 이름이 북한의 한글 전용방침에 의해 전부 한글로만 표기되었다는 점이다.
도서출판 중심은 이 책을 간행하면서 표지 디자인은 새로 했지만 편집형식과 표기 등은 북한에서 원래 발행했던 것을 1백% 그대로 따랐으며, 내용에 있어서도 당국에서 지적한 몇 줄의 정치적 내용을 뺀 것을 제외하고는 토씨 하나 건드리지 않고 원문 내용을 그대로 전재했다. 이는 학술연구서의 특성상 그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3.책의 일부 내용(및 쟁점 예상 내용)

1)고조선의 출현시기
종래 우리 학계에서는 단군의 건국연대를 삼국유사에서 일연이 주석으로 밝힌 요임금 즉위 무진년 설에 근거해 기원전 2333년으로 인식해왔으나 이는 단군유골의 연대측정치(5011+-267년)에 의해 틀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조선은 이보다 앞선 기원전 3천년 경에 단군에 의해 건국된 우리 역사상 최초의 노예소유제 국가였다.

2)고조선의 건국자 단군은 실존 인물이다.
지난 시기 단군은 신화적 인물로 간주되고 단군조선의 역사는 전설로 취급되어 왔으나, 1993년 단군릉의 발굴로 단군이 실제한 인물로 확인되고 단군조선의 역사가 고조선 역사의 당당한 구성부분으로 되었다. 단군은 평양지역 강동땅 박달종족 태생이었으며 단군릉이 대박한 기슭에 있는 것은 그가 죽어서 고향에 묻혔기 때문이다.

3)고조선의 중심지와 강역
종래 고조선의 중심지가 요동반도에 있었다는 견해가 있었으나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 평양지방이 단군이래 고조선의 중심지였다는 새로운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고조선의 고유한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고인돌무덤이 초기형, 중기형, 말기형에 이르기까지 평양과 그 주변에 1만4천기나 집중적으로 산재해 있으며 고조선의 상징인 비파형 단검이 이 지역에서 대량 발굴된 것으로 알 수 있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평양지방에서 발원한 비파형 단검문화가 서북조선을 거쳐 요동, 요서지방의 넓은 지역에 분포된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단군조선은 기원전 3천년기 후반기에 이르러 강성기에 들어섰으며 그 영역은 조선반도 대부분을 포함해 요하유역, 송화강 상류지역에 미치었다.

4)기자조선설은 완전한 위작
단군조선(전조선)은 1500년 이상 계속되다가 후조선 왕조에 의하여 교체되었다. 후조선은 전조선 내부에서 일어난 세력관계의 변화로 하여 그 왕조가 교체되었을 뿐 거의 모든 면에서 전조선을 계승한 나라였다. 고려사와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단군조선을 계승한 후조선을 기자조선이라고 부르고, 사기 조선열전, 한서 권28에 기자조선설이 있으나 기자가 조선에 왔다는 것은 완전한 위작이다.

기자동래설은 중국 봉건사가들의 위작이며, 사대주의에 젖은 조선의 봉건사가들이 이를 받아들인 결과 생긴 허구이다. 기자가 조선에 온 일이 없다는 것은 우선 기자의 무덤이 량국 몽현(오늘의 하남성 상구현)에 있다고 한 진 나라 두여의 말에 의하여(사기집해, 송세가의 주석), 그리고 평양 모란봉의 기자묘를 발굴한 결과 벽돌조각, 사기조각밖에 나온 것이 없다는 사실에 의하여 증명된다.(기자조선설을 부정하는 자세한 내용은 PP 106~110 참조)

5)만은 고조선 사람
중국 역사기록에 만을 연인(燕人)이라고 써놓은 것으로 하여 그를 중국사람으로 이해했으나 만(위만)은 기원전 3세기 말엽에 연 나라에 속한 요서지방에서 살고 있던 고조선 사람이었다.

만이 고조선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는 첫쩨 그에게 중국식 성이 없었고, 둘째 그가 정변을 일으켜 후조선 왕조를 무너뜨린 후에도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고, 셋째 삼국지 예전에 그가 연 나라 땅에서 피신해 올 때 오랑캐 옷 즉 조선옷을 입고 상투를 틀고서 패수를 건너 조선으로 왔다고 기록한 데서도 알 수 있다.(PP 140~143 참조)

6)만조선의 멸망과 한4군 설치 문제
만조선은 기원전 109년 한 나라 침략군과 맞서 1년 가까이 싸웠으나 108년 부수도 왕검성(오늘의 중국 요녕성 개주시 부근)이 함락됨으로써 멸망하고, 한 나라는 왕검성을 중심으로 한 만조선 땅 일부 지역에 낙랑, 현도, 진반, 임둔 등 소위 한4군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한4군의 위치는 종래의 주장처럼 오늘의 평양일대가 아니라 요동반도 일대이다. 한4군은 기원 4세기 초엽 요동지방에서 쫓겨나고 그 지역은 고구려에 통합된다.

만조선 왕조 멸망 이후 수도 왕검성(평양)에서는 신흥세력으로 추측되는 최씨 일가가 정권을 잡고 락랑국을 세웠으며 그 북쪽에는 황룡국, 동쪽에는 맥국, 예, 남옥저 등의 소국들이 형성되었다. 낙랑국은 기원 37년 국왕 최리가 고구려의 왕자 호동에게 항복하기까지 평양 일대에서 존속하게 된다.

7)낙랑군은 평양이 아니라 오늘의 요동지방에 위치했다.
만조선이 멸망한 후 수도 왕검성(평양)일대에서는 신흥세력인 최씨 왕조가 낙랑국을 세웠으며 한 나라의 낙랑군은 부수도 왕검성(오늘의 요녕성 개주시 일대)부근에 설치되었다. 낙랑군의 위치문제가 오늘처럼 첨예한 문제로 부각되게 된 것은 일제의 조선침략 책동과 관련되어 있다.

일제는 어용사가들을 내세워 지금의 평양시 토성동을 비릇한 서북조선 일대의 고대 유적들을 마구 파헤치고 거기서 드러난 유물들을 중국의 '한식유물'이라고 단정하면서 '고고학적 자료'에 근거하여 '낙랑군-평양설'을 하나의 정설로 체계화 해놓았다. 그들은 한 나라가 고조선 왕조를 무너뜨린 다음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조선 일대에 낙랑군이라는 식민지를 두고 4백여 년 동안이나 지배하였으며 조선의 역사와 문명이 한4군 특히 낙랑군의 설치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떠들어대었다. 이것은 마치 조선역사가 외세의 지배와 간섭, 외세의존과 굴종의 역사인 듯이 묘사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말살하고 저들의 침략행위를 합리화하려는 목적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낙랑군의 위치를 똑바로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일제는 평양일대의 고분 겨우 1백기 정도를 발굴하고 이런 결론을 내렸지만 북한은 3천기 이상을 발굴하여 낙랑국의 존재와 낙랑군이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증명하였다.

고조선-한 나라 사이의 경계를 이루고 있던 패수라는 강이 오늘의 대릉하였던 만큼 요동군의 위치를 패수를 기준으로 하여 보면 대릉하 서쪽 지역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조선-한 전쟁이 끝난 다음 한 나라는 이러한 요동군의 바로 이웃에 새로 낙랑군을 설치하였다. 그러므로 설치 당시의 낙랑군은 요동군의 동쪽 인접지대 즉 패수(대릉하)동쪽 요동지역에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P 248 락랑군의 위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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