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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민족통일과 민중권력 (2 MB)
민족통일과 민중권력
최인범 지음
출판사 - 신평론
초판일 - 1989-03-15
ISBN -
조회수 : 1936

● 목 차

차례

□ 들어가는 말/7

제1장 전후 양대진영체제의 성립과 한반도 분단 – 15
1. 코민테른의 전략과 전후처리/17
2.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내용/20
ㄱ) 제국주의 세계체제의 확립/21
ㄴ) 신식민지 지배전략/21
ㄷ) 정치군사적 세계질서/23
3. 분단으로 이어진 분할점령/24
ㄱ) 분할점령을 결정한 미국의 입장/24
ㄴ) 분할점령에 응한 소련의 입장/27
ㄷ) 조선민중의 대응/29
4. 진영체제의 성립과 세계체제 모순의 변화/32

제2장 분단과 통일을 둘러싼 주요쟁점 – 35
- 통일논의에 대한 변혁론적 검토 -
1. 분단과 한국전쟁에 대한 해석/38
ㄱ) 분할점령과 군정실시/40
ㄴ) 신탁통치 결정과 미・소공동위원회/56
ㄷ) 두 개의 정부수립/61
ㄹ) 한국전쟁과 분단의 고착화/64
ㅁ) 한국전쟁의 결과/72
ㅂ) 소결: 분단 및 분단고착화의 원인/72
2. 전후 사회발전과 현존 국가권력에 대한 평가/74
ㄱ) 북한 사회에 대한 평가/74
ㄴ) 남한 사회의 성격/77
3. 통일국가의 상(권력형태와 사회체제)과 통일의 경로/81
ㄱ) 통일국가의 상/81
ㄴ) 통일의 경로/84
4. 통일논의의 유형화/86

제3장 남북한 정부당국의 통일정책 – 90
1. 남북한 통일정책의 변천과정/90
ㄱ) 미・소 군정기(1945~48년)/91
ㄴ) 두 개의 정부와 한국전쟁기(1948~53년)/94
ㄷ) 1953~1960년/98
ㄹ) 60년대/101
ㅁ) 70년대/103
ㅂ) 80년대/106
ㅅ) 개괄/109
2. 남북한 정부당국의 통일방안/114
ㄱ)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114
ㄴ) 고려민주공화국 창립방안/118

제4장 운동권을 포함한 민간 차원의 통일논의 – 126
1. 80년대 이전까지의 통일논의/127
2. 보수야당과 재야의 통일논의/130
3.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론에 입각한 통일론/133
4. 남한의 독자적 민중혁명론에 입각한 통일론/139

제5장 몇 가지 현안문제에 대한 검토 – 149
1. 88서울올림픽/149
ㄱ) 올림픽이 민중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149
ㄴ) 남북한 정권의 대응/150
① 남한 정부당국의 대응/150
② 북한정권의 대응/150
ㄷ) 민중운동권의 대응/153
2. 남북학생회담 성사투쟁/155
3. 남북국회회담에 대해서/160
4. 남북교차승인 및 UN동시가입문제/164
ㄱ) 남한정권과 미・일의 입장/165
ㄴ) 소련・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의 시각/166
ㄷ) 북한의 입장/167

제6장 근래 정세변화와 통일논의의 전망 – 171
1. 한반도를 둘러싼 내외정세 동향/171
ㄱ) 전후 냉전구조의 발전과 와해/171
ㄴ) 한반도 주변정세와 남북관계/178 2. 결론에 대신하여: 통일논의의 위상과 올바른 대응책의 모색/183
ㄱ) 노태우정권의 출범과 국내정치정세의 전망/183
ㄴ) 통일논의의 위상과 올바른 대응의 모색/185

□후기 – 못 다한 말/190
□부록 – 231
부록①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233
부록②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한 제의/238
부록③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투쟁과업/255
부록④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민주단체협의회 발족선언문/270
부록⑤ 일백만 청년학도여!/273
부록⑥ 현재 진행되는 통일운동에 대한 우리의 입장
- 노동자의 길 - /287
부록⑦ 북한의 민주기지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여명-/297
부록⑧ 민족자주권을 확보하고, 민족통일을 성취한다 –선봉-/312
부록⑨ 연방제에 의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실현 –혁명의 불꽃-/314
부록⑩ 민중해방을 위한 민주주의 민족통일 방안 –노동자의 깃발-/316
부록⑪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초청 서한 –조선학생위원회-/328
부록⑫ 제13차 청년학생축전 초청 수락 답신 –전대협-/331
부록⑬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대하여 –노동자의 깃발-/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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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987년 여름은 길고도 지루했던 장마와 뒤이은 물난리가 두 달여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노동자들은 6월투쟁으로 확대된 공간 속에서 한국 노동운동사상 유례없는 대파업투쟁을 전개하였다. 한국사회 전체를 그 토대로부터 뒤흔들었던 노동자대투쟁은 그 규모나 투쟁의 격렬함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그간 노동자들이 받아 온 억압과 수모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로 폭발한 것이었다. 사실 노동자들이 수십 년 동안 남몰래 흘린 눈물은, 내내 계속되었던 빗줄기의 몇 배에 해당할 것이다.
한편 1988년 여름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전개된 통일운동은 또 다른 측면에서 민중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았다 할 수 있다. 정권당국이 올림픽 열기를 총동원해 내면서 자신의 능력을 내외에 과시하고자 했을 때, 학생운동은 맨몸으로 조국통일을 외치며 민족혼을 일깨우고자 혼신의 정열을 쏟아부었다. 정권당국과 반정부 학생운동세력간에 민족주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것이다. 투쟁의 불꽃과 열기는 좁은 한반도를 부글부글 끓게 할 만한 것이었다. 이 여름 내내 근래 보기 드문 가뭄가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1987년 여름의 노동자투쟁이 분단 이후 남한사회에 있어서 계급운동의 새로운 토양을 일구었다고 한다면, 1988년의 통일운동은 분단구조 자체에 대한 정면 도전을 통해 우리운동을 가장 핵심적인 정치쟁점으로 인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두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특별한 의의를 갖는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올림픽과 통일운동을 내세운 정권당국과 반정부 학생운동세력간의 민족주의 경쟁에서 비록 일시적이긴 하더라도 일단은 정권당국이 판정승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혼신을 다해 치열하게 전개한 통일운동은, 낡은 세대들이 견고하게 쌓아올리고 무조건적으로 강요해온 편견과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여지없이 파괴해 버렸다. 정권당국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전의 낡은 사고방식이 더 이상 기대했던 만큼의 효력이 점차 발휘될 수 없음을 간파하고는, 서서히 그러나 더욱 교묘한 사슬로 이를 대치시키려고 기도하였다. 비바람에 바래고 부스러지기 시작한 낡은 장벽을 최신형의 투명한 방탄유리벽으로 대치시키려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학생들에 의해 정면도전을 받게 되었는 바, 학생들은 낡은 편견과 이데올로기의 찌꺼기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새로운 금기사항마저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낡은 장벽은 일거에 무너졌으나 아직 새로운 방벽은 튼튼히 구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분적인 제약과 탄압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통일논의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금단의 구역으로만 치부되어 오던 북한의 실상이 소개되고, 급기야 조선노동당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파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추세는 정권당국을 당혹케 하였으며, 그리하여 “더 이상은 안돼, 요기까지만!”을 되풀이 하며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정권당국의 계속되는 미봉책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통일논의의 확산은 다른 한편으로 남한의 민중운동 제세력에 대해서도 더 이상 회피하거나 유보시킬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기하였다. 과거 유신시대에 단순히 반정부 민주화운동 선상에서 진행되던 투쟁의 양상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거치면서 폭과 깊이를 심화시켜 왔고, 1985년 이후로는 ‘현정권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더하여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였다. 이제 통일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북한정권은 우리에게 무었인가?’ 그리고 나아가서 ‘사회주의 국가들은 또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첨가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와같이 복잡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목표로 하는 사회체제와 권력형태는 무엇이며, 현존하는 제 권력 및 세력에 대해 어떠한 위상에 놓여지게 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민중운도은 그 장래에 대하여 근본적이고도 핵심적인 물음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그 물음에 답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1988년 여름의 통일운동이 가져온 이러한 진전들 가운데 모든 사람이 확연하게 느끼고 또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사실은, 이른바 ‘전후세대’가 운동의 중심으로 성장했다는 점일 것이다. 분단과 한국전쟁의 당사자들, 그리하여 자신들의 일면적인 경험들을 절대화시켜 온갖 편견과 분단에 기초한 허구적 이데올로기를 강화시켜 왔을뿐더러 이를 무조건적으로 강요해 왔던 낡은 세대들을 대신하여, 새롭게 현대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그 모든 낡고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받기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의 기억과 경험의 편린들에 덜 의존하고, 바로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칼날같은 현실에 굳건히 뿌리박은 채, 당면한 현실의 문제들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미래의 역사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명확한 증거이자 담보라 아니할 수 없다.


1985년 여름 TV 화면에는, 분단 이후 40여 년만에 남북한간에 문화예술단과 고향방문단의 상호 교류가 실현되어, 이제는 다 늙어 버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부둥켜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던 감격적인 장면이 방영되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살아온 모든 이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실로 감격적인 모습이었는데, 서로 얼싸안았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촬영이 끝나고 정해진 시간이 끝나자 다시금 남과 북으로 발길을 돌렸고, 이후 아직까지도 그들을 갈라놓고 있는 울타리는 걷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장면들을 또 다른 측면에서 새로운 감회와 분노를 불러일으켰는데,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향땅을 밟았다는 이유로, 또는 헤어졌던 가족들을 만났다는 이유로 간첩의 굴레를 쓰고 처형되었으며,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지, 아니 단지 친지 중에 남과 북으로 갈려 살고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온갖 불이익과 감시를 받아 왔는지, 그 회한의 세월들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행위가 이전에는 극악무도한 범죄처럼 취급되었으나, 이제는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리는 희망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모순에 가득찬 편견, 양 정권당국에 의해 지속적으로 강요되어 온 기만적 허위의식은 지금도 우리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저 악명높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란 자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악수를 나누던 그 시점에도, 박정희정권은 ‘김일성의 남침야욕’ 운운하며 유신에 반대하던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을 개패듯 짓밟아 감옥에 처넣고 있었다. 권력의 핵심에 있던 밀사들이 소련으로 중국으로, 평양으로 넘나들고 있던 80년대 중반에, 탐욕스런 장사치들은 안전기획부의 협조하에 이 금단의 구역들을 제집 드나들 듯 들락거리고 있던 시절에도, 정권당국은 반정부인사들과 나이어린 학생들을 독방에 가두어 두고 온갖 고문과 추행을 일삼으며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씌우고, 빨갱이란 딱지를 붙여 좁고 차디찬 감옥에 빈틈이 없을 만큼 집어넣고 있었다.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혼란시키는 이 모순적 현실은 오로지 정권당국의 물리적 폭력과 낡은 허위의식인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다. 이제 이 기만에 가득찬 현실은 거부되어야 한다. 그 야만적 폭압뿐 아니라, 낡고 찌들은 허위의식까지 철저하게 거부되어야 한다.

1988년 여름, 통일운동을 주도했던 학생세력은 정권당국의 폭력적 제지에 맨몸으로 길바닥에 드러누워 항의하였다. 낡은 허위의식에 대해서는 ‘북한 실상 바로알기운동’으로 대응하였다. 학생들이 일시적으로 판정패하게 된 데에는, 어쩔 수 없는 힘의 관계에서의 열세가 일차적 원인이라 하겠다. 그러나 단 한번의 일전에서 승패가 판가름나는 것이 아니라 할진대, 자체내의 문제들을 검토하는 것이 유용하리라 보여진다.
남북한 청년학생 체육대회 및 국토순례대행진을 위한 학새회담을 내세우고 진행된 통일운동은 올림픽이라는 한시적인 정치적 이슈와 결합되면서 폭이 상당히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통일운동을 전개한 전반적인 기조는 소위 북한실상바로알기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실상을 바로알자는 취지에 한정될 수 없는 것이고 결국은 통일문제에 있어서 대안적 관점과 일정하게 상호관련을 맺는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통일운동의 방향과 일맥상통한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이 통일운동을 한시적으로 설정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한계를 지니게 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북한실상을 바로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새로운 사회의 대안으로서의 북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접근방식은 통일운동을 현실의 운동과정과 분리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현실 속에서 운동을 진전시키는 것은 유토피아를 꿈꾸기 때문도 아니요, 어느 나라가 살기 좋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현실의 제모순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운동의 동력 또한 바로 현실의 모순으로부터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실상을 소개하고 광고하여 가보고 싶다는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 속에서 직접적으로 운동을 추동해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보여진다.
앞으로 한국현대사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세대들은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려야 할 두고온 가족이나 친지도 없을뿐더러, 그런 이유로 통일을 지상과제로 하고 있지도 아니하다. 그들은 당당하게 남한의 모순을 해결해 나가는 토대 위에서 성숙한 모습으로 북한 민중과 손을 맞잡아야 할 것이다. 비록 분단과 전쟁을 직접 겪었으며 또 그에 대해 일정하게 책임져야 할 구세대의 인물들이 남과 북에 건재하여 아직도 단순한 민족감정이나 민족적 정서, 혹은 통일의 비원 등에만 호소할지라도, 젊은 세대는 그럴 수 없다. 아니 그래서도 아니 될 것이다. 그 모든 민족주의적 염원을 포괄적으로 싸안고도 남을 더 큰 가슴과 함께 그 과제를 냉엄한 현실의 문제와 결합시켜 낼 줄 알아야만 할 것이다.
통일문제를 현실의 민중운동과 결합시켜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남한사회의 구조와 결합시켜 내재적으로 해석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분단으로 인하여 남한사회내의 모순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심화되는가, 통일문제를 해결해 냄으로써 민중운동의 성장에 어떤 결정적 조건을 마련하고자 하는가를 설명해 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단을 단순히 지역적으로 분할되었다라는 시각으로부터 체제의 문제, 즉 민중적 관점 또는 일정하게 계급적 관점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핵심적으로는 남한의 정권당국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바꿔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새로운 세대가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될 시각이자, 40여 년간 변화된 현실이 그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문제인식이라 할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한계가 노정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치적 이슈를 전환함으로써 이러한 근본문제에 접근해 들어가는 중대한 작업을 회피하려는 듯이 보인다. 지난 3~4년간을 돌아보면 학생운동은 반전반핵→직선제개헌쟁취→김대중선거운동→학생회담과 통일운동→5공화국비리청산운동 등으로 매시기마다 아무런 설명없이 정치적 이슈를 바꿈으로써 상태를 정확히 평가하는 일을 회피해 왔다. 그것이 ‘전술적 유연성’이라는 만병통치약으로 얼마만큼이나 설명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운동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책망하거나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문제는 학생들에게만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터뜨리고 지나간 여러 문제들에 대해 논의를 심화시키고, 빠뜨린 것까지 찾아내어 일관된 체계로 정립해 내는 것은 단지 젊다는 이유에서 젊은 세대로 불리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 나갈 주체로서의 젊은 세대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공동의 과제일 것이다.


통일논의의 확산과 더불어 이와 관련된 글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에 출판된 책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지는데, 하나는 ‘북한실상바로알기운동’의 일환으로 출판되는 북한관련 서적들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관련 자료모음집류들이다. 전자에는 북한에 대한 소개서나 기행문류에서부터 최근에는 북한 정권당국의 원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글들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가치중립’을 신봉하는 베버리언(Max Weber의 추종자들)으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면, 일정하게 운동에 있어서의 정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대체로 ‘북한의 사정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또 그들의 주장대로’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감히 원전에 대해 잡문을 덧칠할 수 없다’는 외경심에서 나름대로의 해설을 덧붙이려는 노력을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후자의 글들은 대체로 자료모음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설정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학생운동에 대한 스케치를 하는 정도를 못 벗어나는 듯하다. 전자의 소개서에 비해 후자의 글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운동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글은 위의 분류에 따르면 명백하게 후자에 포함된다. 그리고 이 글이 목적하고 있는 바 역시 후자의 논의를 풍부하게 하는 데 있다. 후자의 글들이 직접적인 실천적 함의를 강하게 내포할 수밖에 없고, 또한 일정하게나마 정치적 소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볼 때, 이러한 노력은 실천적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유용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기초 위에서 이 글은 특히 통일논의가 사회변혁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하여 쓰여졌다. 실상 통일논의를 구체적인 현실의 변화 문제와 별개의 독자적인 운동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쉽사리 제3자적인 관객의 입장에 빠지거나 아니면 희망과 의지만으로 이루어진 공상세계의 논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간 남북한 당국이나 해외동포들이 내놓은 무수한 통일방안들이 분단현실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아무런 설득력도 가질 수 없는 겉치레에 불과했다는 경험이 웅변적으로 증명해 준다. 그러므로 이 글은 사회변혁의 제문제가 통일문제와 필연적으로 결합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인식을 최종적인 결론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견지하고자 했으며, 따라서 그간 우리들이 회피하거나 유보해 왔던, 꺼림칙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쟁점들을 정면으로 다루고자 하였다.
글의 구성은, 제일 먼저 분단이 전쟁 후 세계질서의 재편에서 지니는 의미를 검토하고, 이어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둘러싼 주요 쟁점들을 다룬 후, 양 정권당국 및 운동권의 통일방안들을 분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덧붙여서 몇 가지 현안에 대한 검토와 앞으로의 전망을 결론 대신에 다루었다. 부록으로는 각종의 단편적인 성명서들을 싣는 대신 운동권내의 통일논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들을 정치적 색조에 따라 분류해 실었다.
이 글은 여러 가지 통일논의를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그것들을 소개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리고 통일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논문도 아니다. 따라서 현실의 변화과정 그 자체를 자세히 기록하거나 수많은 주석과 참고문헌 또는 관련 도서목록을 덧붙여 주는 친절함도 베풀고 있지 않다. 이 글은 독자들에게 이러저러한 사실들이나 여러 가지 주장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혹은 잘 알고 있느냐라고 질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일, 즉 보다 정확하게 많이 아는 것은 독자들, 우리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기울여야 할 노력이다. 이 글은 그러한 사실이나 견해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거나 적게 알고 있거나 간에, 모든 독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 즉 ‘당신은 우리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제, 그 중에서도 핵심적 과제라고 할 수 있는 통일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 즉 우리 자신들의 소신을 답변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과 답변만이 이 글이 기존에 나와 있는 책더미 위에 단지 한 권 더 보태는 이상의 의미, 비록 거칠지만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모쪼록 이 글의 거칠음과 부족함을 넘는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1988년, 가을------저자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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