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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일기
발터 벤야민 지음 , 김남시옮김
출판사 - 길(도서출판)
초판일 - 2015-01-15
ISBN - 9788964451083
조회수 : 277

● 목 차

게르숌 숄렘 서문 5
전면 개정판 서문 13
옮긴이의 말 17

모스크바 일기 31

부록 1 : 모스크바 275
부록 2 : 편지들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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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발터 벤야민 선집 제14권. 벤야민은 많은 편지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편지들에서 사적인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이 편지들은 수신자들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어 그의 진솔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모스크바 일기』는 우리에게 이론가 벤야민의 배후를 이루고 있는 ‘인간’ 벤야민에게 접근해갈 통로를 마련해준다.

이 일기를 통해 우리는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장난감 가게에서 아들을 떠올리는 가장으로서의 벤야민을 만난다. 그 벤야민은 램프를 고치려다 합선을 일으키고, 무거운 짐을 든 채 시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 다니며, 찾던 물건을 발견하면 아이처럼 기뻐하는 서투르고도 천진한 인물이며, 자신이 연모하는 여인에게 수작을 거는 다른 남자를 신경 쓰고, 그녀와의 이별에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며, 신경을 거스르는 룸메이트에게 토라져 말을 안 하는 갑갑하리만치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글이 단지 사적 삶의 기록인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애정과 갈등을 둘러싼 개인적 삶의 곡선은 사회주의 건설을 둘러싼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ㆍ정치ㆍ문화적 사건들의 좌표 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를 벤야민의 섬세한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도시 모스크바의 인상학이 메우고 있다.

가장 내밀한 ‘인간’ 벤야민을 볼 수 있는 텍스트로서의 『모스크바 일기』
이 책은 발터 벤야민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게르숌 숄렘(Gershom Sholem)의 말처럼, 벤야민의 삶에 대해 우리에게 전해진 것 가운데 가장 사적이면서 철저하고도 냉정하리만치 진솔한 기록을 담고 있다. 벤야민은 많은 편지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편지들에서 사적인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이 편지들은 수신자들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어 그의 진솔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모스크바 일기』는 우리에게 이론가 벤야민의 배후를 이루고 있는 ‘인간’ 벤야민에게 접근해갈 통로를 마련해준다. 이 일기를 통해 우리는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장난감 가게에서 아들을 떠올리는 가장으로서의 벤야민을 만난다. 그 벤야민은 램프를 고치려다 합선을 일으키고, 무거운 짐을 든 채 시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 다니며, 찾던 물건을 발견하면 아이처럼 기뻐하는 서투르고도 천진한 인물이며, 자신이 연모하는 여인에게 수작을 거는 다른 남자를 신경 쓰고, 그녀와의 이별에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며, 신경을 거스르는 룸메이트에게 토라져 말을 안 하는 갑갑하리만치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글이 단지 사적 삶의 기록인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애정과 갈등을 둘러싼 개인적 삶의 곡선은 사회주의 건설을 둘러싼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ㆍ정치ㆍ문화적 사건들의 좌표 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를 벤야민의 섬세한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도시 모스크바의 인상학이 메우고 있다.

아샤 라치스와의 운명적 만남, 그리고 벤야민 사상에 끼친 영향
숄렘에 의하면, 벤야민이 모스크바에 가게 된 세 계기가 있었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연인 아샤 라치스(Asja Lacis, 1891~1979)에 대한 그의 열정 때문이었다. 둘째는 레닌에 의한 10월혁명 이후 러시아의 상황들을 좀더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형성해보고, 그와 더불어 그가 벌써 2년 이상 고민하고 있던 독일공산당 가입 여부에 대해 결단을 내리려는 바람에서였다. 끝으로 여행을 나서기 전에 떠맡았던 문학적 의무들에 대한 고려가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벤야민은 그를 위해 모스크바라는 도시의 이미지와 그 삶, 말하자면 모스크바의 ‘인상학’에 대해 통찰을 얻고자 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와의 약속에 따라 잡지 『피조물』(Die Kreatur)에 실린 장문의 글 「모스크바」이다(이 책의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모스크바」는 사실상 『모스크바 일기』의 초안들을 크게 재구성해서 쓴 것으로 관찰과 상상력이 강렬한 방식으로 서로 결합되어 나온 믿기 힘들 정도의 섬세함이 놀라운 글이다.
이 가운데 연인 라치스와의 관계를 다룬 부분이 이 일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모스크바로 벤야민을 불러들인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그녀였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숄렘은 이 『모스크바 일기』를 일컬어 “좌절된 구애의 이야기”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라치스의 영향이 향후 벤야민 사상의 변곡점으로 큰 영향을 행사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 둘의 관계가 썩 심상치 않았음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1924년 이탈리아에서의 첫 번째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라치스에 다가간 벤야민이지만, 그 둘 사이에는 서로 다른 계급적 기반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부유한 유대인 집안 출신인 벤야민과 라트비아 프롤레타리아의 딸 라치스 사이에 걸쳐 있는 계급적 심연 그 자체였다. 라치스는 독일인 대농장주의 노예였던 할아버지와 하느님과 차르에 대한 순종만을 미덕으로 알고 살던 어머니, 공장 노동자이자 사민당 당원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 “완고한 규칙과 관습들로 삶을 얽어맨 부르주아적 소시민성”에 대한 깊은 혐오를 키워오던 공격적 무신론자였다. 더불어 그녀는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성을 절감, 이를 프롤레타리아 연극운동을 통해 실천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벤야민은 한마디로 “부유한 집안 출신의 견실한 지식인”이었다. 비록 계급적 심연은 깊었으나, 이 만남을 통해 벤야민에게는 서서히 마르크스주의적 사유의 단초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즉 카발라적 언어철학과 보들레르를 위시한 근대문학을 향해오던 그의 관심은 점차 문화, 예술, 철학의 물질적ㆍ역사적 기반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기술이 예술의 자각과 수용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것이 사회주의 혁명과 어떤 관계를 갖게 될지를 분석한 저 유명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그런 사유의 산물이다. 물론 벤야민의 마르크스주의적 사유의 단초가 전적으로 라치스의 영향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감정과 느낌들을 숨기지 않고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성격의 그녀가 자주 벤야민의 자의식을 공격함으로써 그를 강제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라치스는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던 벤야민을 비판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산당에 가입하기를 종용했으며, 그의 사상이 관념적인 상아탑 미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쏘아붙이기도 했으나, 결코 둘 사이가 언제나 긴장감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벤야민에게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를 소개해주기도 했고, 벤야민 역시 라치스에게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를 소개해준다.

기묘한 관계 속에서 모스크바에서 보낸 두 달여의 기간!
사실, 모스크바 체류 당시 벤야민과 라치스는 기묘한 관계 속에 있었다. 라치스를 만났을 당시 벤야민은 아내 도라와의 사이에서 아들 스테판을 두고 있던 유부남이었고,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해 혼자 딸 다가를 키우던 라시스는 오스트리아 출신 연극비평가 겸 연출가인 베른하르트 라이히(Bernhard Reich)와 동거 중이었다. 이전부터 아내와의 관계가 힘들었던 벤야민은 라치스를 만나면서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벤야민을 만나면서도 라치스는 라이히와의 관계를 지속했다. 더구나 벤야민은 라이히와 지적 교류를 나누던 사이였다. 이 기묘한 삼각관계가 벤야민이 겪었을 또 다른 심리적 긴장과 갈등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발터 벤야민 (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지은이)
독일 출신의 유대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집필하지만 아카데미 세계로 진출하려던 계획은 결국 좌절하고 만다. 같은 해에 알게 된 연인 아샤 라치스 이외에 나중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서 유물론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평, 번역, 방송활동을 펼쳐나간다. 파시즘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유럽에서 스스로를 ‘좌파 아웃사이더’로 이해한 그가 택한 길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에 거리를 두고, 유대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에 바탕을 둔 글쓰기를 통해 현대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었다. 1940년 벤야민은 당시 뉴욕에서 사회연구소(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던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자결한다. 그로써 그가 13년간 매달렸던 프로젝트, 즉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의 구상을 상부구조(문화) 전체에 적용하여 19세기 자본주의와 모더니티의 근원을 고고학적으로 탐구하려던 필생의 저작 『파사젠베르크』(Das Passagen-Werk)는 미완으로 남는다. 스탈린-히틀러의 밀약을 접한 충격에서 쓴 유물론적 역사철학의 결정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그가 남긴 최후의 글이다.

김남시 (옮긴이)
서울대학교 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문화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예술학 전공에서 문화이론/미학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광기, 예술, 글쓰기』, 『프리드리히 키틀러』, 『본다는 것』, 『보여진다는 것』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권력이란 무엇인가』,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뱀 의식: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구역의 이미지들』, 『새로움에 대하여』,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축음기, 영화, 타자기』(공역), 『현대 독일 미학』(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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