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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와 유물론
발터 벤야민 지음 , 윤미애, 최성만옮김
출판사 - 길(도서출판)
초판일 - 2020-06-29
ISBN - 9788964452240
조회수 : 459

● 목 차

해제: 벤야민, 브레히트를 만나다: 동의와 유보 사이에서 5
전집 편집자들의 해설: 벤야민과 브레히트 33
옮긴이의 말 46

제1부: 브레히트 관련 글들
베르톨트 브레히트(1930) 65

<브레히트의 작품에 대한 주해>
브레히트 주해에서(1930) 81
서사극에 나오는 가족드라마(1932): 브레히트의 「어머니」 초연에 대하여 93
프롤레타리아트의 호칭을 불러서는 안 되는 나라: 브레히트의 단막극 여덟 편의 초연에 대하여 103
서사극이란 무엇인가(제1판, 1931): 브레히트에 대한 연구 113
서사극이란 무엇인가(제2판, 1939) 137
브레히트의 시 주해(1938) 153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소설(1935) 211
스벤보르의 여름 일기 1934 231
1938년 일기 251

제2부 유물론 관련 글들
프롤레타리아 아동극의 프로그램(1929) 269
공산주의적 교육학의 사례(1929) 281
거리산보자의 귀환(1929) 289
한 아웃사이더가 주목을 끌다(1930):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사무원들』에 대하여 301
[서평]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사무원들. 최근의 독일로부터』(1930) 315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1930): 에른스트 윙거(편)의 모음집 『전쟁과 전사들』에 대하여 323
좌파 멜랑콜리(1930): 에리히 케스트너의 새 시집에 대하여 347
위기와 비판(1930): 잡지 『위기와 비판』에 관한 메모 359
생산자로서의 작가(1934): 1934년 4월 27일 파리의 파시즘 연구소에서 행한 강연 365
파리 편지 1(1936): 앙드레 지드와 그의 새로운 적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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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발터 벤야민 선집 8권. 발터 벤야민 사상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마르크스주의와 관련, 특히 문학(더 범위를 넓혀 미학까지) 분야에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이다. 하지만 벤야민과 가장 두터운 친분을 나누었던 게르숌 숄렘과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벤야민 사상의 정수는 브레히트의 그늘을 벗어나야 빛을 볼 수 있다고 했으며, 이를 직접적으로 벤야민에게 충고했다.

벤야민 사상의 한 축인 마르크스주의 예술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베르톨트 브레히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사상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마르크스주의와 관련, 특히 문학(더 범위를 넓혀 미학까지) 분야에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이다. 하지만 벤야민과 가장 두터운 친분을 나누었던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 ― 숄렘은 “브레히트라는 인물이 1930년대에 벤야민의 생산적 작업에 끼친 영향은 불운”이라고 했다 ― 과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 ― 아도르노는 벤야민 사상의 정수는 브레히트의 그늘을 벗어나야 빛을 볼 수 있다고 했으며, 이를 직접적으로 벤야민에게 충고했다 ― 는 벤야민의 브레히트에 대한 관심과 교분에 끝까지 난색을 표명했다. 하지만 벤야민에게는, 두 가지 이유에서 브레히트와의 만남은 거의 필연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두 사람이 공유한 반(反)부르주아적인 관점이다. 벤야민이 자만에 빠진 부르주아적 학문과 일절 상관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처럼 브레히트도 부르주아적 연극의 오만함과 자기기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또한 벤야민이 학계 진출을 포기하고 비평가로 진로를 바꾸겠다고 생각한 즈음에 독일에는 그가 보기에 비평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따라서 브레히트가 베를린 연극계에서 이름을 떨치기 전에 벤야민이 관심을 보인 것은 무척 유의미하다).

“브레히트의 작품이야말로 내(벤야민)가 아무런 공식적인 이의 없이 지지한다”
하지만 숄렘이나 아도르노처럼 벤야민의 가까운 지인들이 보여준 태도는 벤야민이 왜 브레히트를 지지하고 그와 연대하고자 했는지(벤야민은 브레히트의 작품이야말로 자신이 비평가로서 아무런 공식적인 이의 없이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벤야민은 1931년 발표한 에세이 「좌파 멜랑콜리」에서 에리히 케스트너(Erich K?stner)의 시집을 비평하면서 “정치적 투쟁을 결단의 강박으로부터 즐김의 대상으로 변환하고 생산수단으로부터 소비품목으로 변환”한다고 비판한다. 1934년 파리의 한 파시즘 연구소에서 행한 강연인 「생산자로서의 작가」에서도 상당수의 작가들이 “신념의 차원에서는 혁명적 발전을 이루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노동, 그 노동이 생산수단에 대해 갖는 관계, 그 노동의 기술에 대해서는 실제로 혁명적인 사고를 철저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라며 비판을 이어갔다. 벤야민에 따르면, 문학과 예술의 정치화는 정치적인 신념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기술적 실천에서의 혁명적 사고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정치적 경향은, 그것이 아무리 혁명적이라 할지라도 작가가 프롤레타리아와의 연대를 단지 신념의 측면에서만 경험하고 생산자로서 경험하지 않는 이상 반혁명적으로 기능하게 된다”라고 그는 내다보았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벤야민에게서 브레히트는 예술적, 기술적 수준과 정치적 경향을 결합한 문학을 가장 잘 구현한 작가였다. 10여 년에 걸친 두 사람 사이의 긴밀한 지적 교류와 연대는 문학적 실천에 대한 일치된 의견에 토대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역사의 벼랑 끝까지 몰리는 상황에서 반(反)파시즘의 힘을 모색하던 두 사람은 어떤 식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추구하든 철저함의 요구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도 일치했다. 당시 리얼리즘 개념을 규범적으로 고수한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acs)나 알프레트 쿠렐라(Alfred Kurella)의 마르크스주의 미학을 반대한 것도, 기술로 인해 변화된 새로운 생산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예술은 파시즘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카프카 문학세계에 대한 이견(異見)
물론 두 사람 사이에 모든 것이 항상 일치하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문학세계를 둘러싸고 이견을 드러냈던 부분은 그들이 결코 서로 간에 절대적 호응만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님을 보여준다. 즉 브레히트가 보기에 카프카의 작품들은 현대 사회의 부정성을 인식하게 해주는 유용한 이미지들이 들어 있음을 인정하지만, 소외라는 경험으로부터 환각적인 악몽을 만들어내는 서술기법에는 분명하게 반대한다(이러한 해석은 브레히트의 실용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에 벤야민에게 카프카의 의미는 브레히트식의 사회학적 관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벤야민이 보기에 카프카 문학을 여는 열쇠는 무엇보다도 최후의 심판이 어떤 형태로 인간의 역사에 진입하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있기 때문이다. 브레히트가 우화(寓話)의 교육적 효과에 비추어 카프카를 실패한 우화작가로 본 반면, 벤야민은 카프카 산문에서 신비주의자와 우화작가, 제스처의 모호한 언어와 지시적 언어, 공상가와 현자의 이중성을 긍정적으로 발견한다(다만 벤야민은 카프카의 문학세계를 ‘신학적인 질문’만 가지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한다).

관념적인 인간이 아닌 구체적인 인간이 처한 현실의 인식을 목표로 내세운 점에서 둘은 일치했다
숄렘이나 아도르노가 생각했던 것처럼 벤야민은 브레히트와의 관계 속에서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이행한 것도 아니고 양극단을 이론적으로 매개하고자 한 것도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오히려 양극단 사이에서 마치 문지방 위에 서 있듯 긴장을 견뎌내는 데 있었다. 숄렘은 벤야민 사상의 양가성을 “종교와 정치의 뒤죽박죽”이라고 폄하했지만, 벤야민은 자신의 양가적인 사유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의 아포리아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이 아포리아는 수미일관하게 사색하는 철학자의 체계적인 사유를 통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개입하는 사유의 실현 가능성에 더 무게중심이 갈 때, 벤야민은 관념적인 인간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이 처한 현실의 인식을 목표로 내세웠다. 관념적인 부르주아 아동심리학에 맞서 “마르크스주의적이고 변증법적인 인간학”을 기획한 것도, “오늘날 사회의 근본적인 위기 상황에 대한 분명한 의식에 근거를 두고” “계급투쟁의 지반 위에서” 지적 생산의 협업 모델을 만들고자 한 것도 이러한 그의 목표의 일환이었다.

극단적 입장들 중 한 극단에 신적 질서, 구원의 이념 등에 대한 신학적 사유가 놓여 있다면, 다른 한 극단에 인간 고유의 실천에 대한 유물론적 사유가 놓여 있다. 여기서 벤야민은 양극단 사이를 오가는 진폭, 합치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자유를 언급하면서 이를 위험의 순간과 연관시킨다. 학문적 사유체계의 차원에서는 양극단으로 보이고 합치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지만, 위험의 순간에 그것들은 정신의 현존을 위해 동등하게 요구되는 지침들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양극단에 위치한 사상체계로 환원되는 인식이 아니라 양극단 사이의 자장 속에서 그때그때 형성되는 각성과 경험이다. 브레히트와의 관계가 벤야민에게 갖는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후자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발터 벤야민 (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지은이)
독일 출신의 유대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집필하지만 아카데미 세계로 진출하려던 계획은 결국 좌절하고 만다. 같은 해에 알게 된 연인 아샤 라치스 이외에 나중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서 유물론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평, 번역, 방송활동을 펼쳐나간다. 파시즘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유럽에서 스스로를 ‘좌파 아웃사이더’로 이해한 그가 택한 길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에 거리를 두고, 유대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에 바탕을 둔 글쓰기를 통해 현대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었다. 1940년 벤야민은 당시 뉴욕에서 사회연구소(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던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자결한다. 그로써 그가 13년간 매달렸던 프로젝트, 즉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의 구상을 상부구조(문화) 전체에 적용하여 19세기 자본주의와 모더니티의 근원을 고고학적으로 탐구하려던 필생의 저작 『파사젠베르크』(Das Passagen-Werk)는 미완으로 남는다. 스탈린-히틀러의 밀약을 접한 충격에서 쓴 유물론적 역사철학의 결정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그가 남긴 최후의 글이다.

윤미애 (옮긴이)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과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독문학과 사회학을 수학했으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동시대인 발터 벤야민: 가까움과 멂의 역설적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종교적 전회와 벤야민의 매체이론」, 「흔적과 문지방: 벤야민 해석의 두 열쇠」,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고전 읽기과 “기록시스템 1800”」 등이 있으며, 저서로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2020)가 있다. 역서로는 『발터 벤야민』(2001),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공역, 2005),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 베를린 연대기』(2007), 『벤야민과 브레히트』(2015) 등이 있다. 주요 관심분야는 벤야민을 비롯해 매체, 공간, 기억 등이다. 현재 서울대 독일어문화권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 있다.

최성만 (옮긴이)
1956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수학했으며, 1995년 발터 벤야민의 미메시스론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표현인문학』(공저, 2000), 『발터 벤야민, 기억의 정치학』(2014)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예술의 사회학』(공역, 1983), 『전위예술의 새로운 이해』(1986 / 재출간: 『아방가르드의 이론』 2009), 『윤이상의 음악 세계』(공역, 1991), 『한 우정의 역사: 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2002), 『미메시스』(2015), 『삶은 계속된다: 어느 유대인 소녀의 홀로코스트 기억』(2018), 『미메시스와 타자성: 감각의 독특한 역사』(공역, 2019) 등이 있고, 미메시스를 비롯해 독문학과 미학 관련 논문들이 다수 있다. 주요 관심분야는 발터 벤야민, 테오도르 아도르노, 미학, 미메시스론, 매체이론, 문화연구 등이며, 현재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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