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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정으로 가는 길
주명철 지음
출판사 - 여문책
초판일 - 2019-10-31
ISBN - 9791187700326
조회수 : 221

● 목 차

시작하면서

제1부 구국위원회
1 군대 조직과 30만 징집법
2 파리의 상황
3 특별형사법원 또는 혁명법원
4 뒤무리에의 반역
5 구국위원회

제2부 권력투쟁과 공포정
1 권력투쟁과 마라의 재판
2 파리의 청원
3 지롱드파의 몰락
4 반혁명
_ 제1공화국 헌법
_ 앙라제의 공격
_ 연방주의
_ 마라의 죽음
_ 연맹주의가 연방주의를 누르다
5 공포정
_ 8월 10일 기념식과 공화력 1년 헌법 선포
_ 총동원령
_ 반혁명혐의자법
_ 특별형사법원의 쇄신
_ 공화력과 시간의 세속화
_ 혁명정부
6 마리 앙투아네트와 지롱드파의 처형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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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9

9권은 시리즈 초반에 지적했던 일본 의존적 학술용어 번역에 대한 문제점을 좀더 확장해 아직도 관성적으로 쓰이는 중요 용어 몇 가지를 짚어보며 글을 시작한다. '삼부회'가 아니라 '전국신분회', '면죄부'가 아니라 '면벌부', '자유·평등·박애'가 아니라 '자유·평등·우애(또는 형제애)'가 올바른 용어인 것처럼, '사회집단이 공유하는 정신세계'를 뜻하는 '망탈리테'를 무조건 일본 학계의 권위를 믿고 '심성사', '집단심성'으로 옮기는 일에 주명철 교수는 "자존심 상한다"고 토로하며 '집단정신자세(의 역사)'가 정확한 의미라고 밝힌다.

이 시리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성직자 시민헌법'이나 '구국위원회'를 과거 일본인이 원 사료를 면밀히 검토하지도 않고 엉뚱하게 번역한 '성직자 민사기본법'이나 '공안위원회'로 여전히 별 문제의식 없이 갖다 쓰는 행태에 대해서도 주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일본어에 능통한 한국의 역사가가 반자동적으로 가져와서 쓰는 데 그치지 않고 대물림하는 현실, 부끄럽지 않은가?"

한국서양사학계의 거목 주명철 교수 필생의 역작인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5년 만에 완간!

2015년 12월 7일 시리즈의 첫 두 권인 『대서사의 서막』과 『1789』를 선보이며 역사학계와 출판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많은 주목을 받은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이 9~10권 동시 출간으로 5년 만에 완간되었다. 시리즈를 시작할 당시 1년에 두 권씩 꾸준히 펴내겠다는 약속을 충실하게 지킨 셈이다.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행이나 여흥도 마다하고 참고문헌들을 두루 섭렵하며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려온 노학자의 노고가 오롯이 빛나는 순간이다.

80~90년대 이후 장편 대작들의 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독자층 또한 점차 가볍고 얇은 분량의 책을 선호하는 쪽으로 옮겨가면서 의욕 넘치는 저자들이라 해도 선뜻 10부작 같은 장편 집필에 매달리기 어려워진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번 시리즈는 사실 완간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상당 기간 다시 나오기 힘든 역작임이 분명하며, 이 시리즈에 힘입어 다종다양한 국내 혁명사 저작들이 활발하게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세계 모든 혁명의 맏형 격이자 민주주의의 첫 실험장이었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역사적 의미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피를 뿌리며 진행된 프랑스 혁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반면 230년이나 흐른 현재 우리 민주주의의 수준이야말로 가히 세계 제일이라 할 만하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민주시민이 프랑스 혁명의 실패 요인을 밑거름 삼아 세계사에 길이 남을 ‘촛불혁명’을 완수하는 데 매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9권의 주요 내용

9권은 시리즈 초반에 지적했던 일본 의존적 학술용어 번역에 대한 문제점을 좀더 확장해 아직도 관성적으로 쓰이는 중요 용어 몇 가지를 짚어보며 글을 시작한다. ‘삼부회’가 아니라 ‘전국신분회’, ‘면죄부’가 아니라 ‘면벌부’, ‘자유.평등.박애’가 아니라 ‘자유.평등.우애(또는 형제애)’가 올바른 용어인 것처럼, ‘사회집단이 공유하는 정신세계’를 뜻하는 ‘망탈리테’를 무조건 일본 학계의 권위를 믿고 ‘심성사’, ‘집단심성’으로 옮기는 일에 주명철 교수는 “자존심 상한다”고 토로하며 ‘집단정신자세(의 역사)’가 정확한 의미라고 밝힌다. 이 시리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성직자 시민헌법’이나 ‘구국위원회’를 과거 일본인이 원 사료를 면밀히 검토하지도 않고 엉뚱하게 번역한 ‘성직자 민사기본법’이나 ‘공안위원회’로 여전히 별 문제의식 없이 갖다 쓰는 행태에 대해서도 주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일본어에 능통한 한국의 역사가가 반자동적으로 가져와서 쓰는 데 그치지 않고 대물림하는 현실, 부끄럽지 않은가?”

지난여름 전국을 뜨겁게 달군 ‘NO JAPAN’ 운동과 이 시리즈의 완간을 기회로 우리 학계의 일부 집단이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자발적인 예속’에서 과감히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이제 현명한 독자들은 식민지 지식인의 노예근성에 언제라도 “NO!”를 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 본문에서는 1792년 8월 10일에 일어난 제2의 혁명 이후 입법의회로부터 군주정을 정지하고 새 헌법의 제정을 위임받은 국민공회가 공화국을 선포한 뒤 반년 동안 국내외의 반혁명세력과 싸우면서 국방위원회를 좀더 효율적이고 강력한 구국위원회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중심으로 당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측면을 두루 살펴본다.

정치적으로는 지롱드파와 몽타뉴파의 대립이 극에 달한 과정, 나라 안팎에서 일어난 전쟁과 봉기들, ‘인민의 친구’로 불리던 급진적 성향의 마라가 살해당한 사건,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먼저 보낸 뒤 하루하루 온갖 모욕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과 지롱드파를 이끌던 주요 인물 21명의 처형 등이 중심을 이룬다. 전쟁에서 패한 책임을 떠안고 사형을 언도받은 퀴스틴 장군이 다음 날 오전에 단두대에 오른 것 외에도 국내 반란에 가담한 자, 거동이 수상한 자들을 탄압하는 분위기가 1793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렇듯 국가 위기 극복이 급선무였기에 공포정이 국민공회의 의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다각도로 짚어본다. 당시는 단두대에서 스무 명을 처형하는 데 불과 26분밖에 걸리지 않은 시대였다.

경제적으로는 혁명의 도화선이 된 식량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생필품 값은 날로 치솟고 투기와 매점매석 행위도 줄어들지 않자 ‘최고가격제법’을 실시해 민생을 안정시키려 노력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공화국 탄생에 어울리는 ‘공화력’의 제정과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쓰는 도량형의 표준화 작업 등을 중심으로 사회문화적 변화의 큰 흐름도 짚어본다.

9권에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를 직접 들어보자.
“절대군주제의 신성성을 민주주의의 신성성이 대체하는 과정이 혁명이었다. 절대군주가 법의 원천으로 행사하던 신성성을 국민의 대표들이 무너뜨리면서 국민주권이라는 새로운 신성성을 창조하는 과정이 바로 혁명이었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과 비교할 만한 사례를 많이 가졌다. 그 하나가 ‘박정희 신화’이며, 그것이 딸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무너지고 있다. 유신헌법 시절에는 대통령을 비방하면 중벌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대통령에게 온갖 상스러운 욕을 퍼붓고도 무사하다. 우리는 대통령이 절대군주, 아니 폭군이던 시절을 벗어나 국민이 진짜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P. 153~154 마라는 1789년 9월 12일에 일간지 『파리의 신문기자Publiciste parisien』를 내놓았고, 16일부터 『인민의 친구』로 제호를 바꾸었다. 제헌의회에서 납세기준을 적용해서 선거권·피선거권을 주는 제도를 논의할 때, 그는 헌법에 대한 저서에서 모든 시민에게 참정권을 주어야 한다고 했던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유산자와 귀족의 권력 독점을 예견했으며, 더 나아가 고위직 성직자·재산가·왕의 관리·비겁한 국회의원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말라고 주장했다.

P. 192 마라를 혁명법원에 세운 것은 지롱드파의 승리였다. 그들은 의원의 면책특권을 없애고, 중도파의 지원을 얻어 눈엣가시인 인민의 친구를 국민공회에서 잠시 떠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몽타뉴파 의원들은 상당수가 파견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때여서 마라를 지켜주지 못했고, 더 나아가 공화국 헌법을 지롱드파가 마음대로 제정하고 통과시킬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오히려 파리의 민중은 단합해서 마라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지롱드파를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국민공회에 지롱드파 지도자들을 체포하라고 청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시 한번 국민공회를 압박하게 된다. 마라의 재판과 승리는 5월 말과 6월 초의 국민공회 포위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파리 민중을 단합시킨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P. 265 공화국을 수립할 때부터만 치더라도 여덟 달 동안 국민공회를 지배하던 지롱드파는 결국 6월 2일에 몽타뉴파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소불은 지롱드파가 몰락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롱드파는 대외전쟁을 선포하고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며, 루이 16세를 고발하고 사형에 반대했으며, 민중을 동원해서 군주정에 맞섰지만 그들을 정치판에 끼워주지 않았으며, 더욱이 민중의 경제적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경제상태를 악화시켰다. 몽타뉴파는 “인민의 구원이 최상위 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상퀼로트 계층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주도권은 명분뿐 아니라 수의 문제에 달려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파와 좌파가 이기려면 중도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어야 한다.

P. 325 이제부터 북극부터 적도까지(자오선의 4분의 1) 거리를 1,000만으로 나누어 1미터로 정하고, 종래의 길이(투아즈toise, 피에pied, 푸스pouce)를 미터·데시미터·센티미터·밀리미터로 환산하기로 했다. 무게와 부피도 같은 원리로 개정하고 돈의 단위도 마련했다. 새로운 제도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혼란을 피하긴 어렵지만 익숙해질수록 예전의 제도보다 편리하고 게다가 사기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물론 영미권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아무 문제없이 옛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전통사회에서 도량형을 합리화·표준화해야 한다면 야드/온스보다 미터/그램으로 환산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10진법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P. 328 옛 달력에는 365일에 해당하는 성인聖人이 있었는데, 새 달력에서는 날마다 농사와 관련된 동식물이나 농기구 이름을 붙였다. 이 달력은 혁명기에 잠깐 적용되었다가 폐지되었다. 일요일만 해도 52일이었고, 각종 종교 축일과 계절을 타는 성격상 한 달 가까이 또는 그 이상 일할 수 없었지만, 공화력에서 30일과 마지막 5~6일의 휴일을 빼고 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루씩 임금을 받아서 생활하던 노동자는 좋아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공화력은 현실적으로 혁명의 좌우명과 달리 세계화에 한계를 보였다. 자유·평등·우애는 인류가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원리였지만, 나라마다 시차가 있고 게다가 북반구와 남반구의 계절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세속주의적 문화혁명은 겉모양의 변화를 가져왔음에도 종교적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기란 어려웠다.

P. 338 왕비가 되었지만 자식을 두지 못한 채, 온갖 음란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모욕을 당하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길에도 자식과 근친상간의 딱지가 붙었다. 그는 포르노그래피가 상상하던 대로 살다 간 사악한 왕비가 되었다. 상식적으로 믿기 어려운 허구다.
그러나 포르노그래피 또는 금서가 신성성을 무너뜨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논리적인 생각을 물질적으로 담아내는 그릇이 책이기 때문에, 신성성을 부정하는 생각이 먼저 존재했다. 그러므로 언제, 어떻게 신성성이 무너졌는지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판단한 뒤, 금서가 그러한 현실을 어떻게 과장하고 왜곡하는지 살펴야 한다. 금서에서 금기를 어겼다면, 문화적으로 그런 일이 존재했음을 반영했을 뿐이라는 뜻이다.

P. 346 어느 시대에나 가장 극한적인 상황을 보면 그 사회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가늠할 수 있다. 감옥은 오늘날에도 인권의 사각지대다. 혁명기의 감옥에서 자유와 평등과 우애를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사람들의 관계를 보지 않고 단순히 물리적 환경만 생각해도 우리가 상상하는 지옥을 만난다. 일정한 크기에 정치적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급격히 늘어나는 수용자들이 뿜어내는 악취가 무더운 여름에는 더욱 심했다. 메르시에는 한때 변기통 가까이에서 생활했다. 겨울의 추위는 또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가. (중략) 그런데 1792년 9월의 학살사건이 얼마나 끔찍한지 아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곳에서 누구누구를 찾을 때마다 철렁거리는 가슴, 게다가 그렇게 불려나간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자들의 두려움을 상상해보자. 그들의 목숨을 쥐락펴락하던 로베스피에르 일파가 몰락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쉽게 풀려나지 못해 더욱 절망했을 메르시에와 동료 의원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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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정도는 교과서에서 배웠다고 생각하는 독자에게 주 교수는 우리 눈으로 들여다본 혁명의 교훈을 들려준다. ‘정변’과 ‘혁명’은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으로 한평생 추구한 학문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 우선 나온 두 권 책에 절절하다. - 중앙일보

이 연속기획물을 단순히 ‘교양역사도서’로 분류하기에는 그 내용이 넓고도 깊다. 정치외교사, 사회경제사, 대중문화사, 일상생활사, 사상-미디어역사 등 ‘총체적인 혁명사’를 겨냥하는 것처럼 종횡무진하고 종합적이다. 주명철의 ‘개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첫째, 그가 현역으로 활약하던 30여 년 동안 개미처럼 축적해둔 탄탄하고도 치밀한 연구?번역물들이 밑거름이 되어 ‘색인도 없는 전문 역사서’에 도전하는 개성을 훈장처럼 부여했다. 대충 따져보니까, 주명철은 현재까지 앙시앵레짐-프랑스 혁명과 연관된 책들만 계산해도 단독 저서 9편, 단독 번역서 10권 등 총 20권을 넘는 업적을 남겼다.
둘째, 주명철은 프랑스 유학생 출신으로서는 드물게 영미학계의 연구 경향을 개방적으로 소화하여 프랑스 혁명에 대한 ‘개성적인’ 해석을 획득했으며, 프랑스 혁명에 대한 입체적인 관점에 도달했다.
셋째, 주명철의 학문적인 개성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지점에서 꽃핀다. 말하자면 자유?평등?우애로 요약되는 프랑스 혁명의 ‘지나간 미래’가 지난 정부에서 삭제?배반?오염되는 슬픈 현실을 직면하면서 역사가로서 자신이 갈고닦았던 ‘과업의 정점’에 우뚝 선 것이다.
‘업계’ 소식에 과문한 서평자가 알기로는, 주명철의 10부작은 국내 연구자가 시도하는 ‘최초의 본격적이며 주체적인’ 프랑스 혁명에 대한 비평적 서술이다. 제3자의 시각으로 판단하자면, 프랑스 혁명사를 전공한 동료들과 후배 학자들이 극복하기에 노력해야 할 빛나고 ‘골치 아픈’ 성과이며 과제가 될 것이다. - 육영수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10권이라니, 너무 길지 않은가. 첫 두 권을 보니 재미있다. 세밀한 묘사와 서술에다 가끔 슬그머니 유머를 풀어놓아 지루한 줄 모르겠다.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 마치 대하소설이나 스펙터클 영화를 보는 듯하다. - 한국일보

저자는 책의 목적이 “높은 이상을 내걸고 시작한 프랑스 혁명도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과정이었고, 그렇게 해서 겨우 틀을 갖추고 조금씩 실현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것”이라고 적었다. - 경향신문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들이 흘린 피가 역사의 추진력으로 작동했지만 새로운 체제는 폭력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민주주의는 결국 ‘설득과 합의’겠지요.” 주 교수는 “프랑스 혁명은 헌정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입법가들이 의회 내에서 서로를 설득하는 의회활동을 중심으로 혁명사를 짚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5·16세력은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을 염두에 두고 자신들이 한 쿠데타를 그토록 혁명이라 말하고 싶어했지 싶어요. 그러나 산업화했다고 민주화한 것 아니죠. 근대화에서 (산업화보다) 민주화 가치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프랑스 혁명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내 의무라 생각했죠.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프랑스 혁명이라 할 수 있어요.” - 한겨레 (추천)

주명철 (지은이)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에서 2015년 8월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공부한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애쓰고, 역사교사가 될 학생들에게도 이른바 ‘꼰대’가 되어 우리말을 정확하게 쓰라고 닦달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말해도 듣는 사람이 들을 생각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사실만 계속 확인했지만, 되도록 그런 말만 하라고 나라에서 주는 월급의 무게를 이겨내고자 비교적 성실하게 살다가 정년퇴임했다. 지나온 과정을 돌이켜볼 때, 내가 만난 학생들은 반드시 가르쳐야 알아듣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되 섣불리 좋다거나 싫다고 판단하지 않고 당대의 공동선에 비추어 판단하려고 애쓰리라 믿으며 안심한다. 그러나 늘 사실과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개인의 경험을 되살려 타인의 경험을 재체험하고 공감하는 교육자가 되라고 분명히 말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내가 퇴임한 후에 급변한 정치 상황과 그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수많은 매체가 날마다 ‘팩트’라고 전한다. 과연 진실성을 믿을 만한 ‘사실’이 몇 개나 될까? 따분하고 화나는 현실에 마음공부를 하자고 결심하고 불가의 고승들이 모든 물질과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본받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판단은 역사적 판단’이라는 점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현실세계에서는 물질과 정신이 인연에 따라 얽히고설켜 있지만, 역사적 판단으로 대상의 본질을 이해하고 곁가지를 하나하나 떼어내는 작업은 세상의 본모습에 다가서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않는다. 게다가 글쓰기는 몸이 기억하는 직업병이다. 그래서 ‘이판사판역사판’을 마음에 새기면서, 진실·사실·팩트가 뒤섞이고 과거·현재·미래가 뒤얽힌 글을 자유롭게 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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