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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발레리 한센 지음 , 이순호옮김
출판사 - 민음사
초판일 - 2022-04-01
ISBN - 9788937442711
조회수 : 404

● 목 차

저자의 말
프롤로그

1장 1000년의 세계
2장 가자 서쪽으로, 젊은 바이킹들이여
3장 1000년의 팬아메리칸 하이웨이
4장 유럽의 노예들
5장 세계 최고의 부자
6장 둘로 갈라진 중앙아시아
7장 놀라운 항해
8장 지상에서 가장 세계화된 지역

에필로그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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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장의 주
삽화와 사진의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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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원제 : The Year 1000

지난 30년간 중국사와 세계사, 문명 교류사를 연구해 온 저명한 역사가 발레리 한센은 같은 시기에 일어났지만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에서 공통된 흐름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 팽창의 배후에는 기원후 1000년 무렵에 일어난 최초의 세계화가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화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 기원을 추적한다. 또한 오늘날의 세계가 1000년의 세계로부터 탄생했다는 대담하고 획기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1000년 무렵, 두려움 없이 미지의 세계로 떠나 탐험과 교역에 나섰던 이들을 통해 마침내 위대한 문명들이 연결되었다. 그렇게 발견되고 개척된 새로운 통로들은 세계 각지를 하나로 묶어 주었다. 책은 최초의 세계화가 촉발한 갈등과 협력을 교차해 보여 준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화는 승자와 패자를 함께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세계가 근본적으로 바뀐 1000년에도 그 점은 다르지 않았고, 그 영향은 지금도 감지되고 있다.

기원후 1000년, 최초의 세계화가 시작되다

우리는 유럽인들이 희망봉을 돌고 아메리카로 향한 15세기 후반에 비로소 세계가 연결되었다고 믿는다. 또한 세계화를 20세기에 시작된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난 30년간 중국사와 세계사, 문명 교류사를 연구해 온 저명한 역사가 발레리 한센(예일 대학 교수)은 요나라와 송나라가 맺은 전연의 맹, 카라한 왕조의 호탄 정복, 바이킹의 아메리카 상륙 등 같은 시기에 일어났지만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에서 공통된 흐름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 팽창의 배후에는 기원후 1000년 무렵에 일어난 최초의 세계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염병의 대유행과 전쟁으로 이제 세계화는 끝났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위기일까? 대관절 세계화란 무엇일까? 이러한 문제 제기 속에서 이번에 출간되는 『1000년』은 세계화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 기원을 추적한다. 또한 오늘날의 세계가 1000년의 세계로부터 탄생했다는 대담하고 획기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1000년의 세계화와 오늘날의 세계화

발레리 한센이 보여 주는 1000년 무렵의 삶은 21세기의 삶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오늘날 종교 신자의 92퍼센트는 1000년 무렵에 확립된 4대 종교(이슬람, 기독교, 힌두교, 불교) 중 한 가지를 믿는다. 세계화가 기술의 확산, 전통의 상실을 불러왔다는 점도 같다. 카이로와 콘스탄티노플, 광저우에서는 분노한 군중이 최초의 반(反)세계화 폭동을 일으켜 외국인들을 공격했다.
우리는 1000년의 세계화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저자는 생소한 환경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다짜고짜 현지인을 살해한 바이킹보다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참을성 있게 우호 관계를 쌓은 사람들이 미지의 먼 땅에서도 성공했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소함에 개방적인 사람들이 새것이라면 무조건 손사래를 친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어 낸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1000년 무렵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1000년』이 던지는 질문들

기존의 역사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를 보완하고 구성해 내는 것으로 잘 알려진 발레리 한센은 『1000년』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바이킹은 어떻게 500년이나 앞서 신대륙에 도착했을까? 가톨릭, 유대교, 이슬람, 정교회…… 러시아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거란 황제가 아프가니스탄의 술탄에게 선물을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마야 신전의 벽화에 묘사된 금발 포로들은 누구일까? 말리의 만사 무사를 세계 최고의 부자로 만든 비밀은?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질문들이 이 책 『1000년』에서는 연결된다. 1000년의 세계화는 한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들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했다. 오늘날의 세계화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과 포인트를 몇 가지 짚자면 다음과 같다.

- 1000년 전에 결정된 신장 위구르와 러시아의 운명
10세기에 이르러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부족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카라한 왕조도 그중 하나였다. 개종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종교적 열정이 넘쳤던 카라한 왕조는 1006년에 오랜 경쟁자였던 동쪽의 불교 왕국 호탄을 정복했다. 이 사건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신장 위구르 지역이 이슬람화하는 출발점이었다.
같은 시기에 동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루스인들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1세는 전통 신앙을 대신할 적절한 종교를 찾고 있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네 가지 종교가 후보군에 올랐다. 유대교, 이슬람, 로마가톨릭, 동방정교회였다.
블라디미르 1세는 정교회를 선택했다. 동시대인들에게 이 선택은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루스인들의 개종은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였다. 오늘날 유럽이 정교회 영역과 가톨릭 영역으로 나뉜 일은 그 결과 중 하나다.

- 거란 황제가 아프가니스탄의 술탄에게 선물을 보내다
1026년, 요나라 사절이 선물을 들고 가즈나 왕조의 궁정에 도착했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던 가즈나 왕조도 튀르크계 이슬람 국가였다. 우호 관계를 수립하자는 요나라 황제의 요청에 가즈나 왕조의 군주인 술탄 마흐무드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두 나라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야말로 상대방의 속임수로부터 서로를 지킬 수 있는 보호막입니다. 가즈나는 요나라와 밀접하게 관계 맺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귀하가 이슬람교를 받아들일 때까지는.”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고 솔직한 태도였다. 종교가 1000년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이라는 인식도 보인다. 요나라를 세운 거란족은 불교도들이었다. 거란족과 튀르크족은 유목 민족이라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종교가 이들의 정체성을 구분했다.
1000년 무렵, 전 세계의 왕국들은 앞다투어 주요 종교로 개종했다. 이제 사람들은 기존의 지역이나 혈통 외에 새로운 정체성을 보유하게 되었다. 바로 종교다. 가즈나 왕조의 마흐무드가 그랬듯이 사람들은 자기를 종교 블록의 일원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계화의 핵심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 발트해의 호박이 요나라 공주의 무덤에서 나오다
1005년, 요나라와 송나라의 협상단이 중국 황허강(황하) 유역의 도시 전연에서 만났다. 전연 부근까지 진출한 요나라 대군이 바로 남쪽에 있는 송의 수도 카이펑(개봉)을 위협하는 상황에서였다. 협상 결과, 송나라는 매년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냥을 요나라에 보내는 조건으로 평화를 얻었다.
요나라 황제의 손녀였던 진국공주가 1018년에 사망했을 때, 온갖 화려한 물건이 공주와 함께 묻혔다. 유리 용기와 황동 그릇은 시리아와 이집트, 이란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수정으로 만든 소품은 수마트라와 인도에서 온 것들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호박(琥珀)으로 만든 장식품들이었다. 재료인 호박 원석이 ‘슬라브인의 바다’, 즉 발트해에서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진국공주의 묘에서 나온 부장품은 전연의 맹 이후에 요나라가 누린 번영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1000년의 세계가 얼마나 세계화되어 있었는지도 보여 준다. 북유럽의 발트해와 중국 북쪽의 요나라 궁정 사이의 거리는 무려 6500킬로미터가 넘었다. 호박 유통로는 1000년의 세계에서 가장 긴 육로 중 하나였다.

- 중국의 도기가 이슬람 도공들을 위협하다
1000년 무렵에 상인들의 주요 고객은 서쪽이 아닌 동쪽에 있었다. 특히 송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세계화된 지역’이었다. 요나라에 바치는 적지 않은 세폐조차도 송나라의 풍요로움에 아무런 그림자를 드리우지 못했다. 국제무역항인 광저우(광주)와 취안저우(천주)에서는 전 세계에서 온 상인들이 온갖 상품을 거래했다. 일본의 고전소설 『겐지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이 피우는 향도 이렇게 들어온 수입품이었다.
최초의 세계화는 각지에서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하던 동남아시아의 토착민들은 이제 중국 고객들을 위해 향신료를 재배했다. 중국인들도 상품을 생산했다. 12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이르면 푸젠성(복건성) 인구의 7.5퍼센트가량이 수출용 도자기 생산업에 종사할 정도였다.
광저우에서 페르시아만의 바스라 항구까지 이어지는 해로는 그 길이가 약 1만 2700킬로미터에 달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가로지를 때 이동한 약 7000킬로미터의 두 배에 가까운 거리였다. 무슬림 소비자를 겨냥한 중국 도기에는 아랍 문자를 흉내 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슬람 도공들은 진주광택을 내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해 응수했지만, 그래도 중국 도기를 당해 내지 못했다.

- 지리상의 발견 이전의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메리카는 남북 간 교류를 가로막는 자연환경으로 인해 각 문명이 고립되어 있었다고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1000년 무렵의 아메리카에는 이미 남북을 가로지르는 독자적인 교역망이 확립되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은 마야인들에게서 나타났다. 유카탄반도의 마야인들은 북쪽으로는 미국의 미시시피강 계곡까지, 남쪽으로는 콜롬비아까지 갔다. 뉴멕시코주의 차코 캐니언에서 마야인들은 금강앵무와 초콜릿을 수출하고, 터키석을 수입했다.
아프리카 또한 오래전부터 그들만의 교역망을 만들어 놓은 터였다. 그 교역망에서 가장 매력적인 상품은 금과 노예였다. 가나는 금을 찾아 사막을 건너온 상인들을 상대로 중계무역을 하며 번영했다. 훗날 너무 많은 금을 풀어 카이로의 금 시세를 떨어뜨렸다는 만사 무사의 부가 어디서 왔는지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대항해시대 이후에 아프리카를 찾아온 유럽인들은 새로운 교역망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미 번성하고 있던 금 무역과 노예무역에 참여했을 뿐이었다.

- 바이킹이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에 도착하다
바이킹(노르드인)들이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에 도착했다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항해와 달리 항구적인 영향을 남기지 못했기에 해프닝으로 취급되곤 한다. 정말 우발적이고 의미 없는 사건이었을까?
1000년 무렵에 노르드인들은 ‘빈란드’를 총 세 차례 탐험했다. 그들의 뛰어난 항해술 앞에서 대서양은 큰 장애가 되지 못했다. 가장 큰 위협은 현지인들에게서 왔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활과 화살뿐 아니라 투석기까지 동원해 노르드인들을 공격했다. 격렬한 저항에 못 이긴 노르드인들은 정착지를 버리고 철수해야만 했다.
약 500년 후의 콜럼버스는 성공했는데, 노르드인들은 어째서 실패했을까? 그들은 북해와 지중해를 누비며 연안을 약탈하던 사람들의 후예였다. 그러나 현지인들도 노르드인들 못지않게 강하고 사나웠다. 노르드인들에게는 철제 무기가 있었지만, 현지인들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술의 차이가 거의 없는 엇비슷한 상황이라면 세계화가 어떻게 전개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다.

우리는 1000년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다

1000년 무렵, 두려움 없이 미지의 세계로 떠나 탐험과 교역에 나섰던 이들을 통해 마침내 위대한 문명들이 연결되었다. 그렇게 발견되고 개척된 새로운 통로들은 세계 각지를 하나로 묶어 주었다. 상인과 순례자들은 인도양을 건너 동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인도, 중국을 오가는 항해를 하고 있었다.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이 시작되려면 수백 년이 남아 있었지만, 노예들은 이미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아프리카에서 바그다드와 콘스탄티노플, 카이로로 행진하고 있었다. 예수 탄생 이후 첫 번째 밀레니엄이 끝나 가던 무렵에 세계화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이 책은 최초의 세계화가 촉발한 갈등과 협력을 교차해 보여 준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화는 승자와 패자를 함께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세계가 근본적으로 바뀐 1000년에도 그 점은 다르지 않았고, 그 영향은 지금도 감지되고 있다. 1000년이 남긴 장기적 유산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P. 34 대다수 사람은 국왕이나 교황의 치세로 연도를 헤아렸다. 1000년을 교황 실베스테르 2세 치세 2년으로 부르는 식이었다. 당시에는 그리스도가 1000년에 재림하리라고 믿는 기독교도도 거의 없었다.

P. 88~89 노르드인들이 북아메리카의 정착지를 버리기로 한 것은 현대적인 문제, 즉 무역 불균형 때문이었다. 물론 빈란드에도 목재와 희귀 모피처럼 노르드인들에게 유용한 물품이 있었다. 그리고 화살촉처럼 노르드인들이 신기해할 만한 물건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유럽 본토가 빈란드에 제공해 줄 수 있는 물품의 가치가 더 높았다.

P. 104 이 살갗이 희고 금발인 희생자들은 누구였을까? 혹시 마야인들에게 사로잡힌 노르드인들이 아니었을까?

P. 159 1000년 무렵에는 약탈로 살아가던 전사 집단 우두머리들의 세계가 서서히 세금 징수로 영위되는 군주국들로 대체되었다. 왕은 자기를 위해 싸워 준 부하들에게 약탈물이 아닌 땅으로 보상했다. 900년대 초에 해적으로 처음 프랑스에 들어왔던 사람들의 자손인 정복왕 윌리엄만 해도 토착민에게서 보호금을 받던 처지에서 시작해 잉글랜드의 노르만 왕이 되었다.


P. 216 카이로의 무슬림 주민들은 종교적 정체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파티마 왕조와는 결이 다른 무슬림 국가들을 자기들과 동일시했다. 좁은 지역에 갇혀 있던 정체성이 세계화에 힘입어 넓은 지역으로 확산된 것이었다.

P. 271 1040년에 교토의 궁전에서 두 천문학자 간에 다툼이 벌어졌을 때도 섭정 요리미치는 가장 최근의 중국력을 점검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는 중국력 책자를 구하기 위해 인쇄술의 중심지였던 고려로 사절을 파견했다. 1052년에 말세가 온다는 믿음은 불교권의 여러 나라(고려, 송나라, 요나라, 일본)가 공유하고 있었다.

P. 290 동남아시아 지배자들이 보편 종교로 개종한 것도 1000년 무렵 다른 곳의 지배자들과 다를 바 없이 자기들의 힘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였다. 보편 종교 중에서는 불교와 힌두교가 군주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지배자들은 특히 차크라바르틴이라는 이상적 시주(施主) 군주상을 제시한 불교를 마음에 들어 했다.

P. 343 한 부유한 남자는 침향나무 재료만 써서 찜질방 세 개를 짓기도 했다. 그는 찜질방에 놓을 장의자도 특별히 맞췄다.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어 밑에서 향을 피우면 방 전체로 향이 퍼져 나가게 만든 의자였다. 그는 같은 기술을 이용해 삼나무 배도 만들었다. 송나라 때의 중국인들은 참으로 편안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P. 368 콜럼버스와 다 가마의 항해가, 그리고 그 뒤에 유럽인들의 정착이 없었더라도 교역의 범위는 더 넓어졌을 것이다. 한 지역에서 더 많은 물건이 만들어지면 다른 곳에는 그것을 찾는 소비자들이 있다는 것을 상인들은 알아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아프로-유라시아 교역로와 아메리카 대륙의 교역로가 다시 연결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중국의 시장, 바그다드의 부, 마야 신전 벽화 속 금발의 사람들, 러시아의 강을 가로지르는 바이킹 사이에 존재하는 낯선 연결 고리를 통해 진정한 세계사를 보여 준다. - 마이클 파이

바이킹의 배에서 낙타 카라반에 이르기까지, 발레리 한센은 우리를 1000년 전의 유익하고 흥미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 이언 모리스 (스탠퍼드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저자)
1000년 전의 세계를 아우르는 퍼즐 조각을 한데 모아 놓은 멋진 책. - 피터 프랭코판

오래된 화두인 ‘세계화’가 15세기에 이른바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유럽인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저자의 시각이 반갑다. 기원후 1000년 무렵, 세계화의 주도권은 어느 특정한 지역이나 나라, 민족의 것이 아니었다. 1000년 전의 세계사를 다룬 걸출한 백과사전과도 같은 책. -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인문학과성서를사랑하는모임’ 대표, 「대운하와 중국상인」 저자)

오늘 우리는 미국과 러시아, EU와 러시아, 미국과 중국의 대립을 여실히 목도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은가? 지혜는 과거를 통해 구할 수 있는 법. 세계적 역사학자 발레리 한센이 발견한 기원후 1000년에 관한 이야기를 지금 당장 읽어 보라. -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발레리 한센 (Valerie Hansen) (지은이)
예일대학교에서 중국사와 세계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녀의 연구는 역사학에서 주로 다루던 유물과 기록을 벗어나 보통 사람들의 삶의 경험을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래서 사용하고 버린 문서 휴지나 이면지 등 1차 자료를 폭넓게 활용하며, 기존 역사학이 간과한 소소한 일상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데 특히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저서로는 열린 제국(The Open Empire: A History of China to 1600), 생활 속의 협상(Negotiating Daily Life in Traditional China: How Ordinary People Used Contracts, 600-1400), 중국 중세 신들의 변화(Changing Gods in Medieval China, 1127-1276), 세계사 속의 여행(Voyages in World History, with KennethR. Curtis) 등이 있다.
http://history.yale.edu/people/valerie-hansen

이순호 (옮긴이)
홍익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뉴욕 주립 대학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타타르로 가는 길』, 『살라딘』, 『문신, 금지된 패션의 역사』,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가상역사 21세기』, 『살라미스 해전』, 『발칸의 역사』, 『인류의 미래사』, 『페르시아 전쟁』, 『제국의 최전선』, 『불로만 밝혀지는 세상』,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바다의 제국들』, 『인류의 역사』, 『비잔티움』, 『로마제국과 유럽의 탄생』,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 『위대한 바다』, 『발칸의 역사』, 『현대 중동의 탄생』, 『이슬람제국의 탄생』, 『지리의 복수』,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하버드–C.H.베크 세계사 1870~1945』(공역), 『코드걸스』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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