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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전집 2
오윤 지음
출판사 - 현실문화
초판일 - 2010-06-30
ISBN - 978899221491904600
조회수 : 434

● 목 차

간행사 :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작가, 오윤을 위하여 = 6
서문 :《오윤 전집 2 : 칼을 쥔 도깨비》에 부쳐 = 11

1 판화 = 17
2 판재 = 209
3 유화 = 235
4 조소 = 255
5 책표지 = 289
6 동래학춤 무보 = 301
7 벽돌공장 메모 = 311

연보 =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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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간략한 책 소개
현대미술사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빼어나게 형상화한 화가로, 1980년대 민중미술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판화가 오윤의 전집이다. 오윤의 삶과 예술을 재발견하고 있는 이번 전집을 통해 사람과 생명을 소중히 여겼던 친근한 이웃으로, 삶의 서정과 세계의 본질을 주술적인 붓과 칼로 형상화한 화가 오윤을 만나게 된다.

전집 제1권 《세상 사람, 동네 사람》에는 오윤의 글과 지인들의 생생한 이야기, 관련 비평 등이 담겼다. 특히, 오윤의 글 중 <아무것도 없는 빈 그릇>, <행복의 모습>은 당시의 도록을 어렵게 찾아내 발굴한 귀중한 텍스트이다. 인터뷰와 좌담 형식으로 수록된 지인들의 이야기에서는 오윤의 재담가적인 면모와 풍류를 즐기는 천성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판화 <노동의 새벽>의 모델이었던 후식이와 얽힌 이야기들에서부터 간경화 악화로 요양을 간 곳이 술도가 옆집이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오윤 생애의 숨겨진 일화들이 실려 있다.

전집 제2권 《칼을 쥔 도깨비》에는 판화, 조소, 회화 작품들과 함께 판화를 찍는 원판인 판재, 동래학춤 무보, 1970년대 그가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던 벽돌공장에 대한 메모들을 담았다. 특히, ‘동래학춤 무보’는 오윤 미학의 거대한 뿌리인 춤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다.

전집 제3권 《3115, 날것 그대로의 오윤》은 오윤이 남긴 드로잉 3,115점 중에서 700여 점을 추려서 엮은 것이다. 이 드로잉들은 20주기 전시회 때에 극히 일부가 소개되어 그 전모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던 작품들로 강렬한 정서적 울림을 주고 있다. 오윤의 예술적 폭과 깊이를 또 다른 시각에서 조명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 출판사 서평

사람과 생명을 소중히 여겼던 친근한 이웃,
삶의 서정과 세계의 본질을 주술적인 붓과 칼로 형상화한 화가
오윤의 삶과 예술의 재발견

“이제 나는 유신론자가 되었다.”
1984년 겨울, 간경화 증세의 악화로 진도에서 요양 중이던 오윤은 그곳에 찾아온 후배 허진무를 만나자 마자 대뜸 이 말을 꺼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5년 2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작품 활동을 재개하면서 실로 엄청난 양의 작품을 선보였다. 죽기 직전까지 주어진 불과 1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말이다. <칼노래>, <춘무인 추무의>, <아라리요>, <징>, <형님>, <산팔자 물팔자>, <도깨비> 그리고 <춤> 연작과 <바람 부는 곳> 연작 등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다. 이 마지막 시기에 피워 올린 불꽃같은 예술혼 때문인지 그는 신화화되어 있다. 신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그 내면의 많은 이야기들을 박제화시켜 생명을 박탈한다. 오윤 예술에 대한 평가는 이제껏 그 신화에 갇혀버렸다. 이번 전집은 그러한 오윤을 재발견하여 다시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함께 살았던 이웃집의 무당
먼저 오윤에 대해 간단한 소개부터 하고 넘어가자. 만 40세에 요절한 판화가 오윤은 현대미술사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빼어나게 형상화한 화가로, 1980년대 민중미술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작가이다. 그는 1980년대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자기 형식을 제시하고 전통과 현실에 대해 남다른 접근을 했던 화가였다.
오윤은 관념적으로 민중을 그리려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항상 낮은 데로 향하고 있었고 그 스스로가 민중이었다. 그는 ‘민중’이니 ‘의식화’니 당시 이른바 ‘운동권’ 지식인들이 즐겨 쓰는 언어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는 ‘운동가요’를 즐겨 부르는 것도 못마땅해 했다. 그는 그런 지식인들이 민중이라 일컫는 보통 사람들의 애창곡을 유난히 좋아했다. 간드러지게 넘기는 트로트 노래에 맞춰 고개를 살랑살랑 젓는 품은 늘 주변 사람을 흥겹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동네의 노동자, 노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격의 없이 지냈다. 그에게 그들은 의식화의 ‘대상’이 아니었다. 형님, 아우 하는 사이였으며, 스스럼없이 지내는 진정한 이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확실히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 그의 예술은 무슨 척하면서 나대지 않는다. 거기에서 교훈적이고 권위적인 그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다. 그보다는 포용하는 마음 씀씀이, 움찔하게 하는 생동감, 정신을 깨어나게 하는 듯한 날카로운 통찰력 등이 느껴진다. 그는 함께 나누고 공감하면서 즐겁게 볼 수 있는 공동체적 감각을 타고난 듯이 술술 풀어놓고 있다. 실제로 오윤은 사람이 살고자 하는 것과 똑같이 예술을 하려고 했다. 그는 역사 밖에서 역사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예술을 예술 밖에서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에게 삶은 예술이어야 하고 역사이어야 하고 지식이어야 했다.
오윤은 전통문화에 대해서도 관념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10대 때부터 전국을 여행하면서 각지의 풍물과 문화를 몸으로 느끼고 즐겼던 그는 전통을, 계승해야 하는 무언가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에게 전통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였다. 춤이든 굿이든 그것은 삶의 한 표현이었고, 사람답게 살아보기 위한 놀이이자 의식이었다.
“예술가는 무당이 되어야 한다.”
말년에 그가 자주 했다는 이 말은, 예술가는 영적인 세계와 사람 세계를 이어주는 영매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전통문화와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를 생각해 보았을 때, 또 다른 차원의 의미가 다가온다. 무당은 사람들에게 삶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웃집에 사는 친근한 무당이었던 오윤은 그렇게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소박한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에서 서정적인 인간미와 역동적인 에너지가 동시에 느껴지는 이유는 그런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숨어 있던 오윤의 글 발굴,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과 비평 수록
오윤을 재발견하는 작업은 먼저 그가 살아생전에 남긴 모든 자료를 발굴하는 것에서부터 진행됐다. 그의 미술 작품들은 물론 노트, 스케치북, 도록, 그가 참여했던 현실 동인 및 현실과 발언 관련 문헌 등을 수집했다. 문제는 이것들을 어떻게 재구성하여 의미의 그물을 짜는가였다.

그중 텍스로만 구성한 전집 제1권에는 오윤의 글과 그의 지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특히 오윤의 글 중 <아무것도 없는 빈 그릇>, <행복의 모습>은 당시의 도록을 어렵게 찾아내 발굴한 귀중한 텍스트이다. 이애주·하종오·채희완 등과 나눈 좌담 <오늘의 우리에게 굿은 무엇인가>는 그의 대표적인 미학적 에세이 <미술적 상상력과 세계의 확대>와 쌍으로 읽으면 좋을 텍스트인데, 진도 요양 후의 ‘유신론자 선언’ 즉, 1년 반 동안의 짧은 기간에 쏟아져 나오는 후기 대표작들의 탄생 배경을 캐낼 중요한 단서들이 즐비하다.
오윤의 삶과 예술세계에 대한 지인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인터뷰와 좌담 등의 형식을 통해 소개된다. 그의 재담가적인 면모와 풍류를 즐기는 천성이 글 사이사이에 그대로 드러난다. 쌀과 텐트 대용으로 쓸 김장용 비닐만 들고서 지리산을 여행한 이야기, 판화 <노동의 새벽>의 모델이었던 후식이에 얽힌 처연한 일화들, 간경화 악화로 요양을 간 곳이 술도가 옆집이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애잔하고 따뜻한 정서가 물씬 풍겨 나온다.
오윤과 동시대를 살았던 비평가들과 후세대 비평가들의 평론과 에세이도 함께 실어 제1권의 무게감을 더했다. 성완경, 유홍준 등의 평론은 오윤에 대한 비평 중에서 이른바 ‘고전’이다. 조인수, 이성민, 김종길 등의 평론에서는 후세대 비평가들의 보다 진전된 논의와 참신한 이론적 결이 느껴진다.

춤, 오윤 미학의 거대한 뿌리
전집 제2권에는 판화, 조소, 회화 작품들과 함께 판화를 찍는 원판인 판재, 동래학춤 무보, 1970년대 그가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던 벽돌공장에 대한 메모들을 담았다. 특히, ‘동래학춤 무보’는 오윤 미학의 거대한 뿌리인 춤에 대한 귀중한 자료인데, 오윤이 그렸다는 것에 대한 확증이 있지 않아서 일부만 수록했다.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집에 싣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오윤 예술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춤이다. 그는 춤에 대해 엄청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단지 보는 것만이 아니었다. 몸으로 즐겼다. <춤> 연작은 물론, <형님>, <춘무인 추무의>, <칼노래> 등 말년에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춤의 도상’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중요무형문화재 이애주 서울대 교수와 탈춤꾼이자 무용평론가 채희완 교수 등과의 돈독한 우정도 춤으로 비롯된 것이었다.
춤에 대한 관심이 작품에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그의 학창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입체주의적인 영향을 받은 듯한 <탈춤> 연작(유화, 1970?)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인물과 배경을 재구성한 것인데, 후기 작품에서 보이는 자연스럽고 서정적인 선과는 대조적이다. 초기의 드로잉에서도 춤에 대한 상당히 많은 변용들이 목격되는데, 이는 ‘동래학춤’을 전승해온 그의 외가의 내력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실제로 그의 외조부 김기조는 동래야류의 명무로 이름이 높았고, 외삼촌 김희영이 이를 물려받았다. 또한 지금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학춤을 잘 추기로 유명했던 이종사촌 이현경은 오윤에게서 춤사위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논란거리인 ‘동래학춤 무보’가 등장한다.
이현경은 이것을 그린 자가 바로 오윤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린 이에 대한 다소의 논란이 불가피하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동래학춤 무보’를 작성한 사람은 동래야류 탈 제작 기능보유자인 고(故) 천재동 선생(1915~2007)이다. 그러나 1972년 당시 고 서국영 부산대 교수(1925~2006)가 동래학춤에 관한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함께 제출한 무보와 이현경이 소장 중인 무보는 서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내용은 대동소이하지만 앞의 것은 철필로, 뒤의 것은 붓으로 그려졌다는 점이다(전집 제1권, 이흥재·김익구·채희완의 좌담 <고향 친구, 오윤> 참조). 짐작컨대, 철필로 그려진 것과 붓으로 그린 것 모두 천재동 선생이 그린 원화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오윤이 직접 붓으로 필사를 해서 학춤을 추던 이종사촌에게 전해주었다는 일화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춤에 대해 깊은 식견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미학의 뿌리가 춤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방대한 드로잉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정서적 울림
특히 이번 전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방대한 분량의 드로잉이 실린 제3권이다. 이는 20주기 전시회 때에 극히 일부가 소개되어 그 전모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던 작품들이다. 총 3,115점 중에서 700여 점을 추려 한 권으로 묶은 것으로 완성된 작품에서 느낄 수 없었던 날것 그대로의 오윤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독자들이 드로잉의 세부적인 표현과 미묘한 뉘앙스에 충분히 주목해서 감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각각의 작품들을 한 페이지에 하나씩 수록하였다. 오윤에 대한 평가는 주로 판화와 회화, 조소 등 완성된 작품을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져왔기에 이 드로잉 모음집은 오윤의 예술적 폭과 깊이를 또 다른 시각에서 조명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윤의 드로잉에서는 보는 이를 숙연하게 하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강렬한 정서적 울림으로 나타나는 그 느낌은 우리가 삶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할 때, 미처 자각하지 못한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을 때, 혹은 일체감을 느낄 때의 감응과 같은 것이다. 삶에 대한 가식 없는 그의 태도는 그를 둘러싼 에피소드에서도 익히 드러나고 있지만, 그의 드로잉에서는 훨씬 더 가시적이고 촉각적으로 풍부하게 배어 있다.
독자들은 이 드로잉 모음집에서 오윤의 뇌리에서 평생 떠나지 않았던 생각의 단초, 고민, 문제의식들, 그리고 그것들을 풀어가는 치열한 과정이 그의 생을 따라 오롯이 드러나는 장면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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