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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길 1988년 11월 제33호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지음
출판사 -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초판일 - 1988-11-23
도서소장처 - 노동자의 책
조회수 : 709

책 소개

11월 12일 밤 연세대는 노동자의 대열과 함성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각 지역의 선봉대들이 속속 도착하고 ‘전태일 노동자상 시상식’ ‘전태일 정신 계승 및 노동법개정 웅변대회’에 이르러서는 이미 그 수가 3~4천 명에 이르렀다. 거제의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입장과 더불어 시작된 웅변대회에서는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노동자 스스로 단결하여 노동법 개정, 더 나아가 민주쟁취를 위해 싸워나가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뒤이어 선봉대 결단식과 화형식이 끝날 무렵은 이내 새벽 3시가 넘었는데 그 때 마산·창원지역 본대 800여명의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올라왔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전국의 노동자들이 투쟁의 열기를 모아오고 있는 것이다. 아침 7시 다시 현대중공업 노동자 600여명이 ‘제3자개입, 복수노조, 정치활동 보장’이라는 프랭카드를 앞세우고 진입로를 구보해 들어왔다. 이후 노동자들의 발길과 함성이 끊이질 않았다.
11월 13일, 오후 2시경에 이르러서는 이미 2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세대 노천극장이 의기충천한 노동자들로 가득 메워졌다. 마산·창원 노동조합총연합, 진주민주노조연합, 거제도의 대우조선, 울산의 현대중공업, 서울지역 노조협의회, 성남 노조협의회 등의 노동자들이 차례로 들어와 앉으며 자리가 꽉 차 버렸다. 인천지역, 경기남부지역, 부산지역, 대구·구미·포항지역, 현대엔진 등의 수많은 노동자와 민중운동단체 회원, 학생들이 줄줄이 늘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노동자들은 일어서서 자리를 좁혀 보았으나 헛일, 서울지역 노동자들은 서슴없이 일어나 산등성이를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진행된 1시간여에 걸친 입장식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며, 노동자 부대는 노천극장과 그 위 산등성이를 가득 덮어버렸다. 이들의 연합된 목소리, "노동악법 철폐하여 노동해방 앞당기자"는 외침은 건너 산마루까지 뒤흔드는 감동의 함성이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힘에 감동하였으며,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갔다. 출정결의와 더불어 세창물산 등 위장폐업 사업장 노동자들이 하얀 광목천에 혈서를 써내려갈 때에 이르러서는 그 글씨 그대로 ‘노동해방’을 향한 비장함이 하나의 힘으로 느껴졌다.
“가자! 여의도로”
이 물밀듯 밀려나가는 힘을 어느 누가 막을쏘냐. 3만, 4만, 여의도로 행하는 노동자의 대열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혈서로 쓴 "노동해방"이라는 프랭카드를 든 의장단을 선두로, 검푸른 작업복에 붉은띠를 맨 선봉대, 마창노련, 울산지역 순으로 이어진 노동자의 대열은 질서있고 힘으로 가득찼다. 가로변의 시민들이 노동자의 대행진에 감탄과 찬사를 보냈으며 전경들과 백골단의 눈빛은 위력에 압도당한 그것이었다. “노동계급의 영웅적 투쟁 만세” 길목 언덕배기 서강대학교 수위실 위에 서 있는 이 열두 개의 대형글자는 이 날 노동법 개정을 위해 나아가는 대행진의 기세를 그대로 압축한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행진하며 “노동해방, 악법철폐” “해체 전경련, 타도 민정당” “악법철폐, 민주쟁취” “노동운동 탄압하는 군부독재 끝장내자” “부정축재 환수하여 서민주택 건설하자”등의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노동자계급이 역사와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쩔은 얼굴들, 검푸른 작업복의 사나이들, 그러나 이 민족, 이 민중의 장래를 짊어진 사기충천한 노동자들은 ‘통일의 노래’를 부르며, 한국의 부를 상징하는 63빌딩과 가진자들의 정치를 상징하는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에 마침내 입성하였다.
그리고는 국회의사당 진입로를 가로막는 전경들과 백골단을 밀쳐내고 의사당 앞에 6만여 노동자, 학생, 시민이 연좌하여 집회를 가졌다. 이내 어둠이 깔리고 마이크 시설조차 잘 안되었지만, 노동자들은 질서정연했으며 의기양양했다. 마이크를 잡은 노동자들은 “국회의원들도 다 사장 출신인데 지네들이 뭣이 좋다고 노동법 개정을 해주겠느냐, 그러나 만일 노동법을 우리의 요구대로 개정하지 않으면, 국회의원 모가지들을 분질러 버리자” “통과 안되면 여당도 야당도 없다. 우리 스스로 국회의원 하고 정치할꺼다”라고 분명히 주장하였다.
노동자들의 의지는 분명하였다. “왔다갔다 노동정책, 야권3당 자폭하라” “10만 노동자 단결했다, 총파업도 불사한다” “전경련을 해체하고 민정당을 타도하자”는 구호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11월 13일, 18년 전 이 날은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동지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치며 산화해간 날이다. 이 날을 기려, 노동자들은 18년 후인 오늘 ‘전태일정신 계승 및 노동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아주 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다니러 가는 것이다”라는 그의 유언을 오늘, 연세대, 그리고 여의도에서 그의 친구들이, 동지를 아는 동지의 모든 분신들이, 동지를 모르는 동지의 모든 분신들이 힘찬 투쟁을 통해 실현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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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사설 : 11월 13일 투쟁의 의의와 이후의 투쟁방향 = 2

웅변원고
노가다도 8시간 노동제 보장하라 = 19
인간답게 살자는데 제3자가 웬말이냐 = 22
반민주악법의 핵심, 국가보안법 · 사회안전법을 철폐하라 = 25
노태우정권은 웃으면서 사람잡는 정권 = 30
분신은 노동자적 투쟁 방법이 아니다 = 34

연재기획 : 노동자의 사상
노동해방에 대한 정확한 생각을 갖자―전태일동지 추모 18주기를 기념하며 = 36

연재기획 : 세상이 바뀌면 해방된 사회의 여성은 어떻게 살아가나? = 50

논단 : 남한혁명의 이론에 대하여 = 59

유인물
전두환·노태우를 구속하라! 노동법을 개정하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 72
학생동지들에게 드리는 공개서한 = 75
독점재벌이 강탈해간 민중의 부, 독재권력이 짓밟은 민중의 권리, 민중의 투쟁으로 되찾자! =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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