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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9-03 16:41
청년의 직업선택시의 고려(1835년)_맑스
 글쓴이 : webmaster
조회 : 631  
청년의 직업선택시의 고려(考慮)

자연은 동물에게 마땅히 준수해야 할 활동범위를 규정해 주었고 동물도 이 범위 안에서 분에 맞게 운동하면서 그 범위를 벗어나고자 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기타의 어떤 범위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신(神)도 인간에게 공통의 목표를 지정해 주었다. 즉 인류와 그들 자신이 고상함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스스로 찾게 하였다. 인간으로 하여금 가장 그에게 적합하며, 그와 사회에 제고(提高)된 지위를 가지게 할 수 있는 일을 사회에서 선택하게 한 것이다.
이런 선택에서는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훨씬 우월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인간의 일생을 망치고, 그의 모든 계획을 파괴하여 그를 불행으로 몰아넣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선택에 대한 진지한 고려는 의심할 것 없이 삶의 길을 걸어가는 시작이며, 또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 불행을 맞이하길 원치 않는 청년들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기도 하다.
사람들마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목표는 적어도 자기자신에게는 위대한 것이며, 게다가 가장 깊숙한 신념이, 즉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음성이, 이 목표는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실제로도 위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결코 세인(世人)을 완벽하게 인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은 언제나 부드러운 소리이지만 확고하게 계시한다.
그런데 이 음성은 아주 쉽게 파묻혀 버린다. 우리는 영감(靈感)적인 것은 순간에 생겨났다, 마찬가지로 순간에 사라져 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환상은 끊임없이 솟아나, 우리의 감정이 격동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눈앞에 한꺼번에 펼쳐지고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목표라고 믿는 것을 열광적으로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꿈속에서도 희구하던 것은 매우 빠르게 우리를 싫증나게 할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전체적인 존재 또한 훼멸되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신중히 고려해야만 한다. 선택한 직업은 진정 우리를 고무(鼓舞)하는 것인가? 우리의 내심(內心)은 동의하는가? 우리가 받은 고무는 일종의 착각이 아닌가? 우리가 신의 소환(召喚)이라고 여기는 것은 일종의 자기 기만이 아닌가? 그러나 고무의 근원 자체를 찾아내지 않고 어떻게 이런 것들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겠는가?
위대한 것은 빛나는 것이며, 빛나는 것은 곧 허영심을 일으킨다. 그리고 허영심은 인간들에게 쉽게 그것이 고무적인 사실로서, 혹은 우리가 고무적인 것이라고 느끼는 사실로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명예와 사리사욕에 마음을 사로잡힌 사람은 이미 이지(理智)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저항할 수 없는 욕망에 휩싸이게 된다. 그는 이미 스스로 사회상의 자신의 지위를 선택하지 않게 되고, 우연한 기회나 환상에 귀를 기울여 그 지위를 결정한다.
우리의 사명은 결코 가장 화려한 직업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장기적으로 종사하더라도 권태롭지 않고 소홀히 하지 않으며, 시종 정서적인 타락을 가져다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하는 바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이상을 실현할 수도 없으며, 결국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탓하게 할 그런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직업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단지 허영심 뿐만이 아니다. 아마, 우리 스스로도 환상을 통해 이런 직업을 미화하고, 그것을 인생이 제공할 수 있는 지고지상(至高至上)의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우리는 자세한 분석이나 전체적 분량을 가늠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중대한 책임을 부담지운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우리는 멀리서 그것을 관찰할 뿐이며, 멀리서 관찰한 것은 믿을만하지 못하다.
여기에서 우리 자신의 이지력은 우리의 고문이 되어주지 못한다. 이지력은 경험에 의한 것도 아니고 심오한 관찰에 의한 것도 아니며, 감정에 의해 속고 환상으로 몽매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지력을 상실한 곳에서 누가 우리를 지지하겠는가?
그것은 우리의 부모이다. 그분들은 길고 긴 삶의 길을 걸어왔고 인간세상의 고통을 맛보았다.一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우리를 깨우친다.
우리가 냉정한 연구를 통해 선택한 직업을 분명히 인식하여, 그 어려움을 알고 난 후에도 그 직업에 대한 열정이 충만하고 그 직업을 사랑하며, 자신에게 적합하다고 느낀다면, 그때 우리는 그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열정에 대해 속지 않을 것이며, 성급한 속단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가 적합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직업을 선택할 수가 없다. 우리는 사회상의 관계에서, 우리가 사회적 관계에 대해 결정적 영향을 일으킬 수 있게 되기 이전에 이미 일정 정도에서 확립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체질은 항상 우리를 위협하지만, 누구라도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우리는 체질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우리 또한 더욱 빨리 무너진다 : 이런 상황하에서는 우리는 모래땅 위에 건물을 짓는 모험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우리의 일생도 정신적 원칙과 육체적 원칙 사이의 불행한 투쟁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 속의 상호투쟁 원인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삶의 맹렬한 충격을 견뎌낼 것이며, 어떻게 안정된 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안정이 있어야만 위대하고 장려한 사업을 만들 수 있으며, 안정만이 성숙한 과실을 생산하는 유일한 토양이다. 우리가 체질에 부적합한 직업을 택하여 지속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고 일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격려하여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역부족인 직업을 택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훌륭히 해낼 수 없어서 너무 빨리 자기비하에 빠지고, 스스로에게 ‘나는 무용지물인 인간이다. 자신의 사명도 완수하지 못하는 사회 성원이다’라고 말하며 절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되는 필연적인 결과는 자기비하 뿐이다. 이보다 더 고통스런 감정이 다시 있는가? 자기비하는 독사처럼 영원히 우리의 영혼을 갉아대며, 생명의 혈액을 빨아가고 세상에 대한 절망이라는 독액을 주입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모든 것을 고려한 후에, 우리의 생활조건이 어떤 직업의 선택을 허락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가장 존엄하게 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즉 우리의 깊은 신념과 정확한 사상 위에 세워진 직업을 선택한다. 우리에게 광활한 장소를 제공하여 인류를 위한 활동을 하고, 공통목표(이 목표에 대해서, 모든 직업은 수단에 불과하다), 즉 완벽한 미의 경지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직업을 선택한다.
존엄은 인간을 가장 고상하게 하는 것이며, 그의 활동과 그 노력이 숭고한 품격을 갖게 한다. 곧 그 인간으로 하여금 비리에 의지하지 않으며, 대중 중에서도 출중한 흠모를 받게 한다.
그러나 이런 직업에 종사할 때, 우리가 노예같은 공구로 취급되지 않고, 자신의 영역 내에서 독립적인 창조를 진행할 때에만 존엄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이런 요구에 적합한 직업이 결코 최고의 직업은 아니지만, 가장 해볼만한 직업일 것이다.
존엄성을 상실한 직업이 우리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후에 깨달은 착오 위에 세워진 직업 또한 우리를 억압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기 기만 이외에는 다른 해결방법을 구할 수 없다. 그러나 자기 기만으로써 해결책을 삼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주로 생활 자체에 간여된 일이 아닌, 추상적 진리연구에 종사하는 직업들은 아직 확고한 원칙 및 범주,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지지 못한 청년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직업들이 우리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 뿌리내려, 우리가 그 지배적인 사상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할 수 있다면, 이러한 직업들도 가장 고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직업들은 재능이 적합한 사람에겐 행복을 주지만, 심사숙고를 거치지 않고 일시적인 충동으로 선택한 사람에게는 훼멸을 자초하게 할 것이다.
반대로 우리 직업의 기초적 사상을 중시하면, 우리로 하여금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하고 우리 자신의 존엄성을 높이고 우리의 행위에 동요됨이 없게 해줄 것이다.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우리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주요 지침은 인류의 행복과 우리 자신의 완성이다. 이 두 가지의 이익은 적대적인 것이며, 상호 충돌적이고, 한 이익이 다른 이익을 소멸시킨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본성이란 원래 그런 것이지만, 인간은 동시대인 모두의 완성을 위해, 그들 모두의 행복을 위해 일할 때에만 비로소 스스로의 완성을 이룰 수 있다.
만일 한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일한다면, 그는 아마도 저명한 학자나, 대철학자, 탁월한 시인 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완성된 인격의 위대한 인물은 될 수 없다.
역사는 그들 공통의 목표를 위해, 스스로가 고상한 인물이 된 사람들을 위대한 인물로 승인하였다. 경험은 대다수 인간을 위해 행복을 가져다 준 사람을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찬미한다. 종교 또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받들어지는 이상적인 인물들은 모두가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임을 가르친다一누가 감히 이 가르침을 부인하겠는가?
만일 우리가 가장 훌륭하게 인류의 복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 해도 그 무거운 책임감이 우리를 압박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모두를 위한 헌신이기 때문이다. 그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가련하고, 제한적이며, 이기적인 쾌락이 아니며, 우리의 행복은 천백만 인류에 속한 것이다. 우리의 사업은 묵묵하게, 그러나 영원한 작용을 발휘하며 존속될 것이고, 우리의 뼛가루를 대하는 고상한 사람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것이다.

1835년 8월 12일『사회주의와 노동자운동사문고』
1925년 라이프찌히판 제11년권에 처음으로 발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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