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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8-16 01:38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1859)_맑스
 글쓴이 : webmaster
조회 : 641  

1부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1. 정치경제학 비판에 부쳐

2.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1. 정치경제학 비판에 부쳐

 

나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체계를 다음과 같은 순서로 고찰한다. 자본, 토지소유, 임노동 ; 국가, 대외무역, 세계시장. 앞의 세 부문을 통해서 나는 3대 계급의 경제적 생활조건들을 탐구한다. 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바로 이 3대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뒤의 세 부문은 한눈에 보아도 그 연관성이 분명해진다. 1권에서는 자본에 대해서 논해지는 바, 그 제1편은 다음 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상품, 2장 화폐 또는 단순유통, 3장 자본일반. 처음 두 개의 장이 이 분책(分册)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지금 내 앞에는 온갖 재료가 각론(各論)들의 형식인 채로 있는데, 기실 이러한 각론들은 시기상의 오랜 간격을 두고 내 자신의 자기이해를 위해서 적어둔 것이지 간행을 목적으로 기록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이것들을 앞서 말한 계획에 따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제반 외적 상황 여하에 달려있을 것이다.

일반론적인 서론을 하나 써두었던 게 있지만 나는 이것을 내지 않기로 한다. 왜냐하면 좀더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제부터 논증되어야 할 결과들을 미리 제시해둔다는 것이 도리어 방해가 될 듯 싶기 때문이고, 도대체가 나의 입장을 따라가고자 하는 독자는 개별적인 것에서부터 일반적인 것으로 올라갈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신, 내 자신의 정치-경제학의 연구 경로에 대하여 이 자리에서 약간 언급해두는 것은 적절하리라 여겨진다.

내 전공분야는 법학이었으나 나는 이 학문을 단지 철학과 역사에 인접한 부차적인 학문으로서만 배웠을 뿐이다. 라인신문("Rheinischen Zeitung")의 편집자로 있을 당시인 1842년과 1843년 사이에 비로소 나는 이른바 물질적 이해관계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는 곤혹스러움을 맛보았다. 산림도벌 및 토지소유분할에 관한 라인주 의회의 심의들, 당시 라인주 지사였던 폰 샤페르Herr Von Schaper씨가 모제르 농민의 상황에 관하여 라인신문을 상대로 일으킨 공개논쟁, 끝으로 자유무역과 보호관세에 관한 토론, 이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경제문제에 관여할 최초의 기회를 주었다. 한편 당시는 보다 전진한다고 하는 선의(善意)가 사실적 지식보다 훨씬 드셌던 시기였던 만큼, 프랑스의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에 대한, 미진하나마 철학적으로 물들여진 반향이 라인신문에도 나타나고 있었다. 이런 어설픈 태도에 나는 반대를 표명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알게마이네 아우구스부르거 짜이퉁Allgemeine Augsburger Zeitung과의 한 논쟁에서 종래의 나의 연구로는 프랑스에서 일고 있는 추세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래서 나는, 이를테면 필봉을 완화시킴으로써 라인신문에 내려진 사형선고를 취소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던 라인신문경영자들의 착오를 오히려 기쁘게 이용하여, 공적인 무대에서 서재로 물러서기로 했던 것이다.

그당시 나를 엄습했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착수한 첫 작업은 헤겔 법철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이었는데, 이 작업의 서론은 1844년에 파리에서 출판된 독불연감Deutsch-Französischen Jahrbücher에 게재되었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즉 온갖 법률관계 및 국가형태란 것은 그것들 자체로부터도 또는 이른바 인간정신의 일반적인 발전에 의해서도 이해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이것들은 물질적 생활관계들에 뿌리하여 있는 것이어서, 이들의 생활관계의 총체는 헤겔의 18세기 영국인과 프랑스인의 선례에 따라 시민사회’burgerliche Gesellschaft란 이름 아래 총괄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또한 이 시민사회의 해부는 정치경제학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경제학의 연구를 나는 파리에서 시작했지만 기조M.Guizot씨의 추방령에 따라 브뤼셀로 이주함으로써 거기에서 보다 깊이 연구를 계속했다. 내가 도달한 일반적 결론, 그리고 일단 도달한 이상 나 자신의 연구에 계속해서 지도적 실마리로 쓰인 일반적 결론은 간단히 말해서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이 영위하고 있는 사회적 생산에서 그들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의지와는 독립된 특정의 제관계 속에 들어간다. 즉 그들의 물질적 생산제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에 들어간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이 실제적 기초인 바, 이 기초 위에 하나의 법률적 및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또한 이 기초에 대응하여 일정한 제 사회의식의 형태가 존재하게 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및 정신적 생활과정 일반을 제약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제력이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를 경우, 이때의 생산제력은 기존의 생산제관계 및 그 법률적 표현에 불과한 소유관계이것들은 다름아닌 생산제력 내부에서 이제까지 운동해온 것이지만와 모순되기에 이른다. 생산력의 발전형태들로부터 이러한 생산관계는 생산을 구속하는 질곡으로 변한다. 이리하여 하나의 사회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다소간 급격하게 변혁된다. 이러한 변혁들을 고찰할 때 우리는 언제나, [i] 자연과학적 정확성을 가지고 확인되어야 하는 경제적 생산조건들의 물질적 변화와 [ii] 법적, 정치적, 종교적, 예술적, 또는 철학적 형태, 즉 인간이 이러한 대립을 의식하게 되는 터전이자 또한 싸움으로 이 대립을 관철해나가는 곳이기도 한 이데올로기적 형태들과를 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 개인에 관한 여타 사람들의 의견은 그 개인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생각하는 내용 여하에 그대로 의거하고 있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의 변혁시기를 그 시기 자체의 의식에서 판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의식은 물질적 생활의 모순들, 곧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에 현존하는 갈등으로부터 설명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떠한 사회구성체도 모든 생산력이 그 안에서 발전할 여지가 있는 한, 결코 발전의 완료 이전에 멸망하지 않는다. 또한 보다 높은 새로운 생산관계는, 이것의 물질적 존재조건들이 구사회의 태내에서 성숙하기 이전에는 출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류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자기에게 제기한다. 왜냐하면 좀 더 자세히 고찰해보면, 우리는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들이 이미 존재하거나 적어도 그 생성과정에 있을 경우에만 문제 그 자체가 등장하는 것을 항상 알게 되기 때문이다. 대체로 말해서 우리는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진보에 따른 여러 단계를 아시아적, 고대적, 봉건적 및 근대부르주아적 생산양식들로 특징지워볼 수 있다.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들은 사회적 생산과정의 최종적인 적대적 형태인 바, 여기서 적대적이라 함은 개인적 적대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들의 사회적 생활조건들에서 발생하는 적대적 형태를 일컫는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의 태내에서 자기발전하는 생산제력은 동시에 이 적대의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들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사회구성체는 인간사회의 전사적(前史的) 단계를 끝맺는 장을 이루고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나는 경제학적 제범주의 비판을 위한 그의 천재적인 논문이 (독불연감) 발표된 이후 서신을 통해 사상적 교류를 계속해왔는데 그는 다른 경로를 통하여(그의 영국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실태를 참조하라)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1845년 봄에 엥겔스가 브뤼셀에 정착함으로써, 우리는 사실상 우리들의 지난날의 철학적 양심을 청산하기 위하여 독일철학의 이데올로기적 견해에 대한 우리의 견해의 대립적 입장을 공동으로 집필하기로 결의했다. 이 계획은 헤겔 이후의 철학을 비판하는 형태로 실행되었다(헤겔 이후의 포이에르바하, 브루노 바우어 등을 비판한 저서인 독일 이데올로기를 말함역자). 두 권의 두꺼운 8절판으로 된 초고는 오래 전에 베스트팔렌에 있는 출판사에 맡겼었으나, 그 후 우리는 상황이 달라져서 출판이 불가능하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때 우리는 이미 우리의 주요 목적자기 이해은 달성하고 있었으므로, 아낌없이 원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데 맡겨 두었다. 그 반면에 우리들 자신이 당시 우리의 견해를 대중에게 각 방면에 걸쳐 발표한 산발적인 연구물로는, 엥겔스와 내가 공동 집필한 공산당 선언과 내 자신이 출판한 자유무역론(18481월에 브뤼셀의 민주주의협회에서 행한 자유무역에 관한 강연. Karl Marx/Friedrich Engels : Werke. Bd. 4, S. 444~458 참조역자)만을 들 수 있겠다. 우리들의 견해 가운데 중요한 요점들은 내가 푸르동에 반대하여 쓴 1847년에 간행된 저서 철학의 빈곤에서 비록 논쟁적인 것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과학적인 성격을 띠면서 시사되었다. 임노동에 관하여 독일어로 쓴 하나의 논문은 내가 이 제목으로 브뤼셀의 독일노동자협회에서 행한 강연을 정리한 것인데, 그것은 2월혁명 및 이에 따른 나의 벨기에에서의 강제추방에 의하여 인쇄가 중단되었다.

1848년과 1849년 사이의 신라인신문(Neuen Rheinischen Zeitung)의 발행과, 그 후에 일어난 사건들은 나의 경제학 연구를 중단시켜 1850년에야 겨우 나는 런던에서 경제학 연구에 다시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대영박물관에 비치된 정치경제학의 역사에 관한 방대한 자료들, 부르주아사회의 고찰에 있어 런던이 제공하는 유리한 입지점, 끝으로 캘리포니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금의 발견과 함께 부르주아사회가 진입할 것같이 보였던 새로운 발전양상 등으로 해서 나는 순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결심과 아울러, 새로운 자료를 통해 철저히 비판적으로 연구해낼 것을 다짐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이 외견상으로는 전혀 인연이 없는 것같이 보이는 주제들로 이끌 경우가 있는데, 사실 나는 단기 혹은 장기의 시간에 걸쳐 이들 주제에도 관여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대로의 시간이란 것도, 생계비를 벌기 위한 절박한 필요성 때문에 삭감되었다. 1급의 영미(英美)신문인 뉴욕 트리뷴New-York Tribune지에 지금까지 8년동안 기고해 왔던 것이이는 방법이 예외적일 뿐 본격적인 신문통신에 종사하는 것이므로나로 하여금 연구에 대한 극도의 분산을 강요했다. 하지만 영국과 대륙에서 일어난 놀랄만한 경제적 사건들에 관한 기사가 나의 기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정치경제학이라는 본래의 학문영역을 벗어나는 실제적인 세부사항에도 정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치경제학 영역에서의 나 자신의 연구와 견해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평가되건 간에, 또 그것이 얼마나 지배계급의 이기적인 편견과 일치하지 않건 간에, 나의 연구의 진행에 대해 이상과 같은 개요를 소개하는 의도는 오로지 이러한 연구가 장구한 세월에 걸친 양심적인 탐구의 결과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지옥에의 입구와 마찬가지로, 학문에의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요구가 틀림없이 걸려져 있는 것이다.

여기선 일체의 머뭇거림을 버리라, 그 어떤 주저함도 여기 죽어 마땅하도다. *

(단테, 신곡)

18591, 런던

칼 마르크스

* 원문은, Qui si convien lasciare ogni sospetto/Ogni vilta convien che qui sia morta.역자.

 

 

2.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I. 생산, 소비, 분배, 교환(유통)

 

1. 생산

a) 이 글의 대상은 우선 물질적 생산이다.

사회에서 생산활동을 하는 개인들따라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개인들의 생산이 당연히 출발점이다. 스미스와 리카아도가 출발점으로 삼은, 개별적이고 분산된 사냥꾼과 어부는 18세기 로빈슨 크루소주의자들의 공허한 상상들에 속한다. 물론 이들 상상은, 문화사학자들이 상정하듯이, 그저 과잉정화에 반대하는, 그리고 자연생활로 오해된 것으로의 복귀에 반대하는 하나의 반동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자연과 독립적인 주체들을 계약에 의해 서로 관계시키고 연관지은, 루소의 사회계약설이 그러한 자연주의에 기초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연주의란 가상 또는 이러저러하게크고 작은 로빈슨 크루소주의자들의 미학적 가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오히려 16세기 이래로 마련되어왔고, 18세기에 그 성숙의 거대한 진보를 내디딘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선취Vorwegnahme였다. 이 자유경쟁사회에서 개별자는, 그 이전 역사시대에 그를 일정하고 제한된 인간집합체의 부속물로 만들었던 자연적 제속박 등으로부터 풀려난 것처럼 보인다. 스미스와 리카아도를 선구로 한 18세기 예언자들에 있어 18세기의 이러한 개인한편으로 봉건적 제사회형태의 해체의 산물이요 다른 한편으로 16세기 이래로 새로이 발전된 생산제력의 산물은 이상(Ideal)으로서 출현하는 바, 하지만 이같은 이상의존재라는 것은 사라져버린 존재에 불과하다. 즉 이는 역사적 결과로서가 아니라 역사의 출발점으로 출현하게 된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발생한 개인이 아니라,인간의 본성에 관한 그들의 상상에 걸맞게자연적 개인으로서, 자연에 의해 정립된 개인으로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착각은 지금까지 어떤 새로운 시대에나 특유한 것이었다. 많은 점에서 18세기에 대립해 있었고, 귀족으로써 보다 많은 역사적 기반 위에 서 있는 스튜어트는 이러한 천진난만성을 면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개인, 따라서 생산하는 개인도 비자립적인, 하나의 보다 큰 전체에 속하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처음에는 당연히 가족과 종족으로 확대된 가족에서 그러하고, 나중에는 종족들의 대립과 통합으로부터 생겨난 다양한 형태들의 공동체에서 그러하다. 18세기, 부르주아 사회에서야 비로소 다양한 형태들의 사회적 연관은 개인에게 있어 그의 사적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서, 즉 외적 필연성으로서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즉 개별화된 개인의 관점을 낳는 시대는 바로 지금까지 가장 발전된 사회적(이 관점에서 보면 일반적) 제관계이다. 인간은 문자 그대로 정치적 동물이다. 단지 군서동물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만 개별화될 수 있는 동물이다. 개별화된 개인이 사회 밖에서 생산함이것은 이미 자신 속에 사회적 제력을 동태적으로 소유하는 문명인이 우연히 사막에 잘못 들어섦으로써나 발생할 수 있는 드문 일이지만이란 더불어 살고, 더불어 언어를 사용하는 개인들 없이 생겨난, 언어 발전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일이다. 때문에 여기서 오래도록 지체할 필요는 없다. 바스티아, 케리, 쁘루동 등 18세기 논자들에게 의미가 있고 통용되었던 잠꼬대들은, 다시 최근 경제학의 중심에서 진지하게 수용되지 않으면 요점은 전혀 파악될 수 없게 된다. 쁘루동 등으로서는 그 역사적 생성을 알지 못하는 경제적 관계의 근원을 역사철학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아담이나 프로메테우스가 이념적으로 고정되고, 완성되어 그대로 도입되었다고 신화화하기에 이르렀다. 공상에 잠겨 헛소리하는 상투어처럼 지루하게 무미건조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생산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언제나 일정한 사회적 발전단계에 있는 생산사회적 개인들의 생산에 관해 언급되어야 한다. 따라서 생산에 관해 일반적으로 논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발전과정을 그 상이한 국면들에 따라 추적해야 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그것이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 예를 들어 사실상 이 책의 주제가 되고 있는, 근대 부르주아적 생산에 관련되어 있음을 해명해야 한다. 모든 생산시기들만이 일정한 특징들, 공통적인 제규정을 공유한다. 생산일반은 하나의 추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공통적인 것을 드러내고 확정지음으로써 반복할 필요가 없는 한에 있어서, 그것은 분별있는 추상이다. 그렇지만 이 일반적인 것, 또는 비교에 의해 추출된 공통적인 것, 그 자체가 다중적으로 접합된 것, 즉 다양한 제 규정들로 분기(分岐)하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모든 시대에 속하고 다른 규정들은 몇몇 시대에만 공통된다. (몇몇) 규정들은 가장 오래된 시대와 가장 근대적인 시대에 공통된다. 이러한 제규정들이 없이 생산이란 생각할 수 없다. 가장 발전된 언어들이 가장 낙후된 언어들과 공통의 법칙 및 규정들을 가질 때, 바로 그 발전된언어의 발전을 구성한 것이 이 일반적인 것, 곧 공통적인 것과의 차이가 된다. 통일주체인 인류와 객체인 자연이 동일한 데서 이미 생겨나는 통일때문에 본질적인 상이성이 망각되지 않기 위해, 생산 일반에 적용되는 제규정은 구별되어야 한다. 예를들어 기존의 사회적 제관계의 영구성과 조화를 입증한 근대 경제학자들의 모든 지혜란 것이 바로 이러한 망각 가운데 놓여있다. 예를 들어 보자. 생산도구 없이 생산은 불가능하다. 그 도구가 비록 손에 불과할지라도. 과거의 누적된 노동이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 그 노동이 반복된 연습을 통해 원시인의 손에 쌓이고 집중된 숙련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자본은 무엇보다도 생산도구이기도 하며, 또한 과거의 객관화된 노동이다. 그러므로 생산도구”, “누적된 노동을 비로소 자본으로 화하게끔 하는 모종의 특수한 것을 내가 생략한다면, 자본은 일반적이고 영원한 자연관계이다. 따라서 예컨대 케리에게는 생산제관계의 전체 역사가 마치 정부들에 의해 악의적으로 야기된 위조인 것처럼 보인다.

생산일반이 없다면 일반적 생산도 없다. 생산은 언제나 특수한 생산부문가령 농업, 목축업, 매뉴팩쳐 등이거나 총체성이다. 정치경제학만이 기술(技術)인 것은 아니다. 어떤 주어진 사회적 단계에서 생산의 일반적 제규정이, 특수한 생산형태들에 대해 가지는 관계는 뒤에서 개진하기로 한다. 끝으로 생산은 단지 특수한 것만은 아니다. 생산부문들의 보다 크고 작은 총체성 속에서 활동하는 것은 언제나 일정한 사회형체Gesellschaftskörper, 사회적 주체이다. 학문적 서술이 실제 운동에 대해 가지는 관계도 마찬가지로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생산일반. 특수한 생산부문들. 생산의 총체성.

모든 생산의 일반적 제조건을 논술하는 일반론이것이 바로 생산이라는 제목 하에 나타나는 부분이다을 경제학에서 맨 앞에 내놓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다. 이 일반론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거나 구성되어야 한다고 한다.

1. 그것이 없으면 생산이 불가능해지는 제조건. , 사실상 생산의 본질적인 제계기에 불과한 것이 진술된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상 평범한 동어반복에 불과한 매우 단순한 규정들로 환원됨을 알게 될 것이다.

2.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전진하거나 정체해 있는 사회상황과 같이 생산을 다소 촉진하는 제조건. 그에게는 착상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을 학문적 의의가 있는 것으로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개별 민족들의 발전에서 생산성 정도의 주기에 관한 연구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 연구는 원래 이 책의 주제 밖에 있으나 그것이 이 주제에 속하는 한에 있어서는 경쟁, 축적 등을 개진하면서 덧붙여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견해에서의 대답은 어떤 산업민족이, 그가 역사상의 절정을 점하는 순간에, 그는 생산의 절정을 달성한다는 일반적인 것으로 귀착된다. 이익Gewinn이 아니라 획득하는 행위Das Gewinnen가 중요한 한에 있어서 어떤 민족의 공업상의 절정은 사실 그러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어떤 인종, 성향, 기후, 바다 위치, 토지 비옥도 등의 자연제관계가 다른 것보다 생산에 유리하다는 것은, ()의 제요소가 주관적으로 객관적으로 보다 고도로 주어져 있는 만큼 부()가 쉽게 창출된다는 동어반복으로 다시금 귀착된다.

이 일반론에서 경제학자들에게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생산은 오히려 분배 등과는 달리, 역사로부터 독립적인 영원한 자연법칙들에 갇혀 있는 것으로 서술되고 이때 부르주아적 제관계는 암암리에 사회일반의 부정불가능한 자연법칙들로서 주장된다. 이것이 이러한 수법 전체의 다소 의식적인 목적이다. 이에 반해서 분배에서는 모든 종류의 자의(恣意)가 허용되는 것 같다. 생산과 소비 및 그들의 실제적인 관계를 조잡하게 분리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다양한 사회단계들에서 분배가 아무리 다양할지라도 생산에서와 꼭 마찬가지로 공통적인 규정들을 찾아내고, 모든 역사적인 차이들을 혼란시키거나 일반적 인간법칙들로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하다. 예를 들어 노예, 농노, 임노동자는 그들이 노예, 농노, 임노동자로서 존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만큼의 식량을 받는다. 조공, 조세, 지대, 적선, 십일조로 각각 먹고사는 정복자, 관리, 지주, 승려, 레위족(이스라엘민족에서 사제계급으로 할당된 족속역주)은 노예 등의 할당량과는 다른 법칙에 따라 결정하는 할당량의 사회적 생산을 취득한다. 모든 경제학자들이 이 맥락에서 거론하는 두가지 요점이 1. 소유권, 2. 사법, 경찰 등에 의한 이의 보호이다. 이에 관해 간략하게 검토해 보기로 하자.

1. 개인의 측면에서 볼 때 모든 생산은 일정한 사회형태 내에서 이를 매개로 한 자연의 전유이다. 소유(전유하기)가 생산의 한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동어반복이다. 여기에서부터 일정한 소유형태, 예를들어 사적소유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오히려 역사는 공동소유를 본원적 형태, 공동체 소유의 형태체 속에서 아직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부가 어떤 소유형태에서 더 잘 발달하는지의 문제는 아직 여기에서는 논외이다. 그러나 아무런 소유형태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런 생산도, 따라서 아무런 사회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동어반복이다.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하지 않는 전유란 무의미하다.

2. 취득물의 보전 등. 이러한 상투적인 말들을 그들의 실제적인 내용으로 환원하면 그들의 설교자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들은 의미하고 있다. 즉 각 생산형태는 그 자신의 법률제관계, 정부형태 등을 낳는다는 것이다. 조잡성과 무개념성은 바로 유기적으로 공속적인 것을 우연적으로 서로 관련시키고 단순한 반사관계 속에 집어넣는다는 데 있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에게는 예를 들어 자력자위권Faustrecht에서보다 근대적 경찰에 의해서 더 잘 생산될 수 있다는 것만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들은 자력자위권도 하나의 권리이며 강자의 권리는 법치국가에서도 다른 형태로 상존하고 있음을 잊고 있다.

일정한 생산단계에 조응하는 사회적 제상태가 비로소 생성되고 있거나 또는 그들이 이미 사라지고 있다면, 정도와 영향에 있어서는 다양할지라도 생산장애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모든 생산단계에 공통적인 제규정이 있으며 이들은 사유에 의해 일반적 규정으로 고정된다. 그러나 소위 모든 생산의 일반적 제조건이란 실제적인 역사적 생산단계를 파악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추상적 계기들에 불과하다.

 

 

2. 생산의 분배, 교환, 소비에의 일반적 관계

 

 

계속적인 생산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경제학자들이 생산 이외에 설정한 여러 부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산에서 사회구성원들은 자연생산물들을 인간적 욕구의 것으로 전유(산출, 형성)하고 분배는 개인이 이 생산물에 참여하는 비율을 결정한다. 교환은 개인이 그에게 할당된 몫과 바꾸고자 하는 특수한 생산물을 그에게 가져다주며, 끝으로 소비에서 생산물들은 향유, 즉 개인적 전유의 대상이 된다. 이는 너무나도 명백한 생각이다. 생산은 욕구에 조응하는 대상들을 산출하고, 분배는 그들을 사회적 법칙에 따라 나눈다. 교환은 이미 나뉘어진 것을 개인적 욕구에 따라 다시 나누며, 끝으로 소비에서 생산물은 이러한 사회적 운동으로부터 벗어나 직접 개별적 욕구의 대상 및 그 노예가 되고 향유 속에서 이 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래서 생산은 출발점, 소비는 최종점, 분배와 교환은 전자가 사회로부터, 후자는 개인들로부터 나오는 계기로서 규정되면서 다시 이중적인 중간점으로서 나타난다. 생산에서는 인간이 객체화되며, 소비에서는 사물이 주체화된다. 분배에서 사회는 일반적, 지배적 제규정의 형태로 생산과 소비의 매개를 맡는다. 교환에서 생산과 소비는 개인의 우연적 규정성에 의해 매개된다.

분배는 생산물이 개인들에게 귀속되는 비율()을 규정하고, 교환은 개인이 분배에 의해 그에게 할당된 몫만큼 요구하는 생산물들을 규정한다.

따라서 생산, 분배, 교환, 소비는 하나의 완전한 종결Regel-rechter schluß 을 형성한다. , 생산은 일반성, 분배와 교환은 특수성, 소비는 개별성을 이루며, 여기에서 전체가 통합된다. 이것은 물론 상호관련이지만, 평범한 상호관련에 불과하다. 생산은 일반적 자연법칙들에 의해 규정된다. 분배는 사회적 우연에 의해 규정되고, 따라서 생산에 다소 촉진작용을 미칠 수 있다. 교환은 양자 사이에 형식사회적 운동으로서 놓여있고, 최종목표로 뿐만 아니라 최종목적으로도 이해되는 소비라는 완결적 행위는, 그것이 출발점에 다시 영향을 미치고 전체 과정을 새로이 시작시킬 때를 제외하고는, 원래 경제학 밖에 놓여있는 것이다.

정치경제학자들이 동질적인 것을 야만스럽게 분리시킨다고 비난하는 반대자들정치경제학자들 주변 내부의 반대자든, 외부의 반대자든은 정치경제학자들과 동일한 기초위에 서 있거나 그들보다 아래에 있다. 정치경제학자들이 생산을 자기 목적으로서 너무 배타적으로 주목하지만 분배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비난은 극히 일상적이다. 이 비난은 분배가 독자적이고 독립된 영역으로서 생산과 병존하고 있다는 경제적 사고에 기초를 두고 있거나, 제계기가 그들의 통일 속에서 이해되고 있지 않다. 마치 이 분리가 현실로부터 교과서에로가 아니라, 그 반대로 교과서로부터 현실속으로 들어갔고, 여기에서 마치 현실적 제관계의 해체Auflosung가 아니라 제개념의 변증법적 균등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a) [생산과 소비]

 

생산은 직접적으로 소비이기도 하다. 이는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인, 이중적 소비이다. 자연적 출산이 생명력의 소비인 것과 마찬가지로, 생산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달시키는 개인은 그 능력을 지출하기도 하고 생산행위 속에서 그것을 소모한다. 둘째, 사용하고 마모되며 부분적으로는 (예를들어, 연소될 때) 일반적 원소들로 다시 분해되는 생산수단들의 소비. 그의 자연적 형체나 속성이 보전되지 않고 오히려 소모되는 원자재 소비도 마찬가지다. 생산행위 자체는 따라서 모든 계기에 있어서 소비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학자들도 이 사실은 인정한다. 소비와 직접적으로 동일한 것으로서 생산, 즉 생산과 직접적으로 일치하는 소비를 그들은 생산적 소비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생산과 소비의 일치는 규정은 부정이다라는 스피노자의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적 소비의 규정은 생산의 파괴적 대립으로 이해되는 본래적 소비로부터, 생산과 일치되는 소비를 단지 구분하기 위해서 행해지고 있다. 이제 본래적 소비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자연에서 원소 및 화학물질의 소비가 식물의 생산인 것처럼 소비는 직접적으로 생산이기도 하다. 예를들어, 소비의 한 형태인 식량 섭취로써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생산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어떤 방법으로든 한편으로 인간을 생산하는 모든 종류의 소비에 해당된다. 소비적 생산, 소비와 일치되는 생산만이 일차 생산물의 파괴에서 유래하는 이차적 생산이라고 경제학에서는 말해진다. 일차적 생산에서는 생산자가 물화되고, 이차적 생산에서는 생산자에 의해 창조된 사물이 인격화된다. 따라서 이 소비적 생산은비록 그것이 생산과 소비의 직접적 통일이기는 하지만본래적 소비와는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생산이 소비와, 소비가 생산과 일치하는 직접적 통일은 그들의 직접적 이원성Zweiheit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생산은 직접적으로 소비이고 소비는 직접적으로 생산이다. 각자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반대이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매개적 운동이 이루어진다. 생산은 소비의 대상이 되는 물질을 창조하여 소비를 매개한다. 그러나 소비는 제생산물에게 그들의 주체를 창조해 주면서 생산을 매개한다. 생산물은 비로소 소비에서 마지막 완결을 획득하는 것이다. 달리지 않고, 따라서 마모되지 않고 소비되지 않는 철도는 가능성에 있어서만 철도이지 실제에 있어서는 아니다. 생산이 없이 소비는 없다. 그러나 소비가 없으면 생산도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생산은 무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는 생산을 이중적으로 생산한다.

1. 소비에서 비로소 생산물이 진정한 생산물이 되면서. 예를들어, 한 옷은 착용행위에 의해 비로소 진정한 옷이 되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사실상 진정한 집이 아니다. 따라서 단순한 자연대상과는 달리 생산물은 소비에서 비로소 생산물로 증명되고 그것이 된다. 소비는 생산물을 해체하면서 비로소 생산물에 마지막 다듬질을 해준다. 왜냐하면 생산물은 물화된 활동으로서가 아니라, 활동하는 주체를 위한 대상으로서만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2. 소비가 새로운 생산의 욕구, 즉 생산의 전제가 되는 생산의 관념적이고 내부추진적인 근거를 창조하면서, 소비는 생산의 충동을 창조한다. 또한 소비는 목적규정적으로 생산에서 활동하는 대상을 창조한다. 생산이 소비의 대상을 외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소비가 생산의 대상을 관념적으로, 내적 영상으로서, 욕구로서, 충동으로서, 목적으로서 정립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분명하다. 소비는 생산의 대상들을 아직은 주관적인 형태로 창조하는 것이다. 욕구가 없으면 생산도 없다. 그러나 소비는 욕구를 재생산한다.

생산의 측면에서 보면 다음의 사실들이 이에 조응한다.

1. 생산은 소비에 원료를, 즉 대상을 공급한다. 대상이 없는 소비는 소비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생산은 소비를 창조하고 생산한다.

2. 그러나 생산이 소비에 창조해주는 것은 대상만이 아니다. 생산은 소비에 그의 규정성, 특징, 완결을 가져다준다. 소비가 생산물에 생산물로서의 완결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생산은 소비에 완결을 가져다준다. 대상이란 일단 대상 일체가 아니라, 생산 자체에 의해 다시 매개될 일정한 방법으로 소비되어야 하는 일정한 대상이다. 배고픔은 배고픔이다. 그러나 포크와 칼로 삶은 고기를 먹어서 충족될 배고픔은 손, 손톱, 이빨로 날고기를 삼켜서 채우는 배고픔과는 다른 배고픔이다. 그러므로 생산은 소비자를 창조한다.

3. 생산은 욕구에 원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원료에게 욕구를 제공한다. 소비가 일차적인 자연적 조야성과 직접성에서 벗어나면그 상태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자연적 조야성에 머물러 있는 생산의 결과일 것이다소비 자체는 충동으로서 대상에 의해 매개된다. 소비가 느끼는 욕구는 그의 감지를 통해 창조된다. 예술대상다른 모든 생산물도 마찬가지로은 예술감각이 있고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관중을 창조한다. 따라서 생산은 주체를 위한 대상뿐 아니라, 대상을 위한 주체도 생산한다.

따라서 생산은 1. 소비에 물질을 창조해 주면서, 2. 소비방식을 규정하면서, 3. 소비에 의해 비로소 대상으로 정립된 생산물을 소비자의 욕구로서 산출하면서 소비를 생산한다. 따라서 생산은 소비대상, 소비방식, 소비충동을 생산한다. 마찬가지로 소비는 생산자를 목표규정적 욕구로서 청원하면서 생산자의 성향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소비와 생산 사이의 제 일치성은 삼중적으로 나타난다.

1. 직접적 일치성 : 생산은 소비이고, 소비는 생산이다. 소비적 생산. 생산적 소비. 국민경제학자들은 양자를 생산적 소비라 부른다. 그러나 한가지 차이는 두고 있다. 전자는 재생산으로 나타나고, 후자는 생산적 소비로 나타난다. 전자에 관한 모든 연구는 생산적, 혹은 비생산적unproduktive 노동에 관한 것이고, 후자에 관한 모든 연구는 생산적, 혹은 생산적이 아닌nichtproduktive 소비에 관한 것이다.

2. 각자는 타자의 수단으로서 나타나며 서로에 의해 매개되는 바, 이는 그들의 상호종속으로서 표현된다. 이는 그들이 서로 관련되고 서로에게 필수불가결하게 보이나, 그럼에도 서로 외적으로 머물러 있는 운동이다. 생산은 소비를 위한 외적 대상으로서 원료를 창조하고, 소비는 생산을 위한 내적 대상, 목적으로서 욕구를 창조한다. 생산 없이는 소비가 없고, 소비 없이는 생산이 없다. 이것은 경제학에서 수많은 형태로 나타난다.

3. 생산이 직접적으로 소비이고, 소비가 직접적으로 생산인 것만은 아니다. 또한 생산은 소비를 위한 수단이고, 소비는 생산을 위한 목적, 즉 각자는 타자에게 대상을 제공해 주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 각자는 직접적으로 타자이고, 타자를 매개할 뿐만 아니라, 그들 각자는 자신을 완수하면서 타자를, 즉 스스로를 타자로서 창조한다. 소비는 생산물을 해체하고 독자적으로 그의 물질적인 형태를 소모하고, 생산물을 생산물로 완성시키면서, 곧 일차적인 생산행위 속에서 발전된 속성을 반복욕구에 의해 숙련으로까지 상향시키면서, 생산행위를 비로소 완수한다. 따라서 소비는 생산물을 생산물로 만드는 완결적 행위일 뿐 아니라, 생산자를 생산자로 만드는 완결적 행위이다. 다른 한편에 있어서 생산은 일정한 소비방식을 창조하고, 그리고 소비자극, 소비능력을 욕구로서 창조하면서 소비를 창조한다. 이 마지막 세번째 일치성은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 대상과 욕구, 집단에 의해 창조된 욕구와 자연적 욕구 사이의 관계 속에서 누차 설명되고 있다.

따라서 헤겔주의자에게 생산과 소비를 일치시키는 것만큼 쉬운 것은 없다. 이것은 사회주의적 통속작가들 뿐 아니라 범속한 경제학자 자신들, 예를 들어 세이에 의해서도 한 민족을 관찰하면서 이민족의 생산은 이민족의 소비라고 하는 형태로 행해진다. 또는 인류 일반에 대해서도 그렇게 한다. 스토르크는 한 민족이 순전히 자기 생산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 즉 고정자본 등을 창조하기도 하므로 세이가 틀렸음을 입증하였다. 더구나 사회를 유일한 주체로서 관찰하는 것은 그것을 사변적으로 잘못 관찰하는 것이다. 한 주체에게는 생산과 소비가 한 행위의 계기들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과 소비를 한 주체의 활동들로 관찰하든, 개별적인 개인들의 활동들로 관찰하든, 어떤 경우에나 생산과 소비는 생산이 실제적 출발점이고, 따라서 총괄적 계기das ubergreifende Moment가 되는 하나의 과정의 계기들로 나타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필요로서, 욕구로서의 소비 자체는 생산적 활동의 내적 계기이다. 그러나 후자는 실현의 출발점이며, 따라서 실현의 총괄적 계기, 즉 전체과정이 다시 진행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개인은 한 대상을 생산하고 그의 소비를 통해 다시 그 자신 속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이때 생산적 개인으로서, 그리고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개인으로서 되돌아온다. 그리하여 소비는 생산의 계기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생산자의 생산물에 대한 관계는 그 생산물이 완성되자마자 하나의 외적 관계이며, 생산물의 주체에로의 복귀는 다른 개인들에 대한 그의 관계에 의해 좌우된다. 주체는 생산물을 직접적으로 손에 넣지 않는다. 주체가 사회속에서 생산하면 생산자의 직접적 전유는 그의 목적이 아니기도 하다. 제생산자와 제생산물 사이에, 그러므로 생산과 소비 사이에, 생산물 세계에서의 생산자의 몫을 사회적 제법칙에 의해 규정하는 분배가 들어선다.

분배는 생산의 옆과 밖에서 독자적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b) [생산과 분배]

 

일상의 경제학들을 관찰해보면 모든 것이 그 안에서는 이중적으로 정립되어 있다는 것이 우선 눈에 띈다. 예를들어, 생산에서 토지, 노동, 자본이 생산의 행위자들Agenten로 나타나는 반면에, 분배에서는 지대, 임금, 이자 및 이윤이 나타난다. 자본에 관해서 보면 그것이 이중적으로, 1. 생산행위자로서, 2. 소득원천으로서, 규정하면서, 규정된 분배형태들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자와 이윤도, 자본이 증대되고 성장하는 형태들, 그러므로 자본생산 자체의 계기들인 한에 있어서, 생산에서 그 자체로서 나타난다. 분배형태들로서 이자와 이윤은 생산행위자로서의 자본을 가정한다. 그들은 생산행위자로서의 자본을 전제하는 분배양식들이다. 그들은 또한 자본의 재생산양식들이기도 하다.

노동임금은 마찬가지로 다른 제목 아래서 관찰된 임노동이다. 노동이 여기에서 생산행위자로서 가지는 규정성이 분배규정으로 나타난다. 노동이 임노동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면, 노동이 생산물에 참여하는 방식은, 예를들어, 노예제에서처럼 노동임금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토지소유가 생산물에 참여하는 가장 발전된 분배형태를 예로 할 때, 지대는 대토지소유(원래 대농업)를 생산행위자로서 가정한다. 급료가 노동 자체를 가정하지 않는 것처럼, 토지 자체를 생산행위자로서 가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분배의 제관계 및 제양식은 단지 생산행위자들의 이면(裏面)으로서 나타난다. 임노동의 형태로 생산에 참여하는 개인은 생산물, 생산의 결과에 노동임금의 형태로 참여한다. 분배의 구성은 생산의 구성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된다. 분배 자체는 대상에 근거해서만, 생산의 결과만이 분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산의 산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형태에 근거해서도즉 생산에의 참여의 일정한 방법이 분배의 특수한 제형태를 곧 분배에 참여되는 형태를 규정한다는 점에서생산의 산물이다. 생산에서 토지를, 그리고 분배에서는 지대를 정립하는 것 등은 전적으로 환상이다.

따라서 생산에만 주목했다고 비난받는 리카아도 같은 경제학자들은, 본능적으로 분배형태들을한 주어진 사회에서 생산행위자들이 확정되는가장 규정된 표현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오직 분배만을 경제학의 대상으로 규정하였다.

개별적인 개인에게 분배는 당연히 개인의 생산 내 위치를 조건지우는 하나의 사회적 법칙으로 나타난다. 개인은 이 위치 내에서 생산하고, 따라서 이 위치는 생산에 선행한다. 이 개인은 처음부터 자본도, 토지소유도 없다. 그는 출생할 때부터 사회적 분배에 의해 임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의존함 자체는 자본과 토지소유가 독자적인 생산행위자들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의 결과이다.

전체 사회를 관찰하면, 분배는 또 한 측면에서 생산에 선행하고, 그 생산을 규정하는 것처럼, 말하자면 경제 이전의 사실처럼 보인다. 정복민족은 땅을 정복자들끼리 나누고, 그리하여 일정한 분배 및 토지소유형태를 결정하며, 따라서 생산을 규정한다. 또한 그는 피정복인들을 노예로 만들어 노예노동을 생산의 기초로 삼기도 한다. 혹은 어떤 민족은 혁명에 의해 대토지 소유를 분할지로 분쇄하고, 이 새로운 분배로써 생산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한다. 또는 법률제정에 의해 토지소유가 몇몇 가족들에게서 영구화되거나 노동이 세습적 특권으로서 나누어지고, 그리하여 신분제도적으로 고정된다. 이 모든 역사적인 경우에 분배가 생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생산이 분배에 의해 구성되고 규정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장 범속한 견해에서의 분배는 생산물들의 분배이고, 그래서 생산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마치 생산에 대해 독자적인 것처럼 나타난다. 그러나 분배가 생산물들의 분배이기 이전에, 분배는 1. 생산도구들의 분배, 2. 이 관계의 또 다른 규정으로서,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생산종류에의 분배(일정한 생산제관계 아래로 개인들의 포섭)이다. 생산물들의 분배는, 생산과정 자체 속에 포함되어 있고 생산의 구성을 규정하는 이러한 분배의 결과에 지나지 않음이 극명하다. 생산에 내포된 분배를 도외시하고 생산을 관찰하는 것은 공허한 추상임이 분명한 반면에, 반대로 생산물들의 분배는 원래 생산의 한 계기를 이루는 분배와 더불어 저절로 주어진다. 근대적 생산을 그의 일정한 사회적 구성 속에서 파악했던 뛰어난 생산경제학자인 리카아도는 바로 그 때문에 생산이 아니라 분배를 근대경제학의 본래적 주제로 선언한다. 여기에서 다시, 역사를 분배의 영역으로 추방하고 생산을 영원한 진리로 발전시키는 경제학자들의 어리석음이 보인다.

생산 자체를 구성하는 분배가 생산에 대해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는 생산 자체 내에 속하는 문제라는 것은 극명하다. 생산은 일정한 생산도구 분배로부터 출발해야 하므로, 적어도 이러한 의미에서 분배가 생산에 선행하고 생산의 전제를 이룬다고 말해야 한다면, 생산이 사실상 생산의 제계기를 이루는 분배의 제조건 및 제전제를 가진다는 사실에 답변이 주어져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이들 계기가,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생산과정 자체에 의해 그들은 자연발생적인 것으로부터 역사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들이 어느 시대 동안 생산의 자연적 전제로 나타났다면, 다른 시대에서는 생산의 역사적 결과였다. 예를 들어, 기계 사용은 생산도구들의 분배만이 아니라 생산물의 분배도 변화시켰다. 근대적인 대토지소유 자체는 근대상업 및 근대공업의 결과이자 근대공업의 농업에의 적용의 결과이다.

위에서 제기된 제문제는 결국 일반적인 역사적 제관계가 생산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또한 생산의 역사운동에의 관계는 어떠한가로 압축된다. 이 문제가 생산 자체의 설명과 개진에 속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위에서 제기된 바와 같은 평범한 형태로나마 이 문제는 간단히 처리될 수 있다. 모든 정복에는 3가지가 가능하다. 정복 민족은 피정복 민족을 자신의 생산양식에 종속시키거나(예를 들어 영국인이 19세기에 아일랜드에서 그랬듯이), 낡은 생산양식을 존속시키면서 공물로 만족하거나(예를 들어 터어키인들이나 로마인들) 또는 정복민족과 피정복민족간의상호 작용이 발생하여 새로운 것, 즉 종합이 형성된다(게르만족의 정복에서 부분적으로 그랬듯이). 모든 경우에 정복민족의 것이든 피정복민족의 것이든 아니면 양자의 융합에서 결과되는 것이든 생산양식이 새로이 등장하는 분배에 대해 규정적이다. 새로운 분배가 새로운 생산시기에서 전제처럼 나타나지만, 그러나 분배는 다시 생산, 역사적 생산일반 뿐 아니라 일정한 역사적 생산의 산물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 사막을 가지고 있던 몽고족은, 목축이라는 그들의 생산에 적합하게 대규모의 무인(無人) 구역에 관한 주요 조건을 협상하였다. 농노를 이용한 농경이 전래적 생산이었고 촌락에서 고립된 삶을 살던 게르만족 원시인들은, 로마 점령지에서 행해지던 토지집중이 낡은 농업제관계를 완전히 해체한 것 만큼이나 용이하게, 이 점령지를 자신의 조건들에 예속시킬 수 있었다.

약탈로만 먹고 살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은 오래된 생각이다. 그러나 약탈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약탈될 것, 그러므로 생산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약탈방식 자체도 다시 생산방식에 의해 규정된다. 예를 들어, 중권투기민족은 목축민족처럼 약탈될 수 없다.

노예에게서는 생산도구가 직접 약탈된다. 그러나, 그리고 나서 토지의 생산은이것을 위해 노예는 약탈되는데노예노동이 가능하도록 구성되거나 또는 (남미에서처럼) 노예에 조응하는 생산양식이 창조되어야 한다.

법률에 의해 생산도구, 예를 들어 토지는 몇몇 가족에게 영구화될 수 있다. 이 법률은 예를 들어 영국에서처럼 대토지소유가 사회적 생산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경제적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에서는 대토지소유에도 불구하고 소영농이 이루어 졌으며 따라서 대토지소유는 혁명에 의해 붕괴되었다. 그러나 분할지경작의 영구화는 예컨데 법률에 의해 가능하겠는가? 이 법률에도 불구하고 소유는 다시 집중된다. 분배제관계를 정착시키는데 법률이 미치는 영향, 그럼으로써 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특수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C) 끝으로 교환과 유통

 

유통 자체는 교환의 일정한 계기일 뿐이거나 혹은 총체성 속에서 관찰된 교환이다.

교환이 생산과 생산에 의해 규정된 분배 사이에서 소비와의 매개적 계기일 뿐인 한, 그러나 소비가 생산의 한 계기로서 나타나는 한에 있어서, 교환은 계기로서 생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극명하다.

첫째로 생산 자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제활동 및 제능력의 교환은 직접적으로 생산에 속하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생산을 구성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둘째로 생산물들의 교환도 그것이 완성된, 직접 소비에 쓰일 생산물의 제조를 위한 수단인 한에서는 마찬가지다. 이점에 있어서 교환 자체는 생산에 포함된 행위이다. 세째로 이른바 사업가와 사업가 사이의 교환은 그 조직에 있어서 전적으로 생산에 의해 규정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산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생산물이 직접적으로 소비를 위해 교환되는 마지막 단계에서 교환은 생산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생산에 무차별적인 것처럼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1. 자연발생적이든 또는 역사적 결과로서든 분업이 없이 교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2. 사적 교환은 사적 생산을 전제로 한다. 3. 교환의 강도는 그 확장정도 및 방식과 마찬가지로 생산의 발전 및 구성에 의해 규정된다. 예를 들어 도시와 농촌 사이의 교환, 농촌에서의 도시에서의 교환이 그러하다. 이처럼 교환은 그의 모든 계기에서 생산에 직접 포함되어 있거나 생산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도달된 결론은 생산, 분배, 교환, 소비가 일치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 모두가 한 총체성의 지절(肢節)들을, 즉 한 통일체 내에서의 차이들을 이룬다는 것이다. 생산은 생산의 대립적 규정에서 자기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계기들도 총괄한다(Übergreifen). 과정은 언제나 생산에서부터 새로이 시작된다. 교환과 소비가 총괄적 계기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생산물의 분배로서의 분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생산행위자들의 분배로서의 분배 자체는 생산의 한 계기이다. 한 일정한 생산은 일정한 소비, 분배, 교환과 이들 다양한 계기들 상호간의 일정한 제관계를 규정한다. 물론 생산도 그의 일방적인 형태에서 다른 계기들에 의해 규정된다. 예를 들어 시장이 확대되면, 즉 교환영역이 확장되면 생산은 범위가 커지고 보다 세분화된다. 분배의 변화와 더불어 생산도 변화된다. 예를 들어 자본의 집중, 인구의 도시 및 농촌에의 여러가지 배분 등에 의해 생산도 변화된다. 끝으로 소비욕구들이 생산을 규정한다. 다양한 계기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 이는 어느 유기적 전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3. 정치경제학의 방법

 

 

주어진 국가를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우리는 그 국가의 인구, 인구의 계급분포, 도시와 농촌, 해양, 다양한 생산부문들, 수출입, 연간 생산 및 연간 소비, 상품가격 등에서부터 시작한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 즉 실제적인 전제, 예를 들어 경제학에서 전체 사회적 생산활동의 기초이자 주체인 인구에서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은 잘못된 방법임을 알게 된다. 인구는 예를 들어 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계급을 무시한다면 하나의 추상이다. 이러한 계급은 그것이 기초하고 있는 요소들, 예컨데 임노동과 자본 등을 알지 못하면 공허한 용어가 될 것이다. 이들 제 요소는 교환, 노동분업, 가격 등을 전제한다. 예를 들어 임노동이 없는 자본, 가치, 화폐, 가격 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자본은 공허하다. 만일 내가 인구를 출발점으로 취한다면 그것은 전체에 관한 혼란스런 관념이 될 것이며, 따라서 좀 더 명확한 규정을 통한다면 나는 분석적으로 끊임없이 단순한 제개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장 단순한 규정들에 도달할 때까지, [이 과정은] 표상된 구체적인 것에서 점점 더 미세한 추상물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부터 [가장 단순한 규정으로부터역자] 다시 그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다시 한번 인구라는 개념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때의 인구는 표상으로서가 아니라 많은 규정들과 관계들을 포함하는 풍부한 총체성으로서의 인구가 된다. 첫번째 방법은 경제학이 그 생성기에 역사적으로 취급했던 방법이다[구체에서 추상으로의 하향역자]. 예를 들어 17세기의 경제학자들은 항상 살아있는 전체, 즉 인구, 민족, 국가, 다수의 국가 등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분석에 의해 노동분업, 화폐, 가치 등과 같은 몇몇 규정적인 추상적, 일반적 제관계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들 개별적 계기들이 다소 고정되고 추상화되자마자 노동, 노동분업, 욕구, 교환가치 등의 단순한 것으로부터 국가, 민족들의 교환 및 세계시장에로 상승한 경제학적 체계가 시작되었다. 후자의 방법[추상에서 구체로의 상승역자]이 분명히 과학적으로 올바른 방법이다. 구체적인 것은 그것이 수많은 규정들의 총괄Zusammenfassung, 즉 잡다한 것의 통일이기 때문에 구체적이다. 따라서 사유 속에서 구체적인 것은, 비록 그것이 현실의 출발점이고 따라서 직관과 표상의 출발점임에도 불구하고 총괄의 과정, 결과로서 나타나지 출발점으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첫번째 방법에서는 완전한 표상이 추상적 규정으로 증발되었다. 두번째 방법에서는 추상적 제규정이 사유를 거쳐 구체적인 것의 재생산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헤겔은 현실적인 것을, 자기자신 속에서 스스로를 총괄하고 침잠하고 자기자신으로부터 스스로 운동하는 사유의 산물로서 파악하려는 환상에 빠졌다. 그 반면,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 상승하는 방법은, 구체적인 것을 전유하고 그것을 (정신적으로) 구체적인 것으로 재생산하는 사유를 위한 방식일 뿐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결코 구체적인 것 자체의 생성과정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교환가치라는 가장 단순한 경제적 범주는 인구, 즉 일정한 관계들 속에서 생산하는 인구와 일정한 종류의 가족제도, 공동체제도, 국가제도 등을 가정한다. 교환가치는 이미 주어진 하나의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전체의 추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로서 밖에 존재할 수 없다. 이에 반하여 카테고리로서의 교환가치는 아주 오래된[로마의 대홍수 이전부터역자] 존재했다. 따라서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사유가 현실적인 인간이고 따라서 파악된 세계 그 자체가 비로소 현실적인 것이 되는 의식철학적 의식은 이렇게 규정된다에 대해 카테고리들의 운동은 세계를 그 결과로 하는 실제적 생산행위유감스럽게도 이 행위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자극이다로서 나타난다. 이는그러나 이것은 다시 동어반복이다사고총체성으로서의, 사고구체성으로서의 구체적 총체성이 사실상 사유의, (개념적) 파악의 산물인 한 올바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직관과 상상의 밖에서 혹은 이들을 초월해서 사유하고 스스로를 잉태하는 개념의 산물이 결코 아니라 직관과 표상을 개념으로 가공(加工)한 산물인 점에서 옳은 것이다. 전체란, 두뇌 속에서 사고전체Gedankenganz로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자신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으로, 세계를 전유하는 사유하는 두뇌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에 대한 예술가적인, 종교적인, 실천·정신적인 전유와는 다른 방법이다. 왜냐하면 두뇌가 사변적으로만, 이론적 상태로만 있는 동안에는 현실적 주체는 여전히 두뇌 밖에서 자립적으로 존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적인 방법에서조차도 주체, 즉 사회는 전제로서 끊임없이 표상 앞에 떠오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 단순한 카테고리들은 보다 구체적인 카테고리들에 선행해서 독립적인 역사적 혹은 자연적 존재를 역시 가지지 않을까? 그것은 사정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헤겔은 점유 즉 가장 단순한 주체의 법적관계를 법철학의 출발점으로서 올바르게 취급했다. 그러나 점유는 [이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관계인 가족이나 지배예속관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반하여 소유는 없고 점유만 하고있는 가족, 종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단순한 카테고리는 소유와의 관계에서 단순한 가족공동체 혹은 부족공동체들 Familien-oder Stammgenossenschaften의 관계로서 나타난다. 보다 높은 단계에 도달한 사회에서는 이 카테고리가 보다 발전된 조직에 존재하는 보다 단순한 관계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점유를 그 관계로 가지는 구체적 토대Substrat는 항상 전제되어 있다. 우리는 점유하고 있는 개별적인 원시인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점유는 법률관계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점유가 가족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점유는 오히려 언제나 이 보다 구체적인 법률카테고리를 가정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된다. , 보다 발전된 카테고리가 보다 구체적인 카테고리를 하나의 종속된 관계로서 유지하는 반면에, 단순한 카테고리들은 보다 구체적인 카테고리에서 정신적으로 표현되는 보다 다면적인 관련이나 혹은 관계를 정립하지 않은 채, 미발전된 구체적인 것을 그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제관계의 표현이다. 자본이, 은행들이, 임노동이 존재하기 이전에 화폐는 존재할 수 있고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다. 이 측면에서 보면, 전체가 보다 구체적인 카테고리에서 표현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 이전에, 보다 단순한 카테고리는 역사적으로 이미 존재하던, 하나의 보다 미발전된 전체의 지배적인 제관계이거나 또는 하나의 발전된 전체에 종속된 제관계를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상승하는 추상적 사유의 과정은 실제적인 역사적 과정에 조응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상당히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는 미성숙한 사회형태, 즉 페루와 같이 어떠한 화폐도 전혀 발전되지 않은 채, 협업과 노동분업 등 가장 발전된 경제적 형태를 취하는 곳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슬라브 공동체들에서도 역시 화폐와 이를 조건지우는 교환은 개별공동체 내에서는 없거나 미미하고, 다른 공동체들과의 교류가 일어나는 국경지대에서만 이것들은 나타난다. 교환을 본원적인 구성요소로 공동체내에서 정립하는 것은 전혀 오류이다. 오히려 처음에 교환은 동일한 공동체의 성원들 가운데서가 아니라 여러 다른 공동체들의 관계에서 발생했다. 더욱이 비록 화폐가 대단히 일찍부터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역할을 수행했지만, 고대에서 화폐가 지배적 요소로 되는 경우는 일면적으로 규정된 민족들, 즉 상업민족들에게만 그렇다. 근래 부르주아사회에서 전제되는 화폐의 완벽한 발전은, 그리이스나 로마와 같은 가장 개발된 고대사회에서 조차도 그들이 해체되는 시기에만 나타난다. 이러한 아주 단순한 카테고리가 갖는 그 [충분한] 강도는 역사적으로 가장 발전된 사회상태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경제적 관계에 침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현물세와 현물 지불은 로마제국 번성기에조차도 그 기초로 남아 있었다. 실로 화폐제도는 로마에서 군대에서만 완벽하게 발전하였다. 화폐제도가 노동 전체에 침투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보다 단순한 카테고리가 보다 구체적인 카테고리에 앞서 역사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었으나 그것의 완전한 내적 · 외적 발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사회형태에서야 가능할 수도 있다. 반면에 보다 구체적인 카테고리는 가장 미개한 사회형태에서도 충분히 발전했던 것이다.

노동은 아주 단순한 카테고리처럼 보인다. 이러한 일반성에서의노동일반으로서의노동관념도 대단히 오래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단순성에서 경제적으로 이해된 노동은 이 단순한 추상을 낳은 제관계처럼 근대적인 카테고리이다. 예를 들어, 통화제도는 아주 객관적으로 부()를 화폐 외부의 사물로서 정립한다. 이러한 입장에 비하여 매뉴팩쳐제도나 상업제도가 부의 원천을 대상으로부터 주체적 활동상업노동 및 매뉴팩쳐노동으로 정립한 것은 커다란 진보였으나 그러나 이 활동 자체만 여전히 제한적으로 화폐를 산출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제도에 비하여 중농제도는 한 일정한 노동형태농업가 부를 창조하는 것으로 그리고 대상 자체를 더 이상 화폐의 외관Verkkidung으로 보지 않고 생산물 일반으로서 그리고 노동의 일반적 결과로서 정립한다. 그러나 여전히 제한된 활동에 따라 자연적으로 규정된 생산물농산물, 특히 토지생산물로서 정립된다.

부를 창조하는 활동의 어떤 규정성도 거부한 것은 아담 스미스의 대단한 진보였다. 그에게 부란 매뉴팩쳐 노동도, 상업노동도, 농업노동도 아닌 노동일체Arbeit schlechthin였다. 부를 창조하는 활동의 추상적 일반성과 더불어 이제 부로서 규정된 대상의 일반성은 생산물일반 또는 노동일반 그러나 과거의, 대상화된 노동으로 정립되었다. 이 이행(移行)이 얼마나 어렵고 위대한 것이었는가는 아담 스미스 자신도 때때로 중농주의적 체계로 퇴보한다는 사실에 의해 알 수 있다. 이로써 인간들이 생산자로서 활동하는어떤 사회형태에서든가장 단순하고 가장 오래된 관계에 대한 추상적 표현이 발견된 것처럼 보인다. 이는 한편으로 옳고 다른 한편으로 옳지 않다. 하나의 일정한 노동종류에 대한 무차별성은 어느 것도 지배적인 노동이 아닌, 실제적인 노동종류들의 매우 발전된 총체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가장 일반적인 제 추상은 하나가 다수에게 공통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모두에게 공동이 되는, 가장 풍부한 구체적 발전에서만 그것은 생성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특수한 형태로만 사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노동추상은 결코 제노동의 구체적 총체성의 결과인 것만은 아니다. 일정한 노동에 대한 무차별성은, 개인들이 한 노동에서 다른 노동으로 쉽게 이전할 수 있는, 따라서 일정한 노동 종류는 그들에게는 우연적이며 무차별적이 되는 사회형태에 조응한다. 여기에서 범주적으로서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노동은 부 일반을 창조하는 수단이 되며, 한 특수한 특수성 속에서 개인들과 유착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상태는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근대적인 현존형태인 미국에서 가장 잘 발달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노동이라는 카테고리의 추상인 노동일반”, “노동자체 Arbeit sans phrase”는 근대경제학의 출발점이 되며, 비로소 현실적인 사실이 된다. 따라서 근대경제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가장 단순한 추상은 모든 사회형태에 적용되는 고전적(태고적) 관계를 표현하는 추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가장 단순한] 추상은 이러한 추상화 속에서 근대사회의 카테고리로서 실제로 바르게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역사적 산물인 것특정노동에 대한 무차별성,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는 자연발생적인 성향으로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야만인들이[수동적으로역자] 모든 것[작업]에 사용[적응]될 수 있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문명인이 모든 것[작업]에 자신들을 사용[적용]하는지 하는 문제는 일단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리고 러시아인에게 아주 일정한 노동에 밀착된 전통적인 고착성은 노동의 규정성에 대한 이 무차별성에 조응함으로써, 이로부터 그들은 외부영향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동의 사례는 가장 추상적인 카테고리들조차바로 그들의 추상 때문에모든 시대에 유효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 추상의 규정성에서 역사적 제관계의 산물인가 하는 것과, 그리고 그것들은 이 제관계에 대해서만, 그리고 이러한 관계 안에서만 충분한 타당성을 유지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부르주아사회는 가장 발전되고 다양한 역사적 생산조직이다. 따라서 그의 제관계를 표현하는 제카테고리, 이들의 위상Gliedenmg에 대한 이해는 동시에 모든 몰락한 사회형태의 위상 및 생산제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준다. 이 사회형태들의 폐허와 제요소로써 부르주아사회는 건설되고, 이들 중 일부 아직 극복되지 않은 잔재가 부르주아사회 안에 존속하며 단순한 암시들이 형성된 의미들로 발전된다. 인간해부는 원숭이해부의 열쇠이다. 그에 반해서 저급동물종류에서의 고차원적인 것에 관한 암시들은 고차원적인 것 자신이 이미 알려져 있을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르주아경제는 고대경제 등에 대한 열쇠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차이들을 무시하고 모든 사회형태에서 부르주아사회형태를 보는 경제학자들의 방법은 이러한 통찰력을 획득할 수 없다. 지대를 알면 공물, 십일조 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더우기 부르주아사회 자체가 대립적 발전형태일 뿐이므로 그 속에서는 과거 형태들의 제관계가 전적으로 위축되거나 우스꽝스럽게 대두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공유지 따라서 부르주아경제의 제카테고리가 다른 모든 사회형태에 관한 진리를 가지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전적으로 일정한 방향에서만 그러하다. 이 카테고리들은 다른 사회형태들을 발전, 퇴화, 풍자해서, 포함하지만 항상 본질적인 차이를 두고 있다. 최근형태는 드물게 아주 일정한 조건 하에서만 스스로를 비판할 능력이 있고여기에서는 물론 스스로 멸망기로 나타나는 역사적 시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항상 스스로를 일방적으로 파악하므로, 소위 역사적 발전이란 최근형태가 과거형태들을 자신에게 향하는 제단계로 간주하는 데 기초한다. 기독교는 자기비판이 어느 정도까지, 말하자면 가능성에서 완료되자마자 비로소 과거 신화들의 객관적 이해에 도움을 줄 능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사회의 자기비판이 시작되자마자 비로소 부르주아경제는 봉건경제, 고대경제, 동양(아시아적)경제의 이해에 이르렀다. 부르주아경제가 신비화되면서 과거의 것과 순수히 동일시되지 않는 한, 그가 아직 직접적으로 투쟁해야 했던 과거, 즉 봉건경제에 대한 그의 비판은 기독교가 이교에 대해, 혹은 또한 신교가 구교에 대해 가했던 비판에 비견할 만했다.

모든 역사, 사회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제카테고리의 진행에서 항상 견지되어야 하는 것은 아래의 사실이다. 즉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두뇌에서도 주체여기에서는 근대부르주아사회[이미]주어져 있다는 것, 따라서 제카테고리는 이 일정한 사회, 곧 이 주체의 존재형태들, 실존규정들, 흔히는 개별적 측면들만을 표현한다는 것, 따라서 그 자체로서 이 사회에 대해 언급될 때, 이 사회는 비로소 과학적으로도 시작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 등이다. 이것은 자료의 배열을 위한 중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토지소유는 모든 생산과 현존의 원천인 토지와 관련되어 있고, 어느 정도 정착된 모든 사회형태의 일차적 생산 형태농업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지대 곧 토지소유에서부터 시작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것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잘못된 것은 없을 것이다. 토지소유는 모든 사회형태에서 다른 여타 생산에 서열과 영향을 배정하는 일정한 생산이며, 이 생산제관계가 여타 제관계에 서열과 영향을 배정한다. 그것은 모든 여타의 색채가 담궈지고, 이들을 그 특수성에 있어서 수정하는 하나의 일반적 조명이다. 그것은 그에게서 유래하는 모든 현존의 고유한 무게를 규정하는 특수 에테르이다. 유목민족의 예를 보자. (단순한 사냥민족과 어민족은 실제적 발전이 시작되는 점 외부에 있다) 유목민족에게서는 일정한 경작형태, 간헐적 경작형태가 보여진다. 그럼으로써 토지소유가 규정된다. 그것은 공통적인 것으로서, 이 민족들이 그들의 전통을 다소간 견지하느냐에 따라 이 형태를 다소간 온존시키는 바, 슬라브족의 공유지가 그러했다. 고대민족 및 중세민족에서처럼 정착경작이 지배적인 민족에게는 공업과 그 조직, 이에 조응하는 소유형태조차 토지소유적 성격을 가지며, 고대로마족에게서처럼 정착경작에 전적으로 예속되어 있거나 아니면 중세에서처럼 농촌의 조직이 도시와 도시의 제관계에서 모방된다. 중세에서의 자본 자신은그것이 순수한 화폐자본이 아닌 한전통적인 수공업도구 등으로서 이러한 토지소유적 성격을 가진다. 부르주아사회에서는 그 반대이다. 농업은 갈수록 하나의 단순한 산업부문이 되고 자본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된다. 지대도 마찬가지이다. 토지소유가 지배하는 모든 형태에서는 자연관계가 아직 지배적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형태에서는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창조된 요소가 지배적이다. 자본없이 지대는 이해될 수 없다. 그러나 지대 없이도 자본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부르주아사회의 경제적 권력이다. 그것이 출발점 및 종착점을 이루어야 하며 토지 소유에 앞서 개진되어야 한다. 양자가 특수하게 관찰된 후, 그들의 상호관계가 관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경제적 제 카테고리를 그들이 역사적으로 규정적이었던 순서대로 위치지우는 것은 실행할 수 없고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순서는 그들이 부르주아사회에서 서로 맺고 있는 관계 그리고 그들의 자연적인 순서로 보인다거나 역사발전 순서에 조응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경제적 제관계가 다양한 사회형태들의 순위에서 역사적으로 차지하는 관계가 문제되지 않는다. “관념 속에서의”(쁘루동) (역사운동의 영락한 표상에서의) 순서는 더욱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근대 부르주아사회 내에서의 그들의 위상이 문제이다.

고대세계의 상업민족들피닉스인, 카르타고족에서 나타났던 순수성 (추상적 규정성)은 농업민족 자신의 지배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상업자본, 혹은 화폐자본으로서 자본은 바로 이 추상성 속에서 나타나며, 자본은 아직 사회의 지배적 요소가 되지 않는다. 롬바르드인과 유태인이 중세 농업사회에 대해 똑같은 지위를 점한다.

동일한 카테고리들이 다양한 사회단계에서 차지하는 다양한 지위의 다른 예로서는 부르주아사회의 최종형태의 하나인 주식회사이다. 그러나 이 주식회사는 부르주아사회의 초기에도 대규모의 특권적, 독점적 무역회사에서 나타난다.

국부Nationalreichtum 개념 자체가 17세기 경제학자들에게는부분적으로는 18세기 경제학자들에게서 지속된 생각과 같이단순히 국가를 위해 부가 창조되고, 그러나 국가권력은 이 부에 비례한다는 식으로 생각된다. 이는 부 자체와 부의 생산을 근대국가의 목적으로 예고하고 근대국가들을 부의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간주하는, 아직 무의식적이고 위선적인 형태에 불과하다.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분류되어야 한다. 1. 다소 모든 사회 형태에 속하지만 위에서 진술한 의미에서 그러한 일반적으로 추상적인 제규정. 2. 부르주아사회의 내부 위상을 구성하고 근본적 제계급의 기초가 되는 제카테고리, 자본, 임노동, 토지소유. 이들의 상호관계. 도시와 농촌. 사회적 3대계급. 이들 사이의 교환. 유통. 신용제도(민간). 3. 부르주아사회의 국가형태로의 총괄. 그 관계 자체의 고찰. “비생산적제계급. 조세. 국채. 공공신용. 인구. 식민지. 이민. 4. 생산의 국제적 관계. 국제분업. 국제교환. 수출입. 환율. 5. 세계시장과 공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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