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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6-10 14:41
공산주의의 원리(1847년 11월)_엥겔스
 글쓴이 : webmaster
조회 : 692  
공산주의의 원리

 1.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공산주의란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여러 조건에 관한 학설이다.

 2. 프롤레타리아트란 무엇인가?

 프롤레타리아트란 하나의 사회 계급으로서, 오직 자기의 노동1)을 판매함으로써만 생계를 유지하며 어떤 자본이든간에 자본에서 나오는 이윤으로는 생활하지 않는 계급을 말한다. 이 계급의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그 생존 전체는 노동에 대한 수요에, 다시 말하면 경기 변동에, 무절제한 경쟁의 동요에 의존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프롤레타리아트 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란 19세기의 노동자 계급이다.

 3. 그러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 가난한 근로 계급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으며2), 또 근로 계급은 대개 가난했다. 그러나 방금 지적한 바와 같은 형편에 놓여 있는 빈민 또는 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는, 경쟁이 언제나 자유롭고 무절제하지는 않았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 것은 아니다.

 4. 프롤레타리아트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프롤레타리아트는 산업 혁명의 결과로 생겨났다. 산업 혁명은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일어났고, 그 뒤 세계의 모든 문명 국가에서 되풀이되었다. 이 산업 혁명은 증기 기관, 각종 방적기, 직조기와 그 밖의 일련의 기계 장치가 발명되면서 일어났다. 값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대자본가들만이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이 기계들은 지금까지의 생산 양식 전체를 변화시켰고 종전의 노동자들을 몰아냈다. 왜냐하면 이 기계들은 종전의 노동자가 자신의 완전하지 못한 물레나 직기를 가지고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기계들은 산업을 모두 대자본가의 손에 넘겨주었으며, 노동자의 보잘것없는 재산(도구, 직기 등등)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로 자본가들은 곧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게 되었으며, 노동자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리하여 옷감 짜는 일에 공장 제도가 도입되었다. 기계와 공장 제도의 도입이 촉진되자, 이 제도는 곧 그 밖의 모든 산업 부문, 특히 나염 • 인쇄 • 도자기 • 금속 제품 생산 부문에도 급속히 보급되었다. 노동은 개별 노동자들 사이에서 더욱더 분할되어, 이전에는 한 작업 전체를 혼자 하던 노동자가 이제는 그 일부만을 하게 되었다. 이 분업은 생산물을 더 빨리, 따라서 더 값싸게 생산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분업은 노동자 개개인의 노동을 매우 단순하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이 기계는 이러한 동작을 사람만큼 훌륭히, 심지어는 더 잘 해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방적업이나 직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산업 부문에서 잇따라 증기, 기계, 공장 제도가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모든 산업 부문은 완전히 대자본가들의 손에 넘어갔고, 노동자들은 여기서도 자신의 마지막 한 조각 남은 독립성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대자본가들은 막대한 비용을 절약하고 철저한 분업을 실시할 수 있는 대공장을 건설함으로써 소(小)장인들을 점점 몰아냈기 때문에, 공장 제도는 엄밀한 의미의 매뉴팩처1* 외에 수공업까지도 차츰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문명 국가에서는 거의 모든 노동 부문이 공장제 형태로 경영되고, 거의 모든 노동 부문에서 대공업이 수공업이나 매뉴팩처를 밀어내게 되었다. 그 결과, 종래의 중간 계급, 특히 소규모 수공업을 경영하던 장인들이 점점 파멸하고 노동자들의 상태가 완전히 바뀌어 새로운 두 계급, 즉 다른 모든 계급들을 차츰 흡수하는 두 계급이 생겨났다. 다시 말하면,
 첫째로 대자본가 계급은 오늘날 모든 문명 국가에서 이미 모든 생활 수단과, 생활 수단 생산에 필요한 원료와 도구(기계, 공장 등등)를 거의 독점하고 있다. 이것이 부르주아 계급 또는 부르주아지다.
 둘째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계급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자기의 노동을 부르주아에게 팔아 생존에 필요한 생활 수단을 얻는 수밖에 없다. 이 계급을 프롤레타리아 계급 또는 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한다.

 5. 프롤레타리아는 어떤 조건에서 자기의 노동을 부르주아에게 파는가?

 노동은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이므로, 노동의 가격 또한 다른 모든 상품의 가격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대공업 또는 자유 경쟁—뒤에 설명하겠지만 이 두 가지는 결국 같은 것이다.—의 지배 밑에서 상품의 가격은, 평균적으로 늘 그 상품의 생산비와 같다. 따라서 노동의 가격 또한 노동의 생산비와 같다. 그런데 이 노동의 생산비는 바로 노동자가 노동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 계급의 대가 끊기지 않도록 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생활 수단으로 이루어진다. 노동자는 자기 노동의 대가로 이런 목적에 필요한 것 이상은 받지 못한다. 따라서 노동의 가격, 즉 임금은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저치, 즉 최소치가 될 것이다. 그러나 경기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만큼 노동자도 어떤 때에는 많이 또 어떤 때에는 적게 받겠지만, 이것은 공장주가 자기 상품의 값을 때에 따라 많이도 받고 적게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경기가 좋을 때와 나쁠 때를 평균해 보면 공장주는 어쨌든 자기 상품의 값을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많이 받지도 않고 더 적게 받지도 않는다. 이와 꼭 마찬가지로 노동자도 평균해 보면, 앞에서 말한 최소치에 비해 더 많이도 더 적게도 받지 않는다. 이러한 임금의 경제 법칙은, 대공업이 모든 노동 부문에 세력을 뻗치면 뻗칠수록 더욱더 엄격하게 작용할 것이다.

 6. 산업 혁명 이전에는 어떤 근로 계급이 있었는가?

 근로 계급은 사회의 발전 단계가 달라짐에 따라 각각 다른 조건에서 살았으며, 또 유산 계급, 즉 지배 계급에 대한 그들의 지위도 각각 달랐다. 고대의 근로자들은 자기 주인의 노예였다. 지금까지도 많은 후진국들과 미국의 남부에서는 근로자들이 아직 노예로 남아있다. 중세의 근로자들은 토지를 소유한 귀족의 농노였다. 헝가리, 폴란드, 러시아에서는 지금도 그렇다. 중세에, 즉 산업 혁명 이전에는 그 밖에도 도시에 수공업 직인이 있어서 소부르주아 장인을 위해 일했다. 그리고 매뉴팩처가 발전함에 따라 차츰 매뉴팩처 노동자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이미 대자본가에게 고용되었다.

 7. 프롤레타리아는 어떤 점에서 노예와 다른가?

 노예는 한번 팔리면 영원히 팔린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날마다 시간마다 자신을 팔지 않으면 안 된다. 개별 노예는 특정한 한 주인의 재산이며, 따라서 노예의 생존은 그 처지가 아무리 비참하다 할지라도 이미 그 주인의 이해 관계 덕택에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개개인은, 말하자면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재산인 셈이다. 따라서 그의 노동은 누군가가 그것을 요구하는 경우에만 팔릴 수 있으므로 그의 생존은 보장되어 있지 않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전체로서의 생존만이 보장되어 있을 뿐이다. 노예는 경쟁의 밖에 있으나 프롤레타리아는 경쟁 속에 놓여 있으므로 경쟁의 모든 변동을 몸소 느낀다. 노예는 하나의 물건으로 여겨지고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나 프롤레타리아는 하나의 인간으로,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노예가 비록 프롤레타리아보다는 그래도 견딜 만한 생존 조건을 가질 수 있다 하더라도, 프롤레타리아가 노예보다는 더 높은 사회 발전 단계에 속해 있는 것이며 또 노예보다는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노예는 모든 사적 소유 관계 가운데서 노예제라는 관계 하나만을 폐지함으로써 자신을 해방하며 이를 통해서야 비로소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데 비해, 프롤레타리아는 사적 소유 일반을 폐지함으로써만 자신을 해방할 수 있다.

 8. 프롤레타리아는 어떤 점에서 농노와 다른가?

 농노는 생산 도구와 한 조각의 땅을 소유하고 이용하며, 그 대신에 수확의 일부를 바치든가 아니면 여러 가지 노동을 해 준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는 다른 사람의 생산 도구를 가지고 그 사람을 위해 노동하며, 그 대신에 생산물의 일부를 받는다. 농노는 바치고 프롤레타리아는 받는다. 농노는 생존을 보장받고 있으나 프롤레타리아는 그렇지 못하다. 농노는 경쟁 밖에 있으나 프롤레타리아는 경쟁 속에 있다. 농노는 도시로 도망쳐서 수공업자가 되든가, 또는 자신의 지주에게 노동이나 생산물 대신에 돈을 바치고 자유로운 차지농(借地農)이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봉건 영주를 내몰고 자기 자신이 소유자가 되든가 함으로써 자신을 해방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농노는 이렇게 또는 저렇게 유산 계급 속에 들어가고 경쟁의 테두리 안에 들어섬으로써 자신을 해방한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는 경쟁, 사적 소유와 모든 계급 차별을 폐지함으로써 자신을 해방한다.

 9. 프롤레타리아는 어떤 점에서 수공업자와 다른가?3)

 10. 프롤레타리아는 어떤 점에서 매뉴팩처 노동자와 다른가?

 16〜18세기의 매뉴팩처 노동자는 거의 어디서나 여전히 생산 도구를 갖고 있었다. 즉 자신의 직기와 가족이 사용하는 물레를 갖고 있었고, 또 자그마한 밭도 갖고 있어서 남는 시간에 이것을 경작했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이런 것이 전혀 없다. 매뉴팩처 노동자는 거의 언제나 농촌에서 살며, 그가 자신의 지주나 고용주와 맺는 관계는 다소간 가부장적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대부분 대도시에서 살며, 그 고용주와는 순전히 화폐 관계만을 맺고 있다. 매뉴팩처 노동자는 대공업에 의해 가부장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며, 그가 그때까지 갖고 있던 재산을 잃음으로써, 그리고 이를 통해서야 비로소 프롤레타리아가 된다.

 11.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사회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분열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가?

 첫째로 기계 노동에 의해 공산품의 가격이 점점 싸진 결과, 세계 각국에서 낡은 매뉴팩처 제도 또는 수공(手工) 노동에 기초를 둔 산업이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다소간 역사 발전과 동떨어져 있었고, 또 그 산업이 지금까지 매뉴팩처에 기초를 두고 있던 모든 미개국들도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쇄국 상태에서 벗어났다. 이 나라들은 더 값싼 영국인의 상품을 사들여 자기 나라의 매뉴팩처 노동자를 몰락시켰다. 그리하여 인도처럼 수천 년 동안 단 한걸음도 진보하지 못했던 나라들에서도 조금씩 변혁이 일어났으며, 심지어 중국까지도 이제는 혁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 영국에서 발명된 새 기계가 일년도 채 못 되는 사이에 수백만의 중국 노동자에게서 빵을 빼앗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대공업은 지구상의 모든 인민을 서로 연결했고, 모든 지방적인 소규모 시장을 하나의 전세계 시장으로 통합했으며, 곳곳에서 문명과 진보를 위한 기반을 준비하면서 문명 국가에서 일어난 모든 것이 다른 모든 나라들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 따라서 만약 지금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노동자가 해방된다면, 이것은 다른 모든 나라에서도 혁명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으며 그 혁명은 머지않아 그 나라의 노동자들도 해방할 것이다.
 둘째로 산업 혁명은 대공업이 매뉴팩처를 대체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부르주아지의 부와 힘을 최고로 발전시켰으며,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 첫째 계급이 되었다. 그 결과,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어디서나 부르주아지가 정권을 장악했으며, 종래의 지배 계급인 귀족과 동업 조합의 장인, 그리고 이 둘을 대표하던 절대 군주제가 밀려나게 되었다. 부르주아지는 장자 상속제 또는 토지 소유의 양도 금지와 모든 귀족적 특권을 폐지함으로써 귀족과 귀족 제도의 힘을 타도했다. 또 부르주아지는 동업 조합과 수공업자들의 모든 특권을 폐지함으로써 동업 조합 장인의 힘을 분쇄했다. 이 두 가지 대신에 부르주아지는 자유 경쟁을 가져왔다. 즉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어떤 산업 부문이든 경영할 권리가 있으며, 필요한 자본의 부족 외에는 경영을 방해하는 요인이 아무것도 없는 사회 상태를 가져왔던 것이다. 따라서 자유 경쟁을 도입한다는 것은, 앞으로 사회의 성원은 각자의 자본이 같지 않은 한에서만 불평등하다는 사실, 자본이 결정적인 힘이 되었으며 자본가, 즉 부르주아지가 사회에서 첫째가는 계급이 되었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 경쟁은 대공업 발전의 초기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유 경쟁은 대공업을 출현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사회 상태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는 귀족과 동업 조합의 사회적 힘을 타도한 뒤에, 그들의 정치 권력도 타도했다. 사회의 첫째가는 계급으로 올라선 부르주아지는 정치적인 형태에서도 자신을 첫째가는 계급으로 선포했다. 그들은 대의제를 도입하여 이것을 달성했다. 대의제는 법률 앞에서의 부르주아적 평등과 자유 경쟁의 법적 승인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것이 유럽 각국에서는 입헌 군주제 형태로 실시되었다. 입헌 군주제 밑에서는 오직 자본을 가진 사람만이, 즉 부르주아지만이 선거권을 가진다. 이 부르주아 선거인들은 대의원을 선출하고, 그 부르주아 대의원들은 납세 거부권을 이용하여 부르주아 정부를 선출한다.
 셋째로 산업 혁명은 부르주아지를 발전시킨 것만큼 곳곳에서 프롤레타리아트도 발전시켰다. 부르주아가 부유해지면 부유해질수록 프롤레타리아의 수는 더욱더 많아졌다. 오직 자본만이 프롤레타리아에게 일을 줄 수 있고, 자본은 노동을 고용하는 경우에만 늘어나므로, 프롤레타리아의 증가는 자본의 증가와 정확히 보조를 맞추게 된다. 동시에 산업 혁명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산업 발전에 가장 유리한 대도시로 모으고, 또 거대한 대중을 한 장소에 모음으로써 프롤레타리아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힘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 그리고 산업 혁명이 더욱더 발전하고 수공 노동을 몰아내는 새로운 기계들이 계속 발명됨에 따라 대공업은 임금을 더욱더 압박하여, 이미 말했듯이 임금을 최소치까지 떨어뜨리며, 그 결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처지는 더욱더 견딜 수 없게 된다. 산업 혁명은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불만을 키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을 키워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사회 혁명을 준비한다.

 12. 산업 혁명으로 말미암아 또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가?

 대공업은 증기 기관이나 그 밖의 기계들처럼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공업 생산을 끝없이 늘릴 수 있는 수단을 창조했다. 생산을 늘리는 것이 이처럼 쉽게 되었기 때문에, 대공업의 필연적 결과인 자유 경쟁은 곧바로 아주 격렬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많은 자본가들이 공업에 달려들었고, 얼마 안 가서 상품이 수요 이상으로 생산되게 되었다. 그 결과, 생산한 상품을 팔 수 없게 되어 이른바 상업 공황이 닥쳐왔다. 공장들은 휴업할 수밖에 없었으며, 공장주들은 파산하고, 노동자들은 빵을 잃게 되었다. 엄청난 빈곤이 곳곳에 닥쳐왔다. 그러나 얼마쯤 시간이 흐르자 과잉 생산물이 팔리고 공장들도 다시 돌아가고 임금도 오르고 사업도 차츰 전보다 잘되어 갔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너무나 많은 상품이 생산되어 새로운 공황이 닥쳐왔으며, 이 공황도 전과 똑같은 경로를 밟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19세기 초부터 산업의 상태는 번영과 공황이라는 두 시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해 왔다. 그리고 거의 규칙적으로 5〜7년마다4) 이와 같은 공황이 닥쳐왔으며, 이 공황은 그때마다 노동자들의 극심한 빈곤, 전반적인 혁명적 소요와 기존 상태 전반에 대한 최대의 위험으로 연결되었다.

 13.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이 상업 공황으로부터 어떠한 결론이 나오는가?

 첫째로 대공업은 그 발전의 첫 시기에는 스스로 자유 경쟁을 낳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벌써 지나치게 성장하여 자유 경쟁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사실, 경쟁과 일반적으로 개개인에 의해 경영되는 공업 생산 방식은 대공업에 질곡으로 되었으며 이 질곡은 분쇄되어야 하고 또 분쇄될 것이라는 사실, 대공업이 요즘과 같은 방식으로 경영되는 한 그것은 7년 주기로 되풀이되는 전반적 혼란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으며, 이 혼란은 그때마다 문명 전체를 위협하고 프롤레타리아를 빈곤 속으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부르주아까지도 몰락시킨다는 사실, 따라서 대공업을 포기하든가——그런데 이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그렇지 않으면 대공업이 완전히 새로운 사회 조직, 즉 공업 생산에 대한 지도가 서로 경쟁하는 공장주 개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확고한 계획에 따라서, 모든 사회 성원의 수요에 따라서 사회 전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완전히 새로운 사회 조직을 전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대공업과 그것에 의해 생산이 끝없이 늘어날 수 있게 된 것은, 모든 생활 필수품이 아주 많이 생산되어 사회 성원 각자가 자신의 모든 역량과 소질을 그야말로 자유로이 발전시키고 또 활용할 수 있는 사회 상태를 있을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현사회에서는 모든 빈곤과 상업 공황을 낳게 하는 대공업의 바로 그 속성이, 다른 사회 조직에서는 바로 이러한 빈곤과 불행을 가져오는 동요를 뿌리뽑는 속성으로 될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아주 명확하게 증명된다.
 첫째, 오늘날의 모든 불행은 오로지 시대의 여러 조건에 더 이상 맞지 않는 낡은 사회 질서 때문이다.
 둘째, 새로운 사회 질서를 통해서 이러한 불행을 최종적으로 없애기 위한 수단이 이미 존재한다.

 14. 새로운 사회 질서는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산업과 모든 생산 부문 일반에 대한 경영이 서로 경쟁하는 개개인의 손안에서 탈취될 것이다. 그 대신에 모든 생산 부문이 사회 전체에 의해, 즉 공동 계획에 의해 또 모든 사회 성원이 참가하여 공동의 계산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새로운 사회 질서는 경쟁을 없애고 그 대신에 협동체를 건설할 것이다. 개개인에 의한 산업 경영은 사적 소유의 필연적 결과이며, 또 경쟁은 사적 소유자 개개인이 산업을 경영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으므로, 사적 소유는 개개인에 의한 산업 경영이나 경쟁과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사적 소유 또한 폐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대신에 모든 생산도구의 공동 이용, 공동의 합의에 의한 모든 생산물 분배, 즉 이른바 재산의 공유가 나타날 것이다. 사적 소유의 폐지는 산업 발전의 결과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 질서 전체에 대한 변혁을 가장 간결하고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들이 사적 소유의 폐지를 자신들의 주요 요구로서 강조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15. 그러면 예전에는 사적 소유를 폐지할 수 없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온갖 사회 질서의 온갖 변화와 온갖 소유 관계의 변혁은, 낡은 소유 관계에 더 이상 적응하지 않게 된 새로운 생산력의 탄생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결과다. 사적 소유 자체도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왜냐하면 사적 소유는 언제나 존재했던 것이 아니고, 중세 말기에 당시의 봉건 ・ 동업 조합적 소유의 틀을 벗어난 매뉴팩처라는 새로운 생산 방식이 생겨나, 낡은 소유 관계보다 훨씬 더 성장한 이 매뉴팩처가 사적 소유라는 하나의 새로운 소유 형태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뉴팩처를 위해서는, 또 대공업의 최초의 발전 단계를 위해서는 사적 소유 외에 다른 어떠한 소유 형태도 있을 수 없었고, 사적 소유에 기초를 두는 것 외에 다른 어떠한 사회 질서도 있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에게 풍족할 만큼,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본을 늘리고 생산력을 한층 더 발전시키기 위한 잉여 생산물까지 남을 만큼 많은 것이 생산되지 않는 동안에는 늘 사회의 생산력을 좌우하는 지배 계급과 가난하고 억압받는 계급이 있기 마련이다. 이 계급들의 상태가 어떠한가는 생산의 발전 단계에 달려 있다. 농업에 의존하던 중세에는 영주와 농노가 있었고, 중세 후기의 도시에는 동업 조합의 장인과 직인과 날품팔이꾼이 있었으며, 17세기에는 매뉴팩처 기업주와 매뉴팩처 노동자가 있었고, 19세기에는 대공장주와 프롤레타리아가 있다. 아직까지도 모든 사람에게 풍족할 만큼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또 사적 소유가 이 생산력의 발전에 질곡, 즉 장애가 될 정도로 생산력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는 대공업의 발전으로, 첫째로 자본과 생산력이 전례 없는 규모로 조성되었으며, 또 생산력을 짧은 기간 안에 끝없이 높일 수 있는 수단이 있고, 둘째로 이 생산력이 소수 부르주아의 손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에 대다수의 인민은 더욱더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할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의 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프롤레타리아의 상태는 더욱더 비참하고 더욱더 견딜 수 없게 되며, 셋째로 강력하고도 쉽게 높일 수 있는 이 생산력은 사적 소유와 부르주아보다도 훨씬 더 크게 성장하여 끊임없이 사회 제도에 격심한 동요를 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사적 소유가 폐지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폐지가 전적으로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16. 사적 소유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폐지될 수 있는가?

 그렇게 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는 물론 그렇게 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덜 반대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음모가 모두 쓸모 없을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혁명이란 의도적으로 또 멋대로 일으킬 수 없으며,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개별 당파나 한 계급의 의지와 지도에는 전혀 의존하지 않는 (객관적一역자) 정세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일어났다는 점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들은 거의 모든 문명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 이 폭력적으로 억압되고 있으며, 공산주의자의 반대자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혁명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셈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만일 이 모든 것이 마침내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혁명에 나서게 하는 경우에,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지금 말로써 옹호하는 것 못지않게 행동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업을 옹호할 것이다.

 17. 사적 소유는 단번에 폐지될 수 있는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건설에 필요한 만큼 기존 생산력을 단번에 높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징조로 보아 임박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단지 차츰 현사회를 변혁할 수 있을 것이며, 또 필요한 만큼의 생산 수단이 생산될 때에야 비로소 사적 소유를 폐지할 수 있을 것이다.

 18. 이 혁명은 어떤 과정을 밟을 것인가?

 혁명은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적 국가 제도를 건설하고, 그것을 통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를 확립할 것이다. 이는 프롤레타리아가 이미 인민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영국에서는 직접적으로, 그리고 인민의 대다수가 프롤레타리아뿐만 아니라 소농민과 도시 소부르주아로 이루어져 있는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간접적으로 확립될 것이다. 이 두 나라의 소농민이나 도시 소부르주아는 이제 겨우 프롤레타리아트로 이행하는 단계에 있으나, 자신의 모든 정치적 이해 관계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더욱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의존하게 되며, 따라서 머지않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마 또 다른 투쟁이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그 투쟁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만일 민주주의가 사적 소유를 직접 공격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생존을 보장해 줄 광범위한 정책들을 실시하려는 수단으로 즉각 이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전혀 쓸모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이미 오늘날 현존하는 조건들로부터 도출될 수밖에 없는 방책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사적 소유의 제한, 즉 누진세 • 고율의 상속세 • 방계(형제 • 조카 등등) 상속 폐지 • 강제 공채 등등.
 2) 토지 소유자 ・ 공장주 • 철도 소유자와 선주(船主)의 재산을 부분적으로는 국영 산업과의 경쟁을 통해, 부분적으로는 불환 지폐로 정부가 직접 배상하여 차츰 몰수하는 것.
 3) 대다수의 인민을 거역한 반역자와 모든 망명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
 4) 국유지, 국유 공장과 국유 작업장에서 노동을 조직하거나 프롤레타리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이를 통해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없애고, 공장주들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에는 그들로 하여금 국가가 지불하는 것만큼 높은 임금을 지불하도록 만드는 것.
 5) 사적 소유를 완전히 폐지할 때까지 모든 사회 성원에게 똑같은 노동 의무를 부과하고, 특히 농업을 위한 산업 군대를 키워 내는 것.
 6) 국가 자본에 기초를 둔 국립 은행을 통해, 또 모든 개인 은행과 금융업을 폐지하여 신용 체계와 화폐 거래를 국가의 손안에 집중시키는 것.
 7) 국가 소유의 공장, 작업장, 철도와 선박 수를 늘리고 모든 미개간지를 개간하는 것. 그리고 국민이 처리할 수 있는 자본과 노동자가 늘어남에 따라 이미 개간된 토지를 개량하는 것.
 8) 아이들을 어머니가 돌보지 않아도 좋은 때가 되면, 즉시 국가 시설에서 국가 비용으로 모든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 교육을 공장 노동과 결합하는 것.
 9) 공민(公民) 공동체를 위한 공동 주택으로 국유지에 대주택을 건설하는 것. 이 공동체가 공업에도 농업에도 종사하고 도시의 생활 양식과 농촌의 생활 양식의 장점들을 결합함으로써, 두 생활 양식의 일면성과 결함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
 10) 비위생적이고 조잡하게 만들어진 모든 주택과 거리를 파괴하는 것.
 11) 사생아에게도 적자(適子)와 같은 상속권을 인정하는 것.
 12) 모든 운수업을 국가의 손안에 집중시키는 것.
 물론 이 모든 방책들을 단번에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한 가지 실시해 나갈 것이다. 일단 사적 소유를 근본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더욱더 앞으로 나아가 모든 자본, 모든 농업, 모든 공업, 모든 운송, 모든 교역을 더욱더 국가의 손안에 집중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위에서 든 방책들은 모두 이를 위한 것이다. 이 방책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으로 국가의 생산력이 높아지는 정도에 따라 실현될 수 있을 것이며, 또 그 정도에 따라 이 방책들에 따른 집중의 결과도 더욱 발전할 것이다. 끝으로 모든 자본 • 모든 생산 • 모든 교역이 국가의 손안에 집중될 때 사적 소유는 저절로 없어질 것이고, 화폐는 쓸모 없게 될 것이며, 또 생산이 훨씬 늘어나고 사람들도 훨씬 달라져서 낡은 사회의 마지막 교류 형태들도 없어질 것이다.

 19. 이 혁명은 어떤 한 나라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가?

 일어날 수 없다. 대공업이 세계 시장을 형성하여 이미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 특히 문명화한 민족들을 서로 연결했기 때문에 어느 한 민족도 다른 민족이 맞닥뜨리고 있는 일과 관계없을 수는 없다. 그리고 또 대공업으로 모든 문명 국가의 사회 발전이 같게 되어 이 모든 나라에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의 결정적인 두 계급이 되었으며, 그들 사이의 투쟁은 당면한 주요 투쟁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 혁명은 한 나라가 아니라 모든 문명 국가들에서, 즉 적어도 영국 • 미국 • 프랑스 • 독일에서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이들 각 나라에서 혁명은 그 나라의 공업 발전 정도, 부의 축적 정도, 생산력의 크기에 따라서 급격하게 또는 완만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그것이 가장 서서히, 가장 어렵게 실현될 것이고 영국에서는 가장 급속히, 가장 쉽게 실현될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들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어 그 나라들의 지금까지의 발전 과정을 빨리 변화시키고 매우 촉진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세계 혁명이며, 따라서 세계 전체를 자신의 무대로 삼을 것이다.5)

 20. 사적 소유를 궁극적으로 폐지한 결과는 어떠한 것이겠는가?

 모든 생산력과 교통 수단을 이용하고 생산물의 교환과 분배를 자본가 개개인에게서 빼앗아 현존 수단이나 사회 전체의 수요에서 출발하는 계획에 따라 그 모든 것을 사회가 관리하게 되어 우선 현재와 같은 대공업 경영과 관련된 모든 해로운 결과들이 없어질 것이다. 공황이 없어질 것이며, 현사회 질서 밑에서는 과잉 생산과 빈곤의 유력한 원인이 되고 있는 확대된 생산도 그때가 되면 결코 충분하지 못할 것이므로 훨씬 더 확대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사회의 절박한 수요를 앞지르는 과잉 생산은 빈곤을 가져오는 대신에 모든 사람들의 수요 충족을 보장할 것이고, 동시에 새로운 수요와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을 낳을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진보의 조건이자 자극이 될 것이며, 종전과 같이 사회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고서도 이 진보를 이룩할 것이다. 사적 소유의 질곡에서 해방된 대공업은 엄청난 규모로 발전할 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오늘의 대규모 공업조차도 지난날의 매뉴팩처를 연상시킬 정도로 보잘것없어 보일 것이다. 공업의 이러한 발전은 사회에 충분한 양의 생산물을 공급하여 결국 모든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다. 사적 소유의 압박과 그에 따른 토지 분할 때문에 기존의 개량 방법과 과학적 발전을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는 농업도 공업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새로운 비약을 이룩할 것이고, 아주 충분한 양의 생산물을 사회에 공급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는 모든 성원의 수요가 충족되도록 분배를 조직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많은 양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회가 서로 적대하는 여러 계급들로 분열될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열은 단지 필요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 질서와는 양립할 수 없게까지 될 것이다. 계급의 존재는 분업으로 생겨난 것인데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의 분업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공업과 농업 생산을 위에서 묘사한 수준까지 높이자면 기계 • 화학적 보조 수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이러한 보조 수단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능력도 그것에 맞게끔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에 농민이나 매뉴팩처 노동자가 대공업에 흡수된 뒤 자기의 생활 양식 전체를 바꾸고 스스로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 전체에 의한 생산의 공동 운영과 이로부터 비롯된 생산의 새로운 발전으로 완전히 새로운 인간이 요구될 것이며 또 그러한 인간이 생겨나기도 할 것이다. 생산의 공동 운영은 오늘날과 같은 인간들, 즉 각 개인이 어느 한 생산 부문에 종속되어 그것에 얽매이고 그것에 의해 착취당하며, 자기 능력의 다른 측면들을 희생한 채 한 측면만을 발전시키고 생산 전체의 한 부분 또는 어떤 부문 가운데 한 부분밖에 모르는 그러한 인간들에 의해서는 실현될 수 없다. 이러한 인간들은 이미 오늘날의 공업에서도 점점 쓸모 없어지고 있다. 더욱이 사회 전체에 의해 공동으로 또 계획적으로 운영되는 산업은 전면적으로 발전한 능력을 가진 인간, 즉 생산의 전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인간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현재 이미 기계에 의해 파탄하기 시작한 분업, 즉 한 사람은 농민으로, 다른 사람은 구두공으로, 또 다른 사람은 공장 노동자로, 또 다른 사람은 증권 투기업자로 만드는 분업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교육 덕택에 젊은이들은 생산의 전체계를 신속히 다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사회의 수요 또는 그들 자신의 기호에 따라 한 생산 부문에서 다른 생산 부문으로 별 지장 없이 옮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현재의 분업이 각 개인에게 강요하고 있는 일면성에서 그들을 해방할 것이다. 그리하여 공산주의적으로 조직된 사회는 그 성원에게 전면적으로 발전한 능력을 전면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서로 다른 계급들도 필연적으로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적으로 조직된 사회는 한편으로는 계급의 존속과 양립할 수 없을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회의 건설 자체가 계급 차별을 폐지하기 위한 수단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 결과로 도시와 농촌 사이의 대립 또한 사라질 것이다. 2개의 각기 다른 계급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 농업과 공업 노동에 종사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전적으로 물질적인 원인이라는 점에서 공산주의적 협동체의 필요 조건 가운데 하나다. 대도시에는 공업 인구가 밀집해 있는 반면에 농촌에는 농업 인구가 흩어져 있는 현실은 아직 농업과 공업의 발전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데 따른 상태로서 앞으로의 모든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이며, 이것은 오늘날 이미 쉽게 느낄 수 있다.
 생산력을 공동으로 그리고 계획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사회 성원 전체의 전반적 연합, 모든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킬 정도로 생산을 늘리는 것, 한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다른 사람의 욕망을 희생시키는 상태를 없애는 것, 계급과 계급 대립의 완전 폐지, 그리고 종전과 같은 분업의 제거, 산업 교육, 활동 분야의 교체, 모든 사람에 의해 생산되는 소비 용품을 이용하는 데 모든 사람이 참가하는 것, 도시와 농촌의 융합 등에 의한 사회 성원 전체 능력의 전면적인 발전, 이것이 사적 소유의 폐지가 가져올 주요한 결과들이다.

 21. 공산주의적 사회 질서는 가족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남녀 관계는 사회가 간섭할 필요가 없는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즉 순전히 사적인 관계가 될 것이다. 이것은 사적 소유의 폐지와 자녀들의 공동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 결과, 사적 소유를 매개로 지금까지 결혼의 토대가 되어 왔던 두 가지, 즉 남편에 대한 아내의 종속과 부모에 대한 자녀의 종속이 없어진다. 이것이 공산주의적인 부인 공유제를 반대한다고 떠들어대는 고결한 속물들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부인 공유제는 전적으로 부르주아 사회에 속하는 관계로서 오늘날 매음이라는 형태로 유감없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매음은 사적 소유에 기초를 두고 있으므로 사적 소유가 폐지되면서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적 조직은 부인 공유제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폐지할 것이다.

 22. 공산주의적 조직은 기존의 국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대로.6)

 23. 공산주의적 조직은 기존 종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대로.

 24.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

 이른바 사회주의자는 세 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첫번째 부류에는 봉건 • 가부장적 사회의 지지자들이 있는데, 이 사회는 대공업과 세계 무역에 의해, 또 이 둘로써 건설된 부르주아 사회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또 나날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이 부류는 현사회의 불행을 보고 봉건 • 가부장적 사회를 복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왜냐하면 거기서는 현재와 같은 불행이 없었기 때문에——결론을 내린다. 그들의 모든 제안은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이러한 목적을 겨냥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빈곤에 대해 그들이 거짓으로 동정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만 공산주의자들은 늘 이러한 부류의 반동적 사회주의자들과 단호히 투쟁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부류의 사회주의자들은,
 1)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지향하고 있고,
 2) 절대 군주 또는 봉건 군주 • 관료 • 병사 • 승려들을 거느린 귀족, 동업 조합의 장인과 매뉴팩처 경영주의 지배를 복구하려 하며, 즉 현사회에서와 같은 폐단은 없었을지라도 그 대신에 적어도 그만한 다른 불행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억압받는 노동자를 공산주의적 조직으로 해방할 아무런 전망도 열어 놓지 않았던 사회를 복구하려 하며,
 3)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으로 되고 공산주의적으로 될 때는 언제나 자기들의 진짜 의도를 드러내면서, 즉시 프롤레타리아에 맞서 부르주아지와 야합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류에는 현사회의 지지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현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산물인 불행을 보면서 이 사회가 존속할 것인가를 걱정한다. 따라서 그들은 현사회는 그대로 놓아둔 채, 현사회와 관련된 불행만을 없애려고 한다. 이를 위해 어떤 자들은 단순한 자선 방책을 제시하며, 또 어떤 자들은 사회의 재조직이라는 구실을 내걸고 현사회의 토대를 유지하고 결국 현사회 자체를 유지하려는 거창한 개혁안을 제시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부르주아적 사회주의자들에 맞서서도 계속 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활동은 공산주의자들의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며,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이 파괴하고자 하는 사회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세 번째 부류에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와 같은 길로 나아가면서 18번째 물음에서 말한 방책 가운데 일부를 바라기는 하지만, 그것을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적인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없애고 현사회의 불행을 없애기 위한 충분한 수단으로 본다. 이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자기 계급을 해방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아직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든가,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그 결과 사회주의적 방책을 쟁취할 때까지 많은 점에서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이해 관계를 갖는 소부르주아 계급의 대표자든가 둘 가운데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이 지배적 부르주아지에게 봉사하여 공산주의자를 공격하지 않는 한, 행동을 하는 순간에는 이들과 타협할 것이며, 또 일반적으로 현시기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들과 공동의 정책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공동 행동 방식이 그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차이에 대한 논의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25. 공산주의자들은 우리 시대의 다른 정당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그것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부르주아지가 지배하고 있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아직 당분간은 갖가지 민주주의적 정당들과 공통의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 더구나 민주주의자들이 오늘날 곳곳에서 자신들이 옹호하는 사회주의적 방책을 통해서 공산주의자들의 목적에 접근하면 할수록, 즉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 관계를 더욱더 명백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지하면 할수록, 또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더욱더 의지하면 할수록 그와 같은 이해 관계의 공통성은 더욱 커진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노동자들로 이루어 진 차티스트들2*이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나 이른바 급진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공산주의자들과 가깝다.
 민주주의적 헌법이 실시되고 있는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는 부르주아지를 반대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옹호하는 데 이 헌법을 이용하려는 정당, 즉 전국 토지 개혁당을 지지해야 할 것이다.
 스위스에서는, 아직 그 구성이 매우 복잡한 정당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진당이 공산주의자가 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다. 그리고 이 급진파 가운데서도 바틀란트(Waadtland) 주 사람들과 제네바 사람들이 또한 가장 진보적이다.
 끝으로 독일에서는 부르주아지와 절대 군주제 사이의 결정적 투쟁이 이제서야 겨우 임박해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가 지배권을 장악하기 이전에 그들 자신이 부르주아지와 결정적 투쟁을 하게 되리라고 예상할 수는 없으므로, 부르주아로 하여금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지배권을 장악하도록 도와주고, 이어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를 뒤엎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유리하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정부에 맞서서 늘 자유주의 부르주아 당의 편에 서야 한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자기 기만에 속아넘어가거나, 부르주아지가 승리하면 프롤레타리아트에게도 유익하다는 그들의 유혹적인 보장을 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부르주아지가 승리하여 공산주의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뿐일 것이다. ① 공산주의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원칙을 옹호하고 토론하고 보급하게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를 긴밀히 단결시키고 투쟁할 준비를 갖춘 조직된 계급으로 통일하는 것을 쉽게 하는 여러 가지 양보를 얻어낼 수 있고, ② 절대주의 정부가 무너지는 날 곧 이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투쟁이 닥쳐오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날부터는 독일 공산주의자들의 당 정책도 오늘날 이미 부르주아지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들에서와 똑같아질 것이다.





주--------------


 1)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초기의 저작들에서 아직 노동의 판매에 대해 논하고 있다. 나중에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을 판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의 저작 『임금 노동과 자본』의 새 판(베를린, 1891)에 실린 엥겔스의 서론에 나오는 설명을 보라.(이 책 97〜106쪽 참조一역자)
 2) 계급 사회에 선행하는 시기인 계급 없는 원시 사회에 대해서는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엥겔스의 주를 참조하라.(『전집』 제4권, 462쪽. 이 책 52쪽 참조一역자)
 3) 대답이 빠진 것은 엥겔스의 원고의 한 쪽이 반쯤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4) 1892년에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Lage der arbeitenden Klasse in England) 제2판 서문에서 19세기 초의 산업 공황 주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본문에서는 산업 대공황의 주기가 5년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시기 규정은 1825년에서 1842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의 경과에서 피상적으로 끌어낸 결론이다. 그러나 1842년부터 1868년까지의 공업의 역사는 실제 주기가 10년이라는 것, 10년이라는 기간의 중간에 일어나는 공황은 부차적인 것이고, 1842년 이후에는 차츰 소멸했다는 것을 증명한다.”(『전집』 제2권, 642쪽)
 5)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동시에 시작될 수 있을 뿐이고, 따라서 한 나라에서만 이 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은 엥겔스의 저작 「공산주의의 원리」에서 최종적으로 정식화되었다. 이것은 독점 자본주의 이전 시기에 대해서는 옳다.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서, 레닌은 자신이 발견한 법칙, 즉 제국주의 시대에 관철되는 자본주의의 경제 정치적 발전의 불균등 법칙에서 출발하여 사회주의 혁명 처음에는 몇몇 국가들에서, 또는 심지어 한 나라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결론에 이르렀다. 따라서 그는 모든 국가 또는 대다수의 국가들에서 사회주의가 동시에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새로운 결론은 레닌의 논문 「유럽 합중국이라는 슬로건에 대하여」("Über die Losung der Vereinigten Staaten von Europa")에서 처음으로 정식화되었다. (레닌, 『선집』 제1권, 베를린, 1955, 753쪽 참조)
 6) 엥겔스의 초고에는 22번 물음과 23번 물음의 대답 대신에 '그대로'(bleibt)라는 말이 쓰여 있을 뿐이다. 이것은 그 대답이 공산주의자 동맹의 잠정적 강령 초안에 정식화되어 있는 그대로임을 뜻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강령 초안은 오늘날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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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산당 선언』의 20* 참조.(이 책 93쪽)
  2* 『공산당 선언』의 27* 참조.(이 책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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